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쉬어가다
낡아빠진 허름한 기차와 진한 짜이티 냄새 그리고 시끌벅적한 역사의 풍경. 기차여행이 주는 특유의 낭만과 설레임은 아직도 그 때 그날을 생생하게 추억하게 해준다. ktx처럼 총알같이 빠르지도 않고 제시간에 맞추어 도착하지도 않으며 가끔은 내 자리를 침범당해도 좋다. 언젠가는 다시 인도의 낡은 기차를 타보고 싶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와의 만남과 파스텔톤 성당 그리고 아름다운 바닷가로 평생동안 기억될 고아를 뒤로하고 이번여행 첫 북인도 행선지 뭄바이(Mumbai)행 기차에 올랐다. 고아에서 뭄바이까지는 자그만치 600km. 기차로 약 20시간이라는 대장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북인도에는 또 어떤 스토리와 만남들이 나를 기다리고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늦은 밤 주섬수섬 배낭을 챙겨 숙소를 나와 기차역으로 향했다. 플랫폼 앞에 배낭을 돗자리삼아 깔고앉아 책을 읽으며 두시간 남짓 기다렸을까? 예정되어있던 출발시간을 훌쩍 넘기고 나서야 어슬렁 어슬렁 기차가 플랫폼으로 기어들어왔다. 하지만 늘상 있는일이라는듯이 아무도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인도의 기차에는 세가지 칸이 있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1등(AC)칸, 낡은 선풍기와 허름한 침대칸이 있는 2등 슬리핑칸(SL), 그리고 시설이 매우 열악하고 더러워서 현지인들도 꺼린다는 3등칸이다. 나는 현지인들이 주로 이용한다는 2등 슬리핑칸을 타보기로 했다.
2등 슬리핑칸은 기차여행의 낭만을 즐기기에 손색이 없었다. 달리는 기차에 누워 12월 인도의 제법 쌀쌀한 밤공기를 느꼈다. 바깥 경치를 보며 사색에 잠기다가 기차가 역에 정차하면 짜이티를 한잔 사들고 역사를 잠깐 걸어다니며 여유를 즐겼다.
노곤함을 달래려고 잠시 잠을 청하고 일어났을 때 나는 문화충격에 휩쌓였다. 내 얼굴 앞에 모르는 사람의 엉덩이가 떡하니 놓여있었고 발 밑에는 어떤 꼬마애가 앉아서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기차표를 살 돈이 없는 현지인들의 무임승차 현장이다. 평소같았으면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쫓아냈겠지만 왠일인지 화도 나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뭄바이행 기차여행에서 마음을 비우고 잠시 쉬어가는 연습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