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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경자 Mar 15. 2022

칭찬이 나를 병들게 했다

자극적인 제목이지만 사실이다. 칭찬은 나를 병들게 했다. 어릴 때부터 반복된 칭찬은 나를 칭찬에 목맨 사람으로 살게 했다. 칭찬은 상대적 비교를 통해서 이루어지므로, 내 주변의 그 누구가 나보다 더 나은가를 재빨리 파악하고, 그들보다 내가 더 많이 칭찬과 인정을 받는 것이 어딜 가도 내가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칭찬은 내가 스스로에 대해서 가지는 인식보다, 타인의 인정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도록 했다.


어른들의 눈에 맞춰진 바람직한 기준과 그를 달성했을 때 보상처럼 주어지던 칭찬은 달콤한 꿀이 발라진 독과도 같았다. 나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확인하기보다 타인의 인정에 기대는 버릇은 그렇게 순식간에 학습되었고, 이는 결국 자존감 형성에 큰 방해가 되었다. 나는 결과적으로 경쟁 지향적이고, 우월감과 열등감 사이를 늘 넘나들며, 타인에게 비치는 모습, 그러니까 내 의지로 결정할 수 없는 타인의 판단에 나의 존재를 내맡긴 노예로서 살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인생은 곧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과 같은 것이었다.


이것이 처음부터 나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어딜 가도 인정받는 아이였다. 그리고 그런 나의 모습에 대해서 스스로 자부심도 가졌다. 모든 사람들은 나를 치켜세웠고, 나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우월하다는 자만심에 빠져 살았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접하는 세상의 폭이 커지자, 그런 나의 인정 욕구는 한계에 다다르게 되었다. 확률적으로 봐도, 세상에는 나보다 여러 방면에서 더욱 뛰어난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10대의 대부분을 그런 우월감을 가지고 살아온 나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나의 20대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시간과도 같았다. 타조가 덤불 속에 얼굴을 묻고 애써 현실을 외면하듯 나 역시 그런 태도로 20대를 보냈다. 노력을 하지 않아서 그래, 제대로 했으면 좋은 결과가 나왔을 거야. 저건 내가 관심이 없는 분야야. 억지로 하는 것뿐이야. 그런 변명들로 나의 우월감을 유지하려 애를 썼다. 그리고 불행히도 몇 차례의 작은 행운들은 그런 우월감을 연명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문제는 그 뒤였다. 취업까지 하고, 회사를 열심히 다니면서 나는 이른바 불안 장애에 빠지게 되었다. 직접적인 원인은 오랜 시간 지속된 긴장이었다. 회사 생활을 하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고역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의 미숙한 모습도 보이지 않기 위해 긴장하고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몸에서 이상신호를 보낸 것이다. 스스로 가지는 우월감을 유지하기 위해서 나는 과도한 긴장 속에서 모든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 애를 썼다.


좋은 고과와 평가를 받고 남들보다 이른 진급도 했지만, 불안 장애 앞에서 그런 것들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나라는 존재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회사의 지위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라는 말인가.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내면의 나를 바로 세우는 일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보이는 부정적인 반응에도 태연할 수 있어야 했다. 그리고 부족한(사실은 타인이 그의 기준에 비추어서 부족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그러기에 나는 너무나 어른이었고, 어릴 적 형성된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런 나의 인생은 별반 특이할 게 없다. 칭찬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학자들의 견해가 차고 넘친다. 대표적인 것이 아들러의 주장이다. 아들러는 칭찬은 수직관계를 기반으로 한 자유의 개입으로 보았다, 따라서 칭찬에 길들여진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살기가 어렵다고 했다. 나의 인생은 그의 이론에 전형적으로 부합하는 하나의 사례인 셈이다. 그 외에도 지적 능력에 대한 칭찬이 역효과를 낸다는 실험 결과도 무수히 많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대로, 나는 평생 타고난 재능에 비해 성취가 부족한 실패자의 인생으로 내 삶을 인식하고 살아가고 있다.


이를 이겨내는 방법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러나 쉽지가 않다. 나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인식을 보이거나, 혹은 내가 다른 누군가에 비해서 초라하게 느껴질 때나, 혹은 가까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순간적으로 마음이 불안해지고 초조해진다. 그리고 나의 방어기제가 발동한다. 나는 완벽해. 그렇지 않아. 네가 이상한 거야. 내가 부족한 사람 일리가 없어. 그리고 곧 정반대의 극단적인 자기부정으로 이어진다. 이는 분노, 혹은 섭섭함과 같은 감정으로 표출된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사소한 상황에서도 불같은 불안이 일어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그러나 고래의 춤은 고래의 꿈이 아니다. 그저 인간들이 원하는 한낱 몸부림일 뿐이다. 어른들은 칭찬은 그 아이의 꿈이 아니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지금이라도 삶을 돌아볼 기회가 왔음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자 한다. 하루아침에 고쳐지지는 않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지금보다 나아지기만 하면 된다. 타인의 판단을 존중하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으로 이미  내 삶은 충분히 가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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