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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경자 Feb 24. 2022

회사에서 멀리해야 할 사람들 유형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셜록홈즈는 사건을 의뢰하는 사람을 잠시 관찰하고 나서는 그 사람에 대한 수십 가지 정보들을 쏟아낸다. 미세한 것들도 놓치지 않는 관찰력과, 이를 가지고 사고를 확장시켜 나가는 추리력이 가히 압권이다. 이런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없을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살면서 종종 셜록홈즈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가끔 있기 때문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몇 가지 상황에서 부정적인 느낌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상황 자체만 보면 큰 문제가 아닌 것들이지만, 이를 통해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단점을 쉽게 유추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이런 때 쓰는 건가 쉽기도 하다. 정확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최근 유행하는 광고에서 면접관들이 우루오스를 사용하는 지원자에게 대번에 합격이라고 외치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이런 것들로만 사람을 평가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몇 가지 적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말을 쉽게 하는 사람들이다.


뭐든 쉽게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는가. 그런데도 쉽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실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의 여러 어려움들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들이 하는 이야기들은 걸러 들어야 한다. 이런 식이다. "몸짱 되는 거 쉬워요, 헬스장 가서 3달 정도 꾸준히 운동하고 단백질 먹으면 그거 아무나 할 수 있어요." 맞는 말이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꾸준히 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고, 사람마다의 체질이 다르기 때문에 단언할 수 없다. 그러니 이들의 말만 믿고 중요한 일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두 번째는 반드시라는 말을 자주 쓰는 사람들이다.


반드시 무언가를 해야 한다, 이런 표현을 즐겨 쓰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 세상에 반드시는 없다. 서울을 향해서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꼭 한 가지 길로만 갈 이유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세상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여러 변수들이 시시각각 발생한다. 반드시라는 말을 즐겨 쓰는 사람은 외부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하기보다는 자기중심적 사고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게다가 비장하기까지 하다. 일이 틀어졌을 경우에 타인의 귀책을 묻기 쉽고, 본인의 귀책이 명확한 경우에는 큰 실의에 빠져 주변에 피해를 준다. 비슷한 단어로는 어떻게든, 무조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등이 있다.


세 번째는 다른 사람의 말을 다 못 듣는 사람들이다.


남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자르는 사람들은 두 가지 부분에서 문제가 있다. 다른 사람이 어떤 말을 할지를 훤히 파악해서 더 들을 것이 없어서 말을 자르는 경우. 이들은 사실관계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타인의 감정에 대한 배려가 없어 감정적인 상처를 종종 준다. 또 하나는 그저 인내심이 부족해서 말을 자르는 경우. 이 정말 심각한 문제다. 사람의 내면이 선하고 말고 와 관계가 없다. 대화의 기술이 부족한 사람이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모멸감을 준다.


네 번째는 개인적 선호를 먼저 내세우는 사람들이다.


스스로 돈에 관심 없다고 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들이야 말로 알고 보면 돈에 환장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실 일리가 있다. 이는 담배를 끊겠다고 선언한 사람들이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비흡연자들보다 담배를 더 좋아하는 것과 같다. 그들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과 이에서 비롯된 사회적 노력의 여부는 가상하더라도, 그들이 언제나 그 노력에서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회사에서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나서서 호불호에 대한 이야기를 강조한다면 조심하자.


마지막은 타인에게 엄격한 사람이다.


이들이 스스로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면 적어도 억울할 일은 없다. 하지만 타인에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스스로에게 매우 관대한 사람들이 많다. 사실 세상에서 원리 원칙을 모두 지키면서 사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 나 역시 지키지 못하는 기준을 어떻게 타인에게 칼 같이 들이댈 수 있는가? 그러니 남들에게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는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한 자기 객관화가 전무한 사람들일 확률이 높다. 자기 눈에 대들보를 보지 못하고 타인의 행동에서 흠을 찾고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종종 타인에 대해 부정적이고 나쁜 이야기들을 쏟아 낸다.


위에 언급한 다섯 가지 특징은 사실 나의 부정적인 면에 관한 것이다. 정말 그런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종종 타인과의 대화 중에서 상대방 표정에서의 불편한 기색을 본다. 그것이 정말 불편한 표정인지, 나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상대를 불문하고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일이기에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추측이라고 생각한다. 최근들어 나는 자기 객관화를 통해 내가 말하고 생각하는 방식, 그리고 타인을 바라보는 관점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관찰하기 시작했다. 나의 어떤 모습이 상대방의 얼굴에서 부정적인 기색을 유발하는가. 이런 고민에 대한 해답이 앞서 이야기한 다섯 가지의 특징인 셈이다.


사실 이런 과정은 나에게 굉장히 받아들이기 힘든 일 중에 하나였다. 나의 내면에 있는 '선한 의도'보다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습관적인 행동으로 내가 평가받는다는 것이 처음에는 잘 받아들여지지도 않았고 억울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납득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하나를 통해 열을 본다. 나의 사소하고 무의식적인 습관을 통해 나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그도 그럴 것이 스스로 착하다고 믿는 얄팍한 선의보다는, 무의적으로 나오는 습관마저 참고 절제하는 것이 백번 더 어려운 일이고, 진정으로 선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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