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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바트로스 May 17. 2021

'코인충'이되고 나서깨달은 것들

어리석은 사람들과 조금 덜 어리석은 사람들

바야흐로 능력과 스펙 지상주의 시대가 가고 일확천금과 한탕주의의 시대가 오고 있다. 코로나로 경기가 침체되면서 각국 중앙은행에서 돈을 마구잡이로 찍어내는 탓에 돈의 가치는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이제 화폐는 가치저장 수단으로써의 기능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수십 년을 노예처럼 꼬박 일해도 서울에 집 한 채 살 수 없다는 이야기는 이제 귀가 따갑도록 들었을 것이다. 부동산과 주식에 이어 이제는 만나는 사람마다 가상자산에 미래가 있다며 지금 당장 사라고 침을 튀기며 이야기한다. 


현 세태를 조롱하기 위해 IBM 출신 개발자 빌리 마커스와 잭슨 파머가 장난 삼아 3시간 만에 만들어낸 ‘도지 코인’은 테슬라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의 말 한마디에 폭등과 폭락을 반복한다. 일명 ‘코인충’들이 그 가치를 맹신하고 있으며 코인계의 삼성전자와도 같은 지위를 누리고 있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도 시작은 ‘도지코인’과 다를 바 없었다. 일론 머스크의 말 한마디에 시세가 결정된다는 점에서도 그 둘은 ‘도지코인’과 꼭 빼닮았다.


모 방송사에서는 코인 광풍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려는 시도로 직접 코인을 제작하는 영상을 만들기도 했다. 코인 제작용 유료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하여 코인 이름과 발행수량 그리고 개당 가격을 입력하니 금세 유명 방송사의 이름을 딴 코인 하나가 만들어진다. 블록체인 기술과는 전혀 무관하지만 이름도 그럴듯한 것이 나도 한 개 사고 싶어 질 정도로 감쪽같다.


사람들은 어느 이름 모를 개발자가 장난 삼아 만들어낸 장난감에 전재산을 투자하고 울고 웃고를 반복한다. 어느 날은 일론 머스크가 인류를 구할 선구자인 것처럼 말하던 사람이 또 어떤 날은 그를 극악무도한 사기꾼으로 몰아세운다. 배짱도 없고 소신도 없으며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2017년 처음 비트코인을 접했던 나는 당시 어딘가 꺼림칙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탈중앙화 블록체인 기술이니 반감기이니 하는 뻔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것이 본질적으로 무엇이며 구체적으로 어떻게 현 통화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라는 궁금증을 나는 끝내 풀지 못했다. 결국 당시 나는 비트코인에 단 1원도 투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비트코인 시세가 8000만 원을 돌파하자 사람들은 점점 더 비트코인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도 이번에는 두 손 두발을 들 수밖에 없었다. 지인들의 성화에 못 이겨 2주간 소액으로 비트코인 투자를 해보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돈을 따 보기도 했고 잃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 '코인충' 경험을 통해서 나는 돈벌이보다 훨씬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바로 인간의 탐욕과 심리에 대한 이해이다. 


현시대 비트코인 광풍의 핵심은 통화 시스템 개혁이나 블록체인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여태껏 어느 시대에나 쭉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바로 어리석은 사람과 조금 덜 어리석은 사람이다.


사람들은 소외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피땀 흘려 번 돈을 비트코인에 투자한다. 그곳에는 '혹시라도 내 돈이 수십 배로 복사되지 않을까?'라는 기대심리가 있다. '옆집 누구누구는 비트코인으로 은퇴했대'라는 출처가 불분명한 말들은 사람들을 더욱 괴롭힌다. 사람들은 제멋대로 기대하고는 어김없이 실망한다. 사람들의 기대, 염원, 소외감, 보상심리가 한데 모인 비트코인은 그 자체로 신기루이다. 


코인 광풍은 어쩌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근로소득이나 자본소득으로 부의 축적을 기대하기 힘든 기형적인 사회에서 나타나는 사회병리현상일지도 모른다. 만약 당신이 코인에 빠져있다면 이 글을 읽는 내내 불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이 조금이나마 당신을 어리석은 사람에서 덜 어리석은 사람으로 바꿔줄 수 있다면 그로써 이 글은 그 사명을 다 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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