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에서 방갈로르로 가는 야간버스는 닭장 같이 비좁았다. 버스안에 달려있는 TV에서는 인도 전통복장을 한 사람들이 힌디어인지 타밀어인지 모를 알 수 없는 언어로 끊임없이 말을 하며 때로는 춤을 추고 때로는 시끄럽게 노래를 불러댔다. 사람들은 영화를 보면서 큰소리로 웃고 떠들기도 하고 피곤에 쩔어있는 표정으로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잠을 청하기도 했다. 버스 시설은 퍼스트 클래스였지만 승객들은 전혀 퍼스트 클래스의 품격을 갖추지 못했다. 전형적인 개판오분전 난장판 인도 버스였다.
10년동안 일본에 살면서 내가 공공예절에 너무 예민해 진 탓일까? 내 앞자리의 인도인은 뒷자석에 앉은 사람에 대한 배려없이 리클라인을 뒤로 최대한 재끼고 잠을 청했고 나는 그게 매우 불쾌했다. 가뜩이나 협소한 공간이었는데 이제는 의자가 내 무릎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참다참다 더이상 참을 수 없어진 나는 앞좌석 사람을 깨워서 버럭 화를 내며 앞자리 의자를 도로 앞으로 재껴버리고 잠을 청했다.
여러모로 지옥같던 10시간의 이동이 끝나고 인도의 실리콘벨리로 불리는 방갈로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방갈로어는 HP, Intel, Infosys와 같은 다국적 기업의 분사가 밀집해 있는 곳이라고 한다. 또한 인도 항공우주산업의 메카로써 인도 항공산업 개발 및 생산의 65%를 담당하고 있다고 하니 가히 최첨단 기술 도시라고 할만 하다. 항공, 우주, IT대국 인도를 대표하는 도시 답게 각종 다국적 기업과 은행의 로고와 간판이 눈에 띄었다. 잘 포장된 넓은 도로와 고층 건물들이 인상적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고층빌딩과 도시풍경이 너무 반가웠다.
인도의 항공, 우주, IT를 대표하는 도시 방갈로르
호텔에 체크인을 잽싸게 마치고 나는 지체없이 애플 수리센터로 달려갔다. 이 곳 물가를 생각하면 수리비용은 매우 비싼 편이었지만 이것저것 따지고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스마트폰이 무사히 복구되기만을 간절히 바랬다. 아이폰을 맡겨놓고 시간가는줄 모르고 편안한 마음으로 도시풍경을 구경했다. 나는 고층빌딩 사이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어쩔 수 없는 도시사람인가보다. 카페에서 랩탑을 켜고 그동안의 여행사진을 정리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사막속 오아시스 같은 이 곳에서 오랜만에 휴식다운 휴식을 취하며 조금씩 기력을 회복해가고 있었다.
몇시간 후 수리센터를 다시 찾았다. 수리는 성공적이였다. 며칠만에 전원이 들어온 스마트폰을 보니 또다시 울컥했다. 며칠사이에 내 안부를 걱정하는 수십통의 메세지가 와있었다. 나는 바로 메세지에 답을 하고 통화를 하며 생존신고를 마쳤다. 사진첩의 사진들을 안전하게 백업하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생기를 되찾고 나서 또다시 방갈로를를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여지껏 다녀본 인도의 여타 도시와는 다르게 각종 편의시설이 너무 잘 갖추어져 있었다. 인도의 실리콘벨리라고 불리우는 만큼 그 곳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다국적 기업의 주재원이나 돈 좀 있어보이는 사업가가 대부분이었다. 첨단 기술과 교육열로 무장한 어메이징한 인도의 또다른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나는 이 곳에서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았다. 이 곳에서 만큼은 사서 고생하며 관광지를 찾아가지도 않았고 돈을 아끼려 로컬 음식점에 가지도 않았다. 거대한 프랜차이즈 음식점과 쾌적한 카페만 골라다녔다. 거지가 구걸을 하러오면 나는 땡전한푼 주지 않고 매몰차게 쫓아버렸다. 이 곳 방갈로르라는 오아시스에서는 아무도 내 휴식을 방해할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인도여행이라는 개고생의 여정에 잠시 쉽표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