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경자 Jan 28. 2022

인테리어 단상

이사를 했다. 그런데 인테리어까지는 차마 하지를 못했다. 금전적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도배와 바닥 정도는 할 생각이었는데 이래저래 고민하다 결국 도배만 하기로 했다. 대신 인테리어 비용을 아껴서 평소 사고 싶던 조명과 가구에 투자를 하기로 했다.


요즘 인테리어 비용이 워낙 급등한 지라, 인테리어에 쓸 돈에 비해 아주 적은 금액으로도 평소 갖고 싶던 조명과 가구를 사기에는 충분했다. 조명은 이미 받아서 설치를 했고, 가구는 아직 물 건너에서 조립 중이라고 하니, 아마 다음 달이 끝날 즈음에는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집을 이쁘게 꾸미는 것이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이것은 오래 동안 나에게는 이미 검증이 된 명제였다. 오랜 자취 생활을 하면서 작은 조명 하나가 주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몇 평 안 되는 원룸 속에서도 작은 가구들을 채워놓은 것도 그런 이유였다.


처음 원룸에 소파를 들이겠다고 했을 때 다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지간한 소파는 들어갈 수도 없는 면적의 방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기어코 콤팩트한 사이즈의 가구를 찾아서 원룸에 끼어 넣고야 말았다. 그냥 그게 맘에 들어서였다.


그런데 소파를 쓰면서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이 있었다. 삶의 패턴이 달라진 다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원룸에 들어서면 우선 침대에 앉고, 곧이어 자연스럽게 눕게 되었다. 몸을 쉬게 할 수 있는 공간이 침대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소파가 생김으로 인해서 그 중간에 앉아서 쉰다는 행동이 가능해졌다.


그 뒤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조금 더 생산적으로 바뀌었다. 침대에 누우면 자연스럽게 잠이 들거나 나태해졌는데, 소파는 달랐다. 잠깐 쉬다가 다시 일어나 또 다른 행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앉아서 책을 볼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조명이 필요했다. 그리고 소파에 두고 쓸 커피 테이블도 찾게 되었다.


가구는 우리의 삶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단순히 삶을 보조하는 도구를 넘어서, 우리의 행동을 바꾸는 힘이 있다. 이런 시각을 조금 확장하면, 결국 집이라는 공간도 같은 역할을 한다. 집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구성하고 배치하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삶은 정말 정반대로 달라진다.


좋은 인테리어는 무엇인가? 단순히 심미적으로 아름다운 집인가? 물론 이것도 틀린 것은 아니다. 심미적으로 아름다운 집은, 그 집에 머무르는 매 순간을 행복하게 한다. 그리고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무르는 집에서 행복하다는 것은, 결국 인생이 행복해지는 것과 같다.


하지만 심미적으로 아름다움을 넘어서, 좋은 공간은 우리의 삶을 바꾸게 하는 힘이 있다. 따라서 좋은 인테리어란, 내가 살고 싶은 삶을 반영하는 것이다. 트렌드에 따라 유행하는 스타일로 집을 꾸미는 것을 넘어, 내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적절하게 반영하는 인테리어가 좋은 인테리어라는 생각이 든다.


흔히 말하는 인테리어 공사는 어떻게 보면 거대한 캔버스를 만드는 일이다. 그 위에 어떤 그림을 그리는가, 그것이 사실 인테리어의 본질에 조금 더 맞닿아 있다. 돈이 부족해서 유명한 디자이너 업체의 인테리어 공사를 할 수 없다고 해서 너무 속상해할 필요는 없다. 그림은 꼭 이젤 위의 하얀 캔버스에만 그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나 탐나 할 캔버스를 만들어 두고, 누군가 그려준 개성 없는 그림을 그 위에 덧칠하는 것보다는, 조금 허름한 캔버스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정성껏 그리는 것이 내 삶을 보다 진정성 있게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삶이란 결국 취향을 찾고 발견해나가는 과정이니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이사 오자 마자 윗집이 인테리어 공사한다고 안내문 돌리는 것을 보는 내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 것 같다. 오늘 일기 끗.





매거진의 이전글 김치국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