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플랫폼 노동자로 살면서 느낀것들
필자가 일하고 있는 공유 오피스가 위치하고 있는 삼성역 주변은 점심시간만 되면 쏟아져 나오는 직장인들로 북적인다. 개미떼 같은 사람들의 행렬을 보고 있자니 2년 전까지 직장생활을 했던 도쿄 롯폰기의 어느 거리가 오버랩된다. 생김새도 옷차림도 비슷한 사람들이 특별할 것 없는 직장인 토크를 하고 있는 풍경. 들려오는 언어만 다를 뿐 정말 신기할 정도로 똑같은 풍경이다.
한국과 일본은 이처럼 아직까지 ‘샐러리맨’이 노동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양국 사람들의 인식도 2~30년 전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안정적이고 복지혜택이 좋은 정규직을 선호하며 프리랜서나 사업과 같은 불규칙적인 일을 회피하려는 매우 보수적인 성향을 보인다.
그런데 미국의 상황은 조금 다른 것 같다. 미국의 커리어 전문가 Maciej Duszynsk에 따르면 2021년 상반기 기준 미국인 전체 노동인구의 36%가 주업 혹은 부업의 형태로 플랫폼 노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무려 한국의 전체 인구수보다 많은 5천7백만 명이다. 반면 2020년 기준 한국은 전체 노동자의 7.6%인 179만명만이 플랫폼을 통해 일자리를 찾았다고 한다.(출처 : 시사 IN 급증한 '플랫폼 노동자'들, 사각지대도 커졌다)
하지만 코로나 팬더믹으로 정규직이 감소하고 고용이 축소되면서 플랫폼 노동자가 늘어나는 경향은 한국에서도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서울은 이미 전체 구직인구의 10명 중 1명인 46만 명이 플랫폼 노동자라고 한다. 시간의 문제일 뿐 일자리의 ‘플랫폼화’는 분명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긱 이코노미의 긱(gig)은 영단어 engamenet의 줄임말로, 1920년대 미국에서 재즈 공연에 필요할 때마다 임시적으로 연주자들이 참여하던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요즘은 주로 구 인자와 구직자 간에 고용계약 없이 그때그때 일에 참여하는 형태의 노동 형태를 말하며, 주로 각종 플랫폼을 통해 일거리를 구하는 프리랜서를 가리킨다.
플랫폼 기업의 입장에서 긱 워커(gig worker)를 고용하는 것의 장점은 명확하다. 정규직 고용에 필요한 4대 보험과 직원 복지 비등 불필요한 고정비가 줄어든다. 또한 기업들은 긱 워커들과 사업 파트너로서 동등한 입장에서 계약을 맺기 때문에 혹시 모를 사고나 서비스 품질 저하 등이 발생했을 경우 법적인 책임에서도 자유롭다.
그렇다면 각종 플랫폼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도 긱 이코노미는 축복일까? 아니면 일자리의 합리화를 가장한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일까? 지난 1년간 다양한 플랫폼에서 외국어 통번역 프리랜서와 배달 라이더로 활동하면서 느꼈던 점들을 통해서 ‘일자리의 플랫폼화’의 빛과 그림자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웹디자이너, 개발자, 외국어 통번역가, 배달 라이더 등 어느 분야에서 일하든 높은 자율성과 독립성이 보장된다는 것은 플랫폼을 통한 긱 워커로 일하는 것의 가장 큰 메리트라고 생각한다. 긱 워커들은 회사와 파트너로서 계약관계로 일하기 때문에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싶은 만큼만 일할 수 있으며, 업무범위도 역량 안에서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회사에 소속되어 있다면 상상하기 힘든 자율성이다.
또한 무엇보다 큰 장점은 애사심과 책임의식 그리고 불필요한 감정노동을 강요받을 일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재능기부 플랫폼을 활용해 외국어 통번역 일을 하면서 업무외적으로 받았던 스트레스는 거의 없었다. 사전에 합의된 만큼의 서비스를 약속된 데드라인까지 제공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배달 라이더로 일할 때에도 고객이나 플랫폼 담당자에게는 그 어떤 형태의 갑질이나 감정노동의 강요도 허용되지 않았다. 긱 이코노미에서는 플랫폼 사용자가 부당한 요구를 하기가 쉽지도 않을뿐더러 만에 하나 부당한 요구를 한다고 하면 플랫폼 노동자는 계약을 파기하면 그만이다.
형식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회사와 노동자 그리고 고객 간에 갑을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긱 워커는 맡은 일을 잘하면 되고, 고객은 서비스에 대해 돈을 정당하게 지불하기만 하면 되며 플랫폼 기업은 중개만 잘해주면 된다. 후진적인 감정노동과 갑질 문화는 플랫폼 경제가 고착화되면 자연스럽게 원천 차단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긱 이코노미는 기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에 의한 무한경쟁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소득의 양극화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또한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돈이 되는' 카테코리와 그렇지 않은 카테고리가 나뉘기 때문에 평균 수준의 임금과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환경에서 긱 워커들의 삶의 질이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필자의 경험상 재능기부 플랫폼은 철저히 수요와 공급의 원칙을 따른다. 외국어 전문가 카테고리에서 영어와 일본어 등 비교적 수요가 많지만 공급도 많은 언어 쌍에 대해서는 시간당 단가도 낮게 책정된다. 반면에 아랍어나 스페인어등 희귀한 언어 쌍에 대해서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시간당 단가가 훨씬 높게 책정된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아랍어나 스페인어를 배울 수도 없는 것이다.
전자책이나 노하우 분야도 마찬가지다. 흔히 전자책은 분야 선정이 90%라고 한다. ‘돈 버는 법’과 같은 특정 주제에만 잘 팔리는 전자책이 몰려있기 때문에 그 외의 분야에서 긱 워커가 아무리 좋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더라도 전자책으로 그 노하우를 써내어 유의미한 수익을 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이처럼 플랫폼은 특정 분야에서 극단적으로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과 평균 이하의 소득을 버는 대다수의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배달 라이더가 대기업 과장보다 많이 번다.”라는 괴소문은 양극화와 평균의 함정을 내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노동자들의 인권문제가 대두되기도 한다. 올해 8월 선릉역에서 배달 기사가 화물 트럭에 끼어 숨진 사건을 놓고 사고의 책임 소재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그러나 책임여부를 떠나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점은 배달 기사의 죽음에 대해 플랫폼은 아무런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최소한의 세이프넷이 정비되지 않는다면 유사한 문제는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