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루치라팔리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나는 항로를 대폭 수정하여 인도 남쪽 땅끝마을을 향해 내려갔다. 갠지스강을 보며 멍을 때릴 수 있다는 바라나시나 타지마할의 아그라를 만나기까지는 아무래도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아무래도 좋다. 이 곳에서는 꼭 돌아가야할 곳도 꼭 만나야할 사람도 없으니 내 꼴리는대로 발길닿는대로 가면 된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이 곳에서 나는 의무감이나 책임감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나는 이왕 남인도에 온 김에 인도의 남쪽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인도의 땅끝마을 '까냐꾸마리'로 가는 여정의 도중에 마두라이라는 사원의 도시에 들려보기로 했다. 티루치라팔리에서 처음 본 섬뜩하면서도 기괴하고 멋있는 힌두교 사원에 꽂혀 버려서 또 다시 사원을 보러 타밀 나두(Tamil Nadu)주에서 가장 큰 힌두교 사원이 있다는 마두라이에 들르기로 한 것이다.
마두라이는 티루치라팔리에서 남쪽으로 약 2시간 떨어진 곳에 있는 도시다. 티루치라팔리에서 마두라이로 가는 야간버스 요금은 15루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내버스도 아니고 시외버스가 한국돈으로 300원도 하지 않는다. 6년전이라고 해도 정말 충격적으로 저렴한 물가다. 버스에는 창문이 없었다. 그 뿐 아니라 앞문과 뒷문도 달려있지 않았다.
버스는 비포장 도로를 매우 빠르게 달렸다. 버스 문앞 계단에 걸터앉은 사람들은 잘못하면 버스 밖으로 튕겨저 나갈 수 있어 위태로워 보였다. 며칠전에 달리는 버스에 충돌한 오토바이 운전자가 그자리에서 숨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날밤 달리는 야간버스밖의 밤공기는 매우 선선했다. 밤하늘의 별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고, 수풀로 우거진 창밖 풍경은 매우 아름다웠다. 허술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던 야간버스안에서 현지인들과 몸을 부대끼고 있었지만 나는 행복했다. 성취감과 해방감에 온몸에 전율이 돋았다.
미낙시 아만 사원
종교의식을 진행하고 있는 현지인들
마두라이는 티루치라팔리 보다는 잘 알려진 도시였다. 사원으로 유명한 이 도시에서는 드물게나마 관광지를 찾은 외국인들을 볼 수 있었다. 1600년대에 지어진 마두라이의 랜드마크 미낙시 아만 사원(Meenakshi Amman Temple)은 인도 타밀 나두주에서 가장 큰 사원이다. 사원 내부로 향하는 14개의 문으로도 유명하다. 50미터나 되는 14개의 문은 제각각 다른 모양의 으로 장식되어 있다. 나는 이 요상하고 신기하게 생긴 건축물과 장식들을 보며 또 다시 감탄하며 물끄러미 그 신기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낙시 아만 사원 내부의 시바신과 그의 마차
땅바닥에 앉아서 두시간동안 멍때리고 있었던 곳
미낙시 아만 사원의 점성술사
여기서 혼자 뭐해?
그 때였다. 내 나이또래로 보이는 어떤 현지인이 말을 걸어왔다. 관광 가이드 표시가 새겨진 마이크를 보고 그가 관광 가이드라는 것을 눈치챘다. 나는 혼자만의 여유를 방해받기 싫어서 조금은 경계하는 말투로 대답했다.
“그냥 사원이 멋있어서…”
그러자 그 젊은 가이드는 재밌다는 듯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결혼하여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몇년째 마두라이에 살고있고, 이 곳에서 몇년 째 가이드 일을 하고 있는데 오늘은 일이 일찍 끝나서 쉬고있던 참이라고 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금새 경계를 풀었다. 그리고 그 낯선 가이드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티루치라팔리에서 있었던 일 부터 인도에 와서 재밌었던 일과 놀랐던 일 까지… 그렇게 재미있게 썰을 풀다보니 어느덧 한 시간이 지났다.
그는 점성술을 공부했다고 하더니 갑자기 내 점을 봐주겠다고 했다. 나는 돈이라도 뜯길까봐 불안한 마음에 반신반의 하며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을 알려주었다. 그는 생년월일과 대략적인 태어난 시간을 가지고 신기하게도 내가 처한 상황을 알아맞췄다.얼마전에 원하던 것을 성취했다는 것도, 오랜시간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사실 나는 점괘나 타로카드같은 것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인간은 얼추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아간다. '원하는 것을 성취했다.' 라던지 '방황할 것이다' 같이 애매모호한 말은 사실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행지의 멋진 풍경과 진솔한 이야기가 곁들여지면 뻔한 이야기도 특별한 경험이 된다.
그는 내 미래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나는 앞으로 몇년간은 매우 방황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방황 끝에 행복이 찾아 온다고 했다. 좋아하는 일과 잘 맞는 배우자를 만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무러면 어떤가. 그렇게 우리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이 깊어갔다. 나는 젊은 가이드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인도의 땅끝마을로 떠날 준비를 하기위해 호텔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