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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경자 Feb 24. 2022

갤럭시 S23 신제품 출시!

대화, 뭣이 중헌디!

"김 대리, 이번에 삼성 S23 시리즈 출시된 거 봤어? 아주 제품이 기가 막히던데?"


"부장님, 저도 봤는데요, 울트라 모델이 좋아 보이더라고요? 실제로도 울트라 모델이 인기라고 합니다. 사전 예약의 절반이 울트라 모델이래요."


"부장님, 이번에 출시된 건 S23이 아니고 22에요. 그리고 김대리님, S22 울트라는 기존 노트 제품에 대한 대기 수요가 일시적으로 터진 거예요. 디자인 이쁘지도 않고 크기만 커서 저는 별로던데요?"


"아 그런 거야? 이주임이 요즘 트렌드를 훤히 알고 있네. 김대리, 자네도 이번에 폰 바꿀 건가? 나는 오후에 대리점 가서 바꿀까 하는데"


이주임은 부장의 실수를 대번에 지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주임이 생각하는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관계 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정보에 기반한 대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결론에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 주임에게 대화는 정보를 공유하고, 옳고 그름을 향해 나아가는 수단이다. 그러므로 정확한 정보에 기반해서 현상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나의 주장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 대화에 임하는 진실된 자세다. 이주임은 신형 휴대폰 모델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명확하게 밝혔다.


반면 김대리는 부장의 실수를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그리고 부장의 이야기에 동조했다. 부장이 관심이 있어하는 사항에 대해서 공감하고, 부장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김대리에게 대화란 사실 관계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서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나누고 공감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설령 잘못된 정보라고 하더라도, 이를 통해 비슷한 생각과 감정을 나눌 수 있다면 대화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대화가 옳은 대화인가? 그런 것은 없다. 대화의 유형은 당연히 상황에 따라서 달라진다. 정확히 말하면 대화의 목적에 따라서 달라진다. 기업의 명운이 걸린 중요한 의사결정을 위한 대화를 가정해보자. 이 대화의 목적은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에 있다. 이때 공감하는 대화를 할 여유는 없다. 서로 감정이 상하는 한이 있더라도 치열하게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논쟁에 가까운 대화를 해야 한다. 일종의 전투에 가깝다. 죽고 사는 문제가 걸려있는 상황에서 감정적인 배려는 조금 뒤로 미뤄두는 것이다.


반면에 일상적인 대화, 혹은 가까운 지인 사이의 대화에서는 대화의 목적이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에 있지 않다. 대화의 목적은 순수하게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에 있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술 한잔하는 자리에서는 누가 옳고 그른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그 시간 동안 즐겁게 웃고 떠들면서 공통의 추억을 만드는 것이 대화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자리에서 의사결정을 위한 대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은 마치 축제에 완전 무장을 하고 나타나는 군인과도 같다. 차갑고 무섭다.


목적에 맞는 대화를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대화의 목적을 인지하면서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 대화의 목적이 사실관계를 기반한 의사결정을 위한 것인지, 혹은 서로의 마음을 공감하기 위한 것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사실 말이라는 것은 거의 습관에 의해서 나오는 것이라 대화의 목적에 따라 말하는 방식을 달리하기란 쉽지 않다. 아마 이 주임은 모든 대화를 의사결정 방식으로 하고, 김주임은 모든 대화를 공감하는 방식으로 할 확률이 매우 높다.


두 번째는 의사결정을 위한 대화는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의사결정을 위한 대화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두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앞선 휴대폰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김 부장은 본인이 구입하고 싶은 모델을 구입할 것이다. 이 의사결정은 오롯이 김 부장의 것이다. 그러니 이 주임이 대화를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는 어디까지나 김 부장에게는 참고 사항에 불과하다. 이주임은 그 대화가 의사결정을 위한 대화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셈이다.


업의 상황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의사결정권자들은 이미 규정에 의해서 정해져 있고, 회의는 의사결정권자들의 결정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적당한 의견 개진은 필요할지 몰라도 그 이상의 의사결정식 대화는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나와 상대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는 것이다. 가족이나 친구처럼 가까운 사이에서는 더욱 말할 것도 없다. 그들과의 끈끈한 관계보다 중요한 사실관계가 있던가.



이 주임과 쏙 빼닮은 나 같은 사람들은 그럼에도 효율적인 의사결정에 대한 미련을 쉽게 버리지 못할 것이다. 공감하는 대화가 필요한 순간에도 나는 사실관계에 집착하고, 타인의 의견의 빈틈을 찾고, 직설적으로 타인의 의견에 반박하는 대화를 이어갈 것이다. 그럴 때는 세 가지 충고가 도움이 될 것 같다. 타인의 의사결정에 개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을 버릴 것.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보다 귀하게 여길 것. 그리고 지금 대화의 목적은 타인의 감정에 귀 기울이는 것임을 자각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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