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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경자 Nov 25. 2021

 배움엔 끝이 없어도 업무엔 끝이 있어야죠.

직장인들에게는 평가는 늘 불만의 대상이다. 한정된 상위 고과를 소수의 인력들이 차지해야 하는 구조적 문제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 것인가? 현실의 평가 제도를 들여다보면 결이 조금 다름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 평가라는 경쟁 보다, 그 경쟁에 사용되는 잣대에 대해서 더 큰 불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에 진 것보다, 경쟁 자체가 가지고 있는 모순된 규칙에 대해서 더 분노하는 경우가 많다. 가는 내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동기부여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공정하지 못한 평가는 기업에게 하등 이로울 것이 없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 이는 일의 성과를 정확하게 측정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유가 있다. 복잡다단한 분업 체계에서 개개인의 행동이 어떻게 기업의 이익으로 연결되는가는 굉장히 측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기업들은 이를 상쇄하기 위한 수단으로, 성과 그 자체보다는 성과와 높은 상관관계가 있는 지표들 중에서 측정이 쉬운 것들을 선택해서 평가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해왔다. 근태가 대표적인 예다. 적어도 더 오래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면 그만큼 더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이다. 는 마치 독서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 수록 성적이 높을 것이라 '추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또 하나의 예가 바로 상명하복적인 자세였다. 리더가 내린 판단을 얼마나 성실히 빠르게 수행하는가가 중요한 평가 지표였다. 이 역시 리더 부여하는 업무가 기업의 이익에는 아주 중요한 업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리더가 지시하는 업무를 빨리 잘 수행한다는 의미는 곧 기업의 이익에 중요한 일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추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역시 선생님의 말을 잘 따르는 학생들이 학업 성적이 우수하다고 '추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직장인들의 평가는 대부분, 얼마나 근면 성실했냐, 그리고 얼마나 리더의 지시를 잘 수행했냐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문제는 근면 성실함과 상명하복이라는 두 지표와 업무 성과의 상관관계가 과거와 달리 크게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오래 일하는 것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 하나가 더 큰 성과를 내는 시대가 오고 있다. 또한 과거에 겪어 보지 못한 기술이 쏟아지고 있고, 이는 경험이 많은 리더 한 명으로써 대응하기 힘든 수준이다. 기업들은 이러한 생존의 최전선에서 혁신과 창의를 외치고, 이를 위해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도입하고 있다. 최근에는 누구보다 근면 성실하고, 상사의 지시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것이 되려 기업의 이익과 반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기업들도 생기고 있다.


그런데 그에 걸맞은 평가 체계 도입에는 기업들이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창의적 사고를 요구하면서, 근면 성실함으로 성과를 추정하는, 모순 가득한 과도기를 겪고 있는 기분이다. 이러한 과도기의 원인은 앞서 언급했듯 새로운 평가체계 도입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에 주로 평가하던 근무시간과 근무태도가 아닌 무언가를 평가해야 할 것 같기는 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좀 더 근본적으로 이야기하면, 일의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일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가 필요한데, 사실 우리는 일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1인 기업도 아니고, 규모가 큰 대기업에서 구성원들이 수행하는 일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가 없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아주 높은 수준의 평가체계를 갖추고 있는 회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범위에서 상당 부분의 기업들은 일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가 없이 일을 하고 있었다. 좋게 이야기해서는 다 같이 으쌰 으쌰 협업하는 두레식의 조직 문화고, 나쁘게 이야기하면 업무에 대한 전문성이 없다는 뜻이다.


