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백조들이 거쳐야만 하는 통과의례
방황하던 2017년의 어느 여름날이었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할 겸 회사에 며칠간 휴가를 내고 대한해협을 건너 제주도를 찾았다. 공항을 나서자 들려오는 익숙한 모국어와 운전석이 왼쪽에 달린 차들이 새삼 반가웠다. 야심한 새벽 시간 시원한 밤공기를 맞으며 나 홀로 텅 빈 제주도의 국도를 달렸다. 새벽의 적막을 관통하는 고요한 파도소리가 좋았다. 그때 자동차 라디오에서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카니발의 ‘거위의 꿈’이었다.
가수 이적이 23살이 되던 해였다. 그가 뮤지션이 되겠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그를 비웃으며 만류했다고 한다. 그때의 울분과 감정들을 담아 써낸 곡이 ‘거위의 꿈’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그는 지금 뮤지션으로 성공했다. 자신이 미운 오리 새끼인 줄 알았던 그는 사실은 백조였던 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운전대를 잡은 두 손 사이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유명해지고 싶었고 성공하고 싶었다. 그러나 하루하루 바람처럼 흘러가는 시간 속에 내가 꿈꿔왔던 모든 것들이 허망하게 사라져 가고 있었다. 방향을 잃은 타지 생활은 괴로웠고 세상을 향한 나의 외침은 메아리가 되어 흩어질 뿐이었다.
그러나 그날 내 가슴속에 던져진 돌멩이는 잔잔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내 삶을 변화시켜 나갔다. 결국 나는 익숙한 것들로부터의 결별을 택했다. 사람들의 비웃음과 만류에도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고 나의 세이프존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갔다.
안데르센의 작품에서 미운 오리새 끼는 물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지 못하고 방황한다. 그는 자신을 미운 오리 새끼라고 부르는 자들에게서 벗어나 넓은 세상을 향해 당당히 나아간다. 그리고 그가 알던 좁은 세상을 떠나 여기저기 떠돌아다닌다.
다른 모든 형제자매들과 동물들이 미운 오리 새끼를 욕할 때에도 그를 지켜주던 엄마 오리마저 그를 져버렸을 때 그는 결국 울타리를 넘어 달아나 버린다. 들오리들이 살고 있는 넓은 늪으로 갔다가 사냥꾼의 총에 맞아 죽을 고비를 넘긴 그는 고양이와 암탉 한 마리를 만난다. 저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는 미운 오리 새끼에게 그들은 현실을 직시하라며 그의 꿈을 짓밟으려 한다.
퇴사 후 세이프존을 벗어난 생활은 고난과 당혹스러움의 연속이었다. 사람들은 정성스레 만든 전단지를 받자마자 꼬깃꼬깃 접어버렸고 내가 하는 말을 진지하게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업은 뜻대로 되지 않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거의 매일 새벽까지 배달일을 했다.
방황 끝에 동경해 마지않던 아름다운 백조들을 만났을 때에도 미운 오리새 끼는 자신이 그들과 같은 백조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 순간 호수에 비친 자신의 우아한 모습을 보고 미운 오리새 끼는 깨달았을 것이다. 이 모든 고된 여정이 사실은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기 위한 것이었음을.
안데르센은 젊은 시절 연극배우를 꿈꾸었지만 포기해야만 했고 가난 때문에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던 탓에 문법과 맞춤법이 엉망이었다. 그래서 그는 글쓰기를 시작하고도 줄곧 외면받아왔다. 하지만 안데르센은 미운 오리 새끼를 쓰는 시점에 이미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들이 백조가 되어 우아하게 하늘을 날기위한 하나의 과정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아직 거울 속에 비친 백조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자. 우리가 정말로 백조라면 자신이 백조임을 깨닫는 과정이 편하고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다. 백조로서의 참된 자아를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야만 한다. 이 모든 방황과 고난 그리고 역경은 세상의 모든 백조가 겪는 하나의 과정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모두 인생에 있어서 한 번쯤 미운 오리 새끼가 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하는지도 모른다. 신나게 깨지고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 해질 즈음 우리는 호수에 비친 백조의 모습을 보며 미소 지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