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포르투갈과 대항해시대의 낭만
함피에서 서쪽 바다를 향해 300km를 달려 도착한 이 곳의 풍경에서 인도스러운 느낌은 별로 찾아볼 수 없었다. 스페인 혹은 포르투갈에나 있을법한 오래된 성당과 건물들에 인도의 자유로움과 무질서함이 더해진 이 곳은 라틴아메리카의 독특한 분위기와도 매우 닮아있다. 거리 뒷골목 곳곳에 붙어있는 독특한 산스크리트어와 힌디어 간판만이 이 곳이 인도라는 것을 알려주는 유일한 표식이었다.
인도 서해안에 위치한 이 곳은 해산물 요리와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하여 유럽의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아라비아해와 마주하고 있는만큼 유럽과 중동의 상인들과 교류가 활발했던 역사깊은 곳이기도 하다. 고아는 16세기 대항해시대 포르투갈 함대가 이곳을 점령한 뒤 인도에 다시 반환되기 까지 수세기 동안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남아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 특수성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고아는 자치주로 남아있다.
하는일이 잘 안풀리고 고민과 스트레스에 압도당하는 고난의 시기를 겪을 때마다 나는 조용히 내 과거의 발자취를 꺼내본다. 그리고 바로 나는 말도안되게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유학을 준비하면서도 직장을 들어갈때도 군생활을 하러 잠시 한국에 들어왔을 때도 여자친구들을 사귈 때도 나는 모든것을 원샷 원킬로 끝내버렸다. 때로는 불가능해 보이던 일도 내가 원하면 다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마치 신께서 세상을 향해 불평하려는 나의 입을 틀어막고 '닥쳐! 넌 불평할 자격 없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다. 나는 운이 너무 좋기때문에 불평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고아에는 참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성당이 많다. 이 곳 성당의 고즈넉한 정취에 반해버린 나는 오토바이를 빌려타고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도시 외곽에 있는 봄 지저스 성당 (The Basilica of Bom Jesus)을 향해 달렸다. 봄 지저스 성당은 교황청으로 부터 대성당(Basilica) 칭호를 받은 인도 최초의 성당이라고 한다. 로마같은 거대한 남유럽 유적지에서는 대성당을 찾기가 어렵지 않지만 수천km 떨어진 힌두교의 나라에서 대성당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대항해시대의 다이나믹한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이 곳은 그 자체로 문화유적이라고 할만했다.
이 성당의 수호성인(Saint)은 16세기에 고아에 정착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St. Francis Xavier)라는 포르투갈의 성직자로 고아의 카톨릭 신자들에게는 정신적 지주라고 할 만큼 매우 특별한 존재라고 한다. 내가 봄 지저스 성당을 방문 했을 때 성당 밖까지 엄청난 인파의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행렬을 따라 줄을 서서 성당 내부로 들어갔다.
성당 한가운데에 도착했을 때 나는 기겁을 했다. 그 곳에는 바로 이 성당의 수호성인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유리관이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유리관 속에는 500년이 넘는 세월동안 미라화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썩지 않은 시신이 모셔져 있었다. 500년의 세월을 뒤로하고 성인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눈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인사를 건내고 있었다. "안녕, 억세게 운좋은 친구!"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성당을 찾았던 그 날이 바로 10년에 한번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썩지않은 시신을 대중들에게 공개하는 날이었을 것이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무턱대고 마음가는대로 봄 지저스 성당을 찾았던 나는 뜻밖에 10년에 한 번 오는 기회를 잡은 행운아가 되었다.
혹자는 여행을 떠나기 전 비행기와 숙소를 예약하고 계획을 짜는 것이 여행의 묘미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가끔은 여행에 아무런 계획이 필요없을 때가 있다. 그저 마음가는대로 가고싶은 곳에 가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발길 닿는대로 떠난 그 곳에서 뜻밖의 행운을 만날 수 있을지 누가 아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