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원의 도시 마두라이에서 야간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네시간을 달렸다. 어둠이 걷히고 해가 떠오를 무렵 드디어 인도의 땅끝에 도착했다. 한국에 해남 땅 끝 마을이 있다면 인도에는 칸야꾸마리(Kanya Kumari)가 있다. 인도는 넓은 땅떵어리 만큼 땅끝마을도 남다른 스케일을 자랑한다. 아라비아해, 벵골만, 인도양이 만나는 이 곳은 신비한 모험담과 수많은 비밀을 품고있는 신화속 마을이다. 세개의 거대한 바다가 만나는 이 작은 마을은 물살이 세고 신기한 자연현상이 많이 일어난다고 하니 신화가 탄생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칸야꾸마리에 도착하고 떠오르는 해가 나를 반겨주었다
칸야꾸마리라는 도시 이름은 이 곳을 수호하는 힌두교 여신 칸야꾸마리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고 한다. 전형적인 힌두교 마을인 이 곳에는 의외로 기독교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최초로 이 곳에 기독교를 들인 사람은 대항해 시대 선교사도 아닌 무려 예수의 제자중 한명인 성 토마스(St. Thomas)라고 한다. 도대체 그 먼 이스라엘 땅에서 이 곳까지 뭘 타고 어떻게 왔던 것일까? 까마득히 먼 옛날, 기원후 62년경 이 곳에 기독교를 전파하러 왔다고 하니 이 곳의 깊은 역사와 스토리는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마을 중심부에서 내려와 전통 시장을 끼고 바닷가 쪽으로 내려가면 바다 한가운데의 섬에 떠있는 40m 높이의 티루발루바(Thiruvalluva)의 동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것만이 유일한 선물이다."라는 말을 남긴 인도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시인인 티루발루바를 보티브로 만들어진 동상이다. 멀리서 보면 건물이 오래되고 낡은 것 처럼 보이지만 이래뵈도 2000년에 완공 된 동상이라고 한다.
칸야꾸마리 시장과 티루발루바 동상
인도의 국민적인 영웅 간디의 유골이 뿌려지기 전 유골함이 보관되었다는 간디 기념관은 파스텔톤 외관이 귀여운 건물이었다. 그의 명성과는 다르게 텅 비어있는 간디 박물관 내부를 둘러보며 깊은 쓸쓸함이 느껴졌다. 그가 한줌의 재가되어 자연으로 돌아가기 전 이 곳에 그의 유골함이 놓여있던 이 아담한 공간은 마치 고요한 절 혹은 힌두교 사원을 연상시켰다. 핍박받는 자들을 위해 헌신했던 그의 삶은 사후에도 소박해 보였다.
간디 만다팜
인도의 아이들...뭐가 그렇게 신기하니?
칸야꾸마리 사원의 힌두교 종교의식에 참가하다
마을에는 '순결한 십대 처녀'를 의미하기도 하는 칸야꾸마리 여신을 모셔둔 제법 큰 힌두교 사원이 하나 있었다. 이 지역 토속신앙에 등장하는 칸야꾸마리는 힌두교에 흡수되어 힌두교 신들중 하나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힌두교 신들의 대장격인 시바신에 대한 그녀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사원 곳곳에는 그녀의 영원한 사랑을 상징하는 다이아몬드 고리가 장식되어 있었다. 사원에서는 종교행사가 있는지 신기한 힌두교 전통 악기 소리가 흘러나왔고, 종교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기다리는 현지인의 행렬로 북적였다.
나는 수 많은 인파속에 합류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줄 서있는 사람들이 모두 남자였던 것이다. 그들의 와이프로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밖에서 그 남자들을 구경만 하고 있었다. 남자는 국적불문하고 사원에 들어가려면 상의를 벗어야 했다. 나는 이 곳의 룰을 따르기로 했다. 상의를 벗고 사원 입구에 기다리고 있으니 말로만 듣던 인도 카스트의 최상계급 브라만(Brahman)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에게 다가왔다.
“어디서 왔어?” 라는 질문에 나는 곧바로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내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없이 내 이마에 붉은 문양을 찍어주었다. 그렇게 그날 나는 얼떨결에 그들만의 종교의식에 초대받은 유일한 외국인이 되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보통 힌두교 사원에서 행사가 있을 때는 힌두교도만 입장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나는 또 한번의 특별한 추억을 선물해준 현지인들에게 감사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