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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바트로스 Jun 28. 2021

당신은 항해하고 있습니까? 아니면표류 중입니까?

인간에게 자유의지란 존재할까?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인간 속에는 오직 서로 충돌하는 욕망만이 존재할 뿐이며 매 순간 싸움에서 이긴 욕망이 우리의 행동을 지배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코로나로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저는 제 인생을 돌아보고 앞으로 저의 인생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저는 의외의 당혹스러운 진실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바로 저는 스스로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으며 애초에 저에게 자유의지란 없었다는 불편한 진실입니다.


제 하루를 돌아보면 이렇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하며 하루의 계획을 세우는 순간만큼 저는 세상의 모든 일을 거뜬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의욕 넘치는 사람이 됩니다.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나서 책을 펼쳐 듭니다. 그날 읽는 책의 내용에 따라 저는 심오한 철학자가 되기도, 어느 날은 금전적 자유를 얻은 여유로운 지중해 부자가 되기도 합니다. 책의 내용에 따라 저의 두뇌 회로가 바뀌는 것입니다.


슬픈 사실은 제가 그날 읽을 책을 정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생각해보면 어떤 책을 읽을지 정해버리는 것은 순전히 그날의 기분과 감정상 태일뿐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진정한 의미에서 제가 읽고 싶은 책을 정할 수 없습니다. 많은 경우에 제 행동은 감정상태와 외부의 자극이 정합니다.


이처럼 독서나 운동이라는 비교적 바람직한 활동을 할 때조차 그 안에 저의 자유의지는 없는 것 같습니다. 습관과 이성이라는 미미한 뗏목에 의지해 일상이라는 파도를 헤쳐나가려 안간힘을 쓰지만 저는 그저 매 순간 저에게 가해지는 자극을 겪어나갈 뿐입니다. 스피노자의 말처럼 정말로 인간에게 자유의지 따윈 없는 것일까요?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근거는 이 밖에도 무궁무진합니다. 당장 우리가 매일 막대한 시간을 보내는 유튜브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알고리즘이 보내오는 자극에 휩쓸릴 뿐입니다. 정신을 차려보면 소중한 우리의 24시간이 삭제되어 있습니다. 유튜브의 끝은 마치 야동을 봤을 때처럼 허탈함만 가득할 뿐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귀여운 강아지 영상이나 요즘 유행하는 투자정보에 관심이 있어서 자유의지에 의해 그 영상들을 보게 되는 걸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새벽 챙겨보는 해외 축구경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도대체 수천 km 떨어진 유럽의 어느 작은 도시에서 펼쳐지는 축구경기가 뭐길래 저는 목숨 걸고 생방송을 사수하려고 하는 걸까요? 입맛을 자극하는 배달음식은 또 어떤가요? 배가 고프지 않다가도 배달 어플을 켜는 순간 저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주문 버튼을 누르는 한심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정보를 비롯한 자극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범람하는 자극 속에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조종당하기도 합니다. 주식이나 가상화폐에 투자해본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개미 털기가 시장에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평생을 표류하다 눈치채지도 못한 채 덧없이 인생을 끝마칩니다.


덜컥 겁이 났습니다. 더 이상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 척만 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내기는 싫었습니다. 자유의지는 없을지언정 제 인생의 방향키는 제가 잡고 가고 싶었습니다.


제가 찾은 해답은 아이러니하게도 세상 모든 것을 의심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습관이었습니다. 심지어 나 자신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생각은 쉽게 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닙니다. 우리는 뗏목에 매달려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처럼 필사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생각할 때에만 우리는 성장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외부의 자극과 감정에서 벗어난 진정한 자신과의 대화와 생각만이 자유를 주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고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의 말로 들어가는 글을 마무리해보려 합니다. 


‘출항과 동시에 사나운 폭풍에 밀려다니다가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같은 자리를 빙빙 표류했다고 해서, 그 선원을 긴 항해를 마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긴 항해를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오랜 시간을 수면 위에 떠 있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노년의 무성한 백발과 깊은 주름을 보고 그가 오랜 인생을 살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백발의 노인은 오랜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 다만 오래 생존한 것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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