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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바트로스 Aug 25. 2021

자유로운 영혼의 변명

더욱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을 때

‘자유로운 영혼.’ 가끔 욕인지 칭찬인지 가늠하기 힘든 이 아리송한 말은 열에 아홉은 칭찬보다는 욕에 가깝다. 일견 멋져 보이는 이 단어를 순수한 칭찬의 뜻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요즘 세상에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영혼’은 그 자체로 부정적인 인상을 준다. 한 직장을 진득하게 오래 다니지 못하거나 여러 가지 일들을 벌여놓고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하며, 사는 곳마저 일정하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들은 겉보기에 무책임하거나 현실성이 결여된 사람인 것 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로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말은 사회의 통념상 그 자체로 ‘사회적 관습과 규범을 무시하는 사람’ 혹은 ‘이룰 수 없는 비현실적인 꿈을 좇는 피터팬 증후군에 걸린 사람’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무엇이 이토록 우리가 자유를 갈망하는 것을 주저하고 자유로운 삶을 삐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누가 정해준 지도 모르는 의무로 가득한 팍팍한 현실일 것이다. 모두가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이 세상에서 ‘자유로운 영혼’은 분명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다.


그러나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해서 어찌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없을까? 직장을 그만두고 세계 여행을 다닌다고 해서 현실적인 고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들도 항상 먹고살 궁리를 하며 나름의 중장기적 목표를 가지고 살아간다.


오히려 자유로운 영혼들은 그 누구보다 자아실현 욕구가 강한 사람들이다.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인생의 레이스에서 목표지점을 향해 정신없이 달려가던 그들은 어느 순간 깨달았을 것이다. 함께 뛰고 있는 이들 중 우리가 왜 뛰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애초에 이 레이스는 나 자신의 자아실현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별개의 것이라는 사실을. 늦기전에 레일에서 뛰쳐나와 지금이라도 자아실현을 위한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왜 살아야 하는지 의미를 찾아 헤매면서 삐딱선을 타다가 ‘명문대 출신 엘리트 직장인’이라는 페르소나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벗어던지고 나서야 보이기 시작한 것들이 있다. 살아가는 것에 딱히 거창한 이유는 필요하지 않으며, 지금 현재보다 중요한 과거나 미래는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는 이유로 한시도 느긋하게 쉬지 못하는 워커홀릭들로 넘쳐나는 세상을 살고 있다. 그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필로폰 주사를 맞고 밤잠을 잊고 일하던 공장 노동자들과 적진으로 돌진하던 카미카제 병사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열정이라는 뽕을 치사량만큼 맞은 마약 중독자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열심히 일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면 그냥 안 하면 된다. 쉬고 싶다면 그냥 마음껏 쉬면 된다. 역설적으로 더욱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가장 충만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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