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갈로르에서 북인도의 뭄바이로 가기 전 들러볼 다음 행선지를 찾다가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아무렇게나 흩어져있는 어떤 신기한 풍경사진 하나를 보았다. 방갈로르에서 북서쪽으로 350km 떨어진 곳에 있다는 그 풍경사진속 마을은 마치 화성탐사선 큐리오시티호가 보내온 사진속 화성 표면을 연상시켰다. 새로운 구경거리를 찾던 나는 매우 독특한 풍경에 강한 끌림을 느껴서 바로 그 곳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강한 끌림을 느낀 함피의 기괴한 풍경
기암괴석과 옛 사원들이 어우러져 지구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기이한 풍경을 만들어내는 그 신비한 마을의 이름은 바로 함피(Hampi)였다. 화성에 직접 가본적은 없지만 화성에 가보면 분명 이런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고도로 발달한 문명을 가진 화성인들이 초능력으로 거대한 바위들을 한번에 공중으로 들어올려 여기저기 흐트러 뜨리고 그 사이로 건물을 지어 놓은듯한 느낌라고 할까?
언덕에서 내려본 함피의 전경
14~15세기경 강성했던 어떤 왕국의 수도였다고 하는 이 곳에는 당시의 건물들과 사원들이 폐허속에 남아있다. 1986년에는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고 한다. 함피는 규모가 작은 마을이라 직통버스가 다니지 않는다 않는다. 기암괴석에 둘러쌓인 특유의 지리적 조건도 분명히 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큰 원인중 하나일 것이다. 버스로 함피에 가려면 호스펫(Hospet)이라는 도시에 내려서 작은 마을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그러나 함피는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 하고서 라도 꼭 가볼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함피 중심가의 힌두교 사원에서
당시에만 해도 함피는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인 것 같았지만 함피에 머무는 동안 정말 많은 유럽인들을 보았다. 기암괴석과 유적의 마을안에서 요가와 명상을 하는 동시에 모험을 즐기러 오는 여행자들에게 인기였다. 함피는 걸어다니거나 자전거를 타기에는 길이 험하다. 해가 떨어지고 나면 온통 암흑 천지라서 걸어다니다가 길이라도 잃으면 잘못하면 영원히 마을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곳에서 이동할 때는 주로 오토바이를 이용했다.
14세기 이 곳을 지배했던 옛 왕국의 흔적
함피 중심지에서 오토바이로 30분을 달려간 곳에는 옛 왕국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돌산을 따라 계속해서 달리다보면 옛 왕궁터와 사원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왕궁을 따라 나있는 거대한 길을 따라가니 기암괴석 사이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왕궁과 사원들이 신비로운 아우라를 뿜어내며 나를 반겨준다. 나는 하염없이 이 길을 걸으며 정말로 이 곳에 먼 옛날 외계인들이 다녀간 것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 황량한 돌산과 광대한 유적지는 초월적인 존재가 살고있는 다른세상으로 통하는 관문과 같은 느낌을 준다.
매일 지는 해를 보았던 환상의 선셋 포인트
함피 마을 근처 바위산 위는 환상적인 선셋 포인트다. 해질무렵이면 나는 어제나 바위산 위로 향했다. 그리고 고독을 즐기며 해지는 것을 보고 숙소로 돌아오곤 했다. 여전히 함피는 다시 인도에 가게되면 꼭 찾아가고 싶은 최고의 관광지다.
한국인 여행자를 만나다
인도 남부를 여행하는 동안 한국인 여행자를 본 적이 없다. 남인도에서부터 이 곳 함피까지 오는동안 세계 각지에서 온 수많은 여행객들을 만났지만 그 사이에서 유독 한국인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 곳에서는 한두명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카페나 레스토랑에 앉아서 유심히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했지만 그 속에서 한국인 여행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숙소 근처 거리를 걷던 도중 드디어 한국인 처럼 보이는 어떤 남자 한명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쳤지만 세번 이상 마주쳤을 때는 이것도 인연이다 싶어 말이라도 한번 걸어보기로 했다. 나는 무턱대고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냈다. “오~ 한국분이세요? 반가워요!” 내 또래로 보이는 그 남자분은 처음의 무뚝뚝해 보이던 인상과는 다르게 매우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었다.
해외에서 홀로 배낭여행을 하다가 오랜만에 한국사람을 만나니 왠지모르게 무척이나 반가웠다. 우리는 금새 말을 트고 친해졌고, 함피에서 남은 며칠간 일정을 같이했다. 알고보니 그 분은 나보다 다섯살이 많은 형이었다. 한국에서 액세서리 디자인과 영업일을 하다가 답답한 마음에 나처럼 혼자 인도로 훌쩍 배낭여행을 떠나왔다고 한다.
우리는 유적지 근처 레스토랑에서 맥주를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술이 들어가자 그 형은 한국 사람들은 인생이 너무 여유가 없고 팍팍하다며 여행을 좀 더 많이 다니고싶다며 속내를 털어놨다. 액세서리 디자인과 영업을 한다던 그 형은 자신의 직업에 매우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얼마전 까지 일본 유학을 하고 현지에서 취업을 준비했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이래서 한국사람들이 배낭여행을 갈 때에도 항상 동행을 찾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 날 처음본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십년지기 친구나 된 것 처럼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고 금새 가까워질 수 있었다. 불과 며칠전 코치에서 외로움이 뼈에 사무치는 경험을 해봐서인지 여행지에서 만난 그 형이 느꼈을 외로움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여행지에서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우리는 모두 가족인지 모른다. 함피에서의 마지막날 우리는 연락처를 주고받고 언젠가 한국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며 그렇게 각자의 행선지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