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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바트로스 Apr 29. 2021

"4차 재난지원금 지급대상이 아닙니다"

더 못난 사람이 대우받는 사회

"선생님은 4차 재난지원금 지급대상이 아닙니다."


한가롭게 한강에서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고 있던 어느 평일 오후 긴급고용안정센터라는 곳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의 남성은 내가 작년 고용보험가입자이고 사업자등록증을 소지하고 있기 때문에 신청한 재난지원금을 수령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고 했다. 한마디로 내가 충분히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나라에서 돈을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저는 작년부터 코로나 재난지원금을 단 한차례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수입도 급격하게 감소했고요. 저 같은 사람들은 누가 구제해줍니까?"

"원칙상 어쩔 수 없습니다. 아직 한국에는 고용보험도 가입하지 않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많거든요. 수고하세요."


전화를 끊고 나는 복잡한 심정이었다. 우선 들어올 예정이던 돈을 못 받게 된다는 사실에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더 가지지 못한 자'와 성장이 아닌 '분배'에만 초점을 맞추는 세상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와 묘한 오기가 생겼다. 마치 더 못난 사람을 가리는 대회를 보는 것 같았다.


분명 나는 남들보다 더 부지런히 움직였을 뿐이다. 결코 남들보다 편하게 일하지도 않았으며 부당하게 이득을 취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단순히 그들보다 좋은(?) 노동조건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그리고 사업자등록증이라는 부르주아(?)를 상징하는 종이 쪼가리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역차별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코로나라고 남들 다 집에서 쳐 놀 때 열심히 일해서 내 손으로 돈 번게 죄인가? 그깟 푼돈 줘도 안 가져. 평생 써도 다 못쓸 만큼 내 돈은 내가 번다.'


어디선가 읽은 만평에서 코로나 지원금을 주인님이 주는 먹이로, 지원금만 바라보며 사는 대다수의 무기력한 국민들을 개로 표현했던 것이 기억났다. 어찌 보면 잘된 일인지 모른다. 무기력한 개로 살아가기에 나는 잠재력도 능력도 자존감도 무궁무진한 사람이라고. 나는 야생의 늑대가 훨씬 더 어울린다고. 세상이 그렇게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아주 사소한 사건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고용안정센터에서 걸려온 전화는 잠자던 나의 야생성을 일깨워 주었다. 그렇게 '가지지 못한 자'와 '분배'만을 좋아하는 세상을 향한 복수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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