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처럼 쓰는 선거 이야기
결국은 부동산이었다. 부동산 급등에 따른 대책은 세금 위주로 전개되었으나 그 실적은 미미했다. 부동산 가격 안정화는 실패했고 되려 조세 부담은 크게 늘었다. 늘 강세였던 서울 지역에서 민주당이 표를 잃었고, 이는 결국 1% 미만의 아쉬운 석패로 연결되었다. 그 외 지역들은 전체적인 대세를 바꿀 만큼의 유효한 변화가 없었다. 매번 대선마다 이어지는 추세 내에서 움직였다. 결국은 서울에서의 민심 이탈이 승패를 가른 셈이다. 정권교체와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실망감이 어느 때보다 높았던 분위기를 고려하면 야당은 생각보다 고비를 면치 못한 셈이고, 여당은 생각보다 훨씬 선방한 셈이기도 하다.
국민들은 무능한 건 참아도 뻔뻔한 것은 참지 못한다는 걸 느꼈다. 부동산 대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면 정권교체론이 지금처럼 높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엄한 아버지와 같은 캐릭터가 아니었다. 한두 번 실수를 하더라도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보일 때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엄마 같은 캐릭터에 가까웠다. 그런 면에서 이번 대선은 민주당이 충분한 수적 우위를 가지고도 반성하는 모습, 변화하는 모습을 끝내 보이지 못했다는 점에서 자승자박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2,3년의 정치 형국과 이번 대선을 지켜보면서 놀랐던 것은 이른바 고위층이라고 하는 집단에서의 도덕적 해이와 부정부패가 너무나도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위법 행위를 수 없이 저지른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들이 많았다. 여야를 불문하고 정상적인 준법정신과 도덕관념을 가진 사람을 찾아보는 것이 힘들 정도였다. 일각에서는 진보 세력들의 부정행위에 대한 배신감이 표출되었다고도 하는데, 그럼 보수 세력에게는 애초에 기대가 없어서 배신감이 없었다는 건가? 아무튼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 혼란스러웠다.
생각해보면 결국 그들도 사람이고 이기적인 존재 아닌가. 그리고 부와 권력은 남용하고 싶은 욕망을 만들어 낸다. 부와 권력이 클수록, 어렵게 손에 얻은 것일수록 더 그렇다.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들은 게다가 그런 욕망이 훨씬 더 강한 사람들이다. 그러니 온갖 역경을 뚫고 거기까지 바득바득 기어 올라간 것 아닌가.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본인이 나라를 구한다는 자기만족을 위해서 움직이는 철저히 이기적인 사람들인 셈이다. 그런 사람들이 부와 권력을 이타적으로 쓸 리가 없다. 성인군자가 아니고서야.
물론 세상에는 이런 이기심으로 설명이 어려운 올바른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야말로 지극히 예외적인 존재들이다. 이들의 모습이 이상적일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나머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이런 잣대를 가져대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다. (성적 지상주의의 옳고 그름은 차치하고라도,) 마치 5%도 되지 않는 유명 대학 진학에 목숨을 건 나머지 95%의 학생들을 모두 패배자로 만드는 현재의 교육시스템처럼 말이다. 그러니 이상은 이상으로 좇되, 현실을 재단하는 잣대로 쓰는 것은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대한민국의 정치는 여전히 오랜 관행처럼 뿌리내린 부정부패에 얼룩져 있다. 또한 법의 테두리 안에서도 지역/남녀/세대 갈등을 이용해 먹으려는 관종끼 넘치는 이기적인 정치인들이 득실거린다. 여기에는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 없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삶을 살면서 이를 국민을 위하는 정치라는 허울로 교묘히 포장해 온 것이다. 오죽하면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말이 나오는 것인가. 정치인들이 만든 갈등 속에서 국민들은 늘 상처받아왔다.
현실을 바라보는 눈을 낮추면 그제야 새로운 것이 보인다. 그들을 도덕적으로 교화하는 것이 정녕 국민들이 가야 할 길인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사실 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그들의 부정부패와 갈등 조장의 정치를 방치하자는 것은 아니다. 법과 도덕적인 기준을 마련하되, 그것보다는 국민들이 보다 실리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심하게 말해서, 정치인이라는 전국구 관종이자, 권력욕에 빠진 이기적인 사람들을 이용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현명해져야 한다.
그들의 갈등 확성기를 애써 무시하고, 대신 그들의 공약을 꼼꼼하게 살핀다면, 그들은 그게 더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될 것이다. 결국 우리가 할 일은 누가 무슨 소리를 하든 이성적으로 우리 몫을 챙기는 것인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번 대통령 선거는 조금 허망하다. 우리 국민들은 5년에 한 번 찾아오는 이 기회에 무엇을 챙겼는가. 별로 손에 남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선거에서 진 진보 유권자들이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선거에서 승리한 보수 유권자 입장에서 봐서 별로 얻은 것이 없다. 정권교체를 달성했다고는 하지만, 과연 무엇을 위한 정권교체인가. 더 나은 삶을 위한 것 아니었던가. 이미 일어난 일을 이용해 갈등을 조장하고, 이를 통해 복수, 응징, 보복과 같은 감정의 분출이 마치 국민의 진정한 열망 인양 둔갑시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운 정치인들을 보면서 참으로 허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마지막까지 정권 교체 그 이상의 가치를 얻어내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이다.
어쨌든 선거는 끝났고, 국민의 절반은 서로 생각이 다름을 확인하게 되었다. 지난 수십 년 목숨을 걸고 지켜낸 민주주의가 소중한 만큼, 투표의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이미 일어난 일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그저 그런 현실이 있는 것이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국민의 절반은 나와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어느 쪽이든 상대를 비난하는 것은 지역/남녀/세대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인들이나 하는 짓이다. 우리는 그런 정치인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면 된다. 덜 이기적이고, 조금 더 실리적인 사람 말이다. 쓰고 보니 속지 말자는 이야기를 길게 썼다. 일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