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방향

천천히, 사라지지 않기 위해 살아간다

by 해리

살아 있다는 건, 마음의 중심이 계속 흔들리는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시간과 내 시간이 서로 다른 속도로 흘러간다는 걸 알게 될 때,

그 불일치가 가장 아프게 닿는다.


어릴 땐 1년이 ‘기대’의 단위였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서, 시간아 좀 더 달려라, 다그쳤다.


그런데 이제는 1년이 ‘이별의 단위’처럼 느껴진다.

죽음에 한 발짝 더 가까워졌다는 실감.

어른의 마음은 ‘안타까움’이라는 체온으로 익어간다.


하루가 지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하루가 쌓인다.

시간이 잔인할 만큼 빠르다는 걸 느낄수록,

그 하루하루가 얼마나 귀한지 선명하게 보인다.


엄마의 나이 듦을 보면 가슴이 저민다.

먼저 떠난 아빠를 떠올리면, 그리움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언젠가 그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

그 생각에 오히려 마음이 단단해진다.


그래서 가끔은 행복한 순간에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마음 그대로 간직한 채,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영원이란 없다.

그럼에도, 영원이란 단어는 존재한다.

영원은 무엇으로 남을까.

결국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건

사람의 마음뿐일지도 모른다.


슬퍼하는 마음,

미워했던 마음,

그리고 사랑하며 기억하고 싶은 마음.


“그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리고, 사랑은 죽음의 언어를 끝내 배우지 않았다.”


사랑이 사라진 자리에,

여전히 사랑의 온도가 남아 있었다.


아빠를 사랑했던 마음은 내 안에 가득하다.

아빠는 이 세상에 없지만,

그를 사랑했던 마음만은

그의 생을 기억하는 우리 안에서 살아 있다.


그 행복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나는 미소 짓는다.

얼굴도 모를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주면, 아이는 웃으며 말한다.


“할아버지는 엄마를 정말 좋아했네.”


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눈을 맞췄다.


“할아버지가 너를 알았다면, 정말 너를 사랑해 주셨을 거야. 엄마랑 너는 똑 닮았으니까.”




주말 아침 남편이 심각한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같은 회사 직원이 갑자기…”


그날 남편은 밤늦게까지 장례식장에 머물다 집에 돌아왔다.

불 꺼진 식탁 위에 커피를 내려놓고 말없이 기대앉았다.


“잘 밤에 무슨 커피야… 친했던 분이었어?”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파트는 아니었지만, 이야기도 자주 나누고,

건강하고 밝은 분이었다고 했다.


“혹시 왜 돌아가셨는지 물어봐도 돼?”


남편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심장마비래. 가족이 다 있었는데,

병원에 도착하니 이미…”


그의 어깨를 가만히 감쌌다.

남편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이제 우리 나이가 결혼식보다 장례식을 더 자주 가야 할 나이가 됐나 봐. “


나는 잠시 망설이다 따뜻한 차를 건넸다.


“하루에 한 번씩만이라도 얼굴 보며 대화하자.

밥 먹었는지, 오늘 뭐가 있었는지,

아이 얘기라도. 그런 사소한 것들.”


그 평범한 것들을 잃은 채 살아온 건 아닐까.


말 한마디, 눈빛 한 번, 웃음 한 조각.


그런 것들이 내 세상에서의 마지막 기억이 될지도 모른다면,

사람들은 조금 더 다정하게,

조금 더 사랑스럽게 살아가려 하지 않을까.


죽음은 멀리 있지 않다.

그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을 더 단단히 붙잡는다.


하루하루를 애틋하게,

아까워하며 살아가고 싶다.


“그래서 나는, 사라지는 것들 사이에서 매일 숨을 고르며 살아간다.

오늘의 온기를 잃지 않기 위해.”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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