뭄바이

자위대 청년을 만나다

by 알바트로스


거대한 매연의 도시


20시간의 대장정을 끝으로 드디어 그 유명한 뭄바이(Mumbai)에 도착했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때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웅장한 역사 건너편에는 시계탑과 함께 맥도날드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참고로 인도 맥도날드에는 소고기 패티가 들어간 햄버거가 없다!) 이 곳에서 남인도의 여유로운 풍경과 순박한 사람들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릭샤꾼과 잡상인들의 호객행위 그리고 쉴 틈 없이 울려대는 경적소리와 매캐한 매연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
게이트 오브 인디아


이 곳의 명물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는 영국 통치시절 당시 영국왕 조지 5세의 인도 방문을 기념해서 세워진 건축물이라고 한다. 건너편에는 인도 군인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에 만든 '게이트 오브 인디아'라는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군인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한 건축물 건너편에 영국왕을 기념해서 만든 건축물이 있다니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었다.


보트를 타고 뭄바이의 명물을 감상할 수 있는 보트투어
다짜고짜 사진을 찍어달라는 현지인들...


자위대 청년을 만나다


뭄바이 시내투어를 마치고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인도여행 가이드북을 펼쳐놓고 뭄바이에서 가볼만한 곳을 찾아보던 중 어떤 젊은 동양인 남자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 남자는 나를 의식하는듯이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도움이 필요한 관광객인가? 영어를 배우러 뭄바이에 어학연수를 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니 영어를 배우러 온 학생일수도 있겠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카페를 나섰다.


다음 행선지를 짜이푸르(Jaipur)로 정하고 기차표를 알아보러 티켓팅 대행업체를 찾았다. 그런데 거기에 왠지 낯이 익는 남자가 한명 있었다. 바로 몇시간전 카페에서 보았던 그 사람이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다가오더니 자연스럽게 일본어로 인사를 건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일본어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대화가 꽤 많이 진행된 이후에야 나는 내가 일본에 살고있는 한국인 유학생이라는 것을 밝혔다.


그는 내가 한국인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이 놀라면서 반가워했다. 예상대로 그는 나랏돈으로 뭄바이에 한달동안 어학연수를 왔다고 한다. 하고싶은게 딱히 없어서 수년전 일본 시골에서 도쿄로 상경하여 자위대에 입대했다고. 어딘지 모르게 순박해 보이는 검게 그흘린 얼굴과 짧은 머리를 보고 내 군시절이 떠올랐다. 인도를 여행하다 일본 자위대원을 만나다니 정말 희안한 인연이다 싶었다.


쪄죽을 듯이 더웠던 그날 우리는 배가 고프다며 뭄바이 시내를 방황했다. 허름해 보이는 현지 음식점에 들어가서 가장 노멀해 보이는 양고기 카레를 하나 시켰다. 배탈이 나지 않게 심혈을 기울여서 메뉴를 선정하는 나와는 다르게 그 친구는 배탈이 나도 상관 없다는 듯이 정말 아무거나 잘 주워먹었다.


어느 한국인 여행자가 길거리에서 파는 라씨(인도식 요거트)를 먹다가 배탈이 나서 하루만에 한국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는 아무거나 주워먹다가 한방에 가는수가 있다고 핀잔을 주었다. 그 친구는 해맑게 웃었다.


우리는 서로의 군생활 경험에 대해 썰을 풀었다. 독도문제나 한일역사같이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어느 나라 군대나 자유가 억압되는 환경속에서의 생활이 쉬울리가 없었다. 동병상련의 감정이 느껴졌다. 그날의 여행에서 한국인과 일본인이라는 구별은 무의미했다.


기차시간이 다가오고 각자의 여정을 향해 서로 갈길을 갈 시간이였다. 시종일관 예의바르고 순수했던 그 청년은 나에게 종이쪽지 하나를 건냈다. 일본 핸드폰 번호와 이메일 주소가 적혀있었다. 일본에 오면 꼭 한번 만나자고 했다. 그렇게 진한 여운을 남긴채 우리는 작별인사를 나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자이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