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

캐스트 어웨이

by 알바트로스


정글 보트


인도 남동부 타밀나두주의 마지막 목적지였던 땅끝마을 칸야꾸마리를 찍고 인도 남서부 해안에 위치한 케랄라주(Kerala)의 코치(Kochi)라는 도시로 향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북진이 시작된 것이다. 버스로 무려 7시간이 넘게 걸리는 긴 여정이었다. 새벽녘에 출발한 버스 창밖으로 아침해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할 무렵 마을의 쓰레기 태우는 매캐한 냄새가 사라지고 몽환적인 느낌의 울창한 야자수 숲이 펼쳐졌다.


남인도 여행도 이제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었다. 남인도의 순박한 사람들과 때묻지 않은 풍경을 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몰려왔다. 그러나 이제 본격적으로 더럽고 북적거리고 정신없는 인도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북인도를 향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뭄바이와 타지마할 그리고 김종욱 찾기의 블루시티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아쉬움과 기대감이 교차했다.


코치 정글보트에서


코치에는 해변과 정글 숲을 따라 이어진 아름다운 강이 많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환경을 즐기러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도시이기도 하다. 울창한 정글숲과 천혜의 자연환경을 간직한 이 곳을 보고 누가 북적거리는 전형적인 인도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까? 땅덩어리가 어마어마하게 넓은 만큼 사람도 문화도 종교도 자연환경도 말도안되게 다양한 이 나라가 부러웠다. 인도 대사관에서 보았던 '어메이징 인디아'라는 홍보문구처럼 인도는 정말 어메이징한 나라였다.


정글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보트하우스


코치는 배를 타고 정글속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보트 하우스로 유명하다. 배 안에는 호텔 못지않은 객실과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고 한다. 정글속 보트하우스에서 보내는 하룻밤은 상상만으로도 낭만적인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이번 여행에서는 아쉬운 대로 혼자서 뱃사공 아저씨가 노를 저어주시는 작은 보트를 타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고, 언젠가 소중한 사람과 이곳을 다시 찾게되면 꼭 보트 하우스에 머물러 보기로 다짐했다.


강가와 해안선을 따라 늘어서 있는 특이한 모양을 하고있는 어망 Chinese Fishing Net은 독특한 광경을 연출한다. 도르레같이 생긴 어망에 어부들이 직접 올라가서 어망을 기울이고 고기를 잡는다. 나는 운좋게도 어부들이 직접 체중을 실어 낚시를 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코치의 명물 차이니즈 피슁 넷



캐스트 어웨이(Cast Away)


혼자 떠나는 여행의 묘미는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자유로움이다. 무엇을 먹든 어디에 가서 뭘 하든 아무도 신경쓰지 않으며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나 자신과의 대화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혼자하는 여행과 소중한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을 둘다 경험해 본 결과 의견이나 취향 차이로 싸우며 에너지 소모를 할 필요가 없는 혼자만의 여행의 장점은 명확하다. 그러나 혼자 여행하는 것의 치명적인 단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외로움이다.


코치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특이한 풍경을 만끽하고 호텔로 돌아왔을 때 아이폰 전원이 나갔다. 며칠전 부터 깨진 액정화면이 말썽을 부리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이폰이 완전히 사망한 것이다. 여행중 가끔 소식을 전하던 모든 지인과 가족들 그리고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와 연락을 취할 방법이 사라졌다. 요즘은 PC카톡과 라인 계정만 있으면 랩탑으로 쉽게 연락을 취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카톡은 스마트폰으로만 쓸 수 있었다. 페이스북 메세지도 허접하기 짝이없던 때였기 때문에 핸드폰이 고장나자 더이상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아이폰이 고장나니 사진도 찍을 수 없었다. 신기한 풍경들도 혼자서 보기만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게 느껴졌다. 아이폰을 고치려고 백방으로 수소문 해봤지만 인도의 촌동네에 애플 스토어같은 것이 있을리 만무했다. 그래도 인도가 IT강국이라던데 아무리 시골이라도 사설 수리센터 한두군데는 있을 거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황당하게도 코치에 애플 수리센터 같은것은 정말로 단 한군데도 없었다.


아이폰을 수리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도시는 열시간이나 떨어진 벵갈로어(Bangalore)에 있었다. 나는 넋이 빠져서 코치 시내를 터벅터벅 걸어 다녔다. 인도에는 영어를 정말 더럽게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어서 말도 통하지 않는다. 인도 사람들이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고정관념일 뿐이다. 배가 고파서 들어간 로컬식당에서는 주문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나는 모든것을 포기하고 호텔방으로 돌아왔다. 당시에는 넷플릭스도 없던 시절이라 다운로드 받아놓은 영화 플레이 리스트를 보며 볼만한 영화를 찾았다. 톰 행크스 주연의 캐스트 어웨이라는 영화를 틀었다.


캐스트 어웨이라는 영화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주인공 척 놀랜드는 비행기를 타고가다 난기류를 만나 무인도에 떨어지게 된다. 유일한 생존자였던 그는 무려 4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무인도에서 코코넛을 따먹고 낚시를 하며 고독한 삶을 이어간다. 그는 미국에 돌아가면 결혼하기로 약속한 약혼녀의 사진을 보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척 놀랜드가 타고있던 비행기는 택배회사 화물편 비행기 였다. 그는 비행기에 있던 배구공을 발견하게 되고 배구공 윌슨을 친구삼아 지낸다.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배구공은 그의 말상대이자 유일한 친구이다.


4년간의 무인도 생활이 주는 고독감과 약혼녀에대한 그리움을 참지 못한 주인공은 땟목을 만들어 바다로 나가기로 한다. 배구공 윌슨과 함께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인지도 모른다.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난 척의 땟목은 심하게 흔들리고 그 충격으로 윌슨이 떠내려가 버린다. 톰 행크스는 떠내려간 윌슨을 잡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역부족이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윌슨을 부르며 울음을 터뜨린다.


정말 심심하고 지루한 영화였지만 우울감을 떨쳐버리려면 어쩔 수 없었다. 멍하니 영화를 보고있는데 주인공이 배구공 윌슨을 놓치고, 윌슨이 떠내려가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렀다. 톰 행크스에 200% 감정이입을 해버린 것이다. 영화가 끝날 때 나는 쪽팔리게 눈물콧물 범벅이 되어있었다. 뜬금없이 배가 고파왔다. 진한 향신료 냄새가 진동하는 카레가 아니라 맥도날드나 피자헛 같은 패스트푸드가 먹고싶었다. 결국 나는 아이폰을 고친다는 핑계로 계획에도 없던 방갈로어에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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