일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는 단순히 내가 수행해야 하는 업무의 목록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 정도의 업무 목록은 대부분의 기업들이 모두 가지고 있다.(물론 엄밀히 말하면 이것 조차 없는 조직이 허다하다. 대부분은 그때그때 발생하는 일들을 주먹구구 식으로 배분해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개개인의 업무를 정의해둔 지침이 있다고 하자. 진짜 문제는 그 업무를 어떤 수준까지 했을 때 그 일이 완수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즉, 일의 완성을 측정할 수 있는 평가 수준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이는 평가체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구성원 개인이 달성해야 할 구체적인 수준을 정의할 수 없는 상태에서는 당연히 상대평가가 유일한 해답이다. 어쨌든 등수는 정해지기 때문이다. 전교 1등만 모아둔 학급에서도 이른바 꼴등은 있고, 꼴등만 모아둔 학급에서도 1등은 있다. 동시에 상대평가는 필연적으로 억울한 사람들을 만들어 낸다. 전교 1등임에도 꼴등이 될 수 있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전자에서 발표한 인사제도 개편안 역시 이러한 상대평가의 부작용에 근거하고 있다. 물론 상위 10%에 대한 상대평가를 유지함으로 인해 회사의 핵심 인재를 확보하고자 하는 고육지책의 산물이긴 하지만 말이다.


상대평가는 폐지하는 것이 맞지만, 단순히 상대평가를 폐지하고 절대평가를 도입한다고 해서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일에 대한 정확한 정의와, 그 일이 어느 수준에 다다랐을 때 완성되었는가에 대해서 정의하지 않으면, 절대평가에서도 이 같은 문제는 여전히 반복될 수 있다. 리더들이 선심성으로 모든 구성원들에게 높은 고과를 부여하는 것은 일견 이상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그 와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더 많은 성과를 냈다고 스스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더 낮은 성과를 냈음에도 본인과 동일한 고과를 받는 것에 대해서 불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사실 노력에 대해서 공정한 보상을 받는 것은 동기부여의 근본적인 원리이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은 구성원들에게 정확하게 수행해야 할 일의 목록을 제공하고, 이 일을 어떤 수준으로 하는 것이 일의 완성인지를 정확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일의 수준을 달성했다면, 평가는 그것으로 종료된다. 만약 목표 수준을 달성하지 못했다면, 문제점에 대해서 토의하는 시간을 갖고, 개선이 필요한 사항은 즉각 반영하되, 개인의 역량 부족이 있었다면 이를 평가에 반영한다. 즉, 구성원들 간의 비교가 아니라, 개인에게 부여된 업무의 수행 정도에 의해서 평가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 그래야만 평가자와 피평가자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기준을 가질 수 있다.  


이런 문화에서는 개인에게 할당된 일이 가장 중요해진다. 따라서 사전에 정의되지 않은 일이라면, 구성원들이 그 일의 수행을 거부할 수도 있다. 그 업무로 인해 정작 내가 평가받아야 하는 업무에 소홀하게 되는 것을 누구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앞으로는 사무실에 있는 화분에 물을 주는 일도 미리 계약서에 포함해야 하는 시대가 된다는 뜻이다. 너무 야박한 것 아니냐고 할 수 있다. 인정한다. 하지만 이 글은 무엇이 옳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의 환경에서 기업이 영리를 위해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노력에 대해서 공정하게 보상하는 제도가 필요하고, 그 제도는 필연적으로 전문화된 업무 정의를 수반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기업은 근무시간이나 상명하복의 권위는 사라지고, 당연히 일주일에 몇 시간을 의무적으로 출근해야 한다는 무식한 규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가장 핵심인 일의 성과 자체를 측정할 수 있는데, 굳이 부정확한 근무시간이나 상명하복식의 권위를 '추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최근에 도래한 원격근무 환경에도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다. 이는 급여 외에도 우수한 인력들의 선택에 있어 큰 장점이 된다. 두 가지 이상의 직업을 갖는 시대에 한 직장에 출근해서 오랜 시간을 머물러야 한다는 것은 급여를 떠나 결정적인 단점이 된다.


직장인에게는 시작과 끝이 있어야 한다. 내가 받는 월급의 대가는 어디까지인가? 그저 밀려오면 밀려오는 대로 일을 내고, 채울 수 있는 만큼의 근무시간을 채우는 것이 나의 월급의 대가인가? 월급을 받는 이유로 아무런 제한 없는 업무의 수행을 약속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그리고 그렇게 했음에도 상대평가라는 이름으로 늘 누군가와 비교당해야 하는 것인가? 그렇게 일하는 것이 앞으로 기업에게 유리할 것인가? 이런 고민을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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