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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전 두바이의 새해 첫 날

2020년과 코로나 팬더믹의 시작

by 알바트로스


알파변이와 델타변이를 넘어 이제는 람다변이까지...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올해 이맘때쯤이면 또다시 하늘길이 열리고 어디든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 나 큰 착각에 불과했다. 여행 중독자들에게 세상은 마치 기원전(BC)과 기원후(AC)처럼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인생 자체가 기나긴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에게는 참 가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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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세상이 멈춰 서기 직전의 2019년의 마지막 날, 나는 두바이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가 뜨고 한두 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2020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그 어떠한 카운트다운도 없이 나는 난생처음 하늘 위에서 고요한 새해 첫날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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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흰색 터번을 두른 두바이 공항 직원들의 무심한 안내를 받으며 두바이 공항을 나섰다. 아라비안나이트가 생각나는 두바이의 깔끔한 공항에서는 미국식 억양의 영어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두바이 공항은 여느 코즈모폴리턴 도시처럼 흑인과 백인 그리고 동양인이 섞여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으며 활기가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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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한파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두바이는 역시 후덥지근했다. 공항을 나서서 나의 첫 행선지이자 2020년 기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 '부르즈 할리파(Burj Khalifa)'로 향했다. 중심가로 향하는 길에 본 두바이는 마치 그 자체로 거대한 쇼핑몰 같았다. 여러 다국적 기업들의 브랜치가 빽빽하게 늘어선 이곳은 그 자체로 자본주의의 본고장 미국보다도 더 미국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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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20분 정도 달려 드디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 부르즈 할리파에 도착했다. 부르즈 할리파는 인간이 건축으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만큼 그 위용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한국의 삼성물산이 부르즈 할리파를 단독으로 지었다는 루머가 한국인들 사이에 퍼져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삼성물산이 건설에 참여한 것은 맞지만 건설을 주도한 것은 스키드 앤 모어(Skidmore & Owings)사라고 한다. 어쨌든 130층 이후로는 삼성물산이 단독으로 지었다고 하니 대단하긴 하다.


세계 최고의 마천루를 눈앞에 두고 있으니 인류와 부의 역사가 머릿속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새해 첫날부터 부의 기운이 뿜 뿜 솟아나는 이곳에 서있으니 마음만은 이미 부자였다. 피라미드 밑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 떠난 연금술사의 산티아고가 생각났다. 나만의 보물을 찾을 것을 다짐하며 부르즈 할리파 앞에 한참을 서서 새해 소원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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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이라도 알라딘의 아라비안나이트가 흘러나올 것 같던 두바이는 모든 것이 새롭고 반짝반짝하게 빛나고 있어 그 자체로 거대한 테마파크 같기도 했다. 모든 것이 계획되고 반듯하게 정리된 두바이에는 정말로 부자들만 살 것 같은 기운이 감돌았다. 새해 첫날이라 그런지 거리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나는 마음껏 두바이 시내를 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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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스러워 보이는 호텔의 어느 가게에서 기념품 삼아 작은 주전자와 금빛 낙타를 하나씩 샀다. 알라딘이 살고 있는 요술램프처럼 생긴 그 주전자가 나는 제법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나는 두바이에서 맞이한 마지막 새해 첫날을 마무리하고 다음 행선지를 향해 또다시 공항으로 향했다. 팬더믹의 시작이 우울함과 슬픔이 아닌 새로운 변화와 희망의 불씨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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