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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바트로스 Nov 08. 2021

당신의 '부캐'는 무엇입니까?

부캐가 본캐가 될 때 까지

대리운전, 이삿짐센터, 편의점 알바, 녹즙 판매원... 지금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유명 영화배우들이 기나긴 무명 시절을 버티며 가졌던 직업들이라고 한다. 이처럼 수입이 적고 불규칙한 무명 배우들에게 흔히 말하는 ‘부캐’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유명 배우들은 무명시절 쌓은 다방면의 ‘부캐’ 경험이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깊이를 더해줬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각종 플랫폼의 등장으로 노동 참여자들의 심리적 장벽이 낮아진 요즘, '부캐' 하나쯤 가지는 것은 더 이상 영화배우나 뮤지션 같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아티스트, 전업작가, 초기 스타트업 대표, 취업 준비생, 회사원....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든 이제 '부캐'를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으며 당사자들도 더 이상 자신의 ‘부캐’를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자료출처 : 잡코리아, 알바몬)


올해 4월 모 구직 플랫폼에서 실시한 설문조사는 이를 뒷받침해준다. 국내 성인남녀 21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조사에 의하면, 응답자 중 직장인의 55.7%가 이미 부업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직장인 2명 중 1명은 이미 부업을 하고 있으며 흔히 말하는 ‘부캐’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필자 역시 외국계 컨설팅펌의 경영 컨설턴트와 스타트업의 프로덕트 메니져를 거쳐 작가 겸 프리랜서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음식 배달 라이더'라는 부캐를 선택했다. 좁디좁은 오피스에 갇혀 파워포인트와 엑셀을 상대로 씨름하는 삶을 벗어던지고 낮에는 자유롭게 글을 쓰고 밤에는 서울 강남의 밤거리를 누비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부캐가 본캐가 된 사람들


(슈카월드 채널 타이틀 그림 / 출처 = 유튜브 슈카월드채널)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증권사 프랍 트레이더로 일하던 이 사람은 ‘부캐’로 ‘식빵 월드’라는 유튜브 채널을 시작한다. 방송에 세명의 아저씨가 나와서 ‘경제 썰’을 푸는 다소 지루하고 구독자 수도 얼마 되지 않던 이 채널은 훗날 ‘슈카 월드’라는 구독자 186만 명의 인기 유튜브 채널의 전신이 된다.


(슈카월드 유튜브 방송 화면 / 출처 = 유튜브 슈카월드채널)



흥미로운 점은 부캐였던 ‘유튜버’가 점차 본캐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슈카 월드의 콘텐츠에서 정작 자신의 전문분야였던 주식이나 경제에 관한 썰은 비교적 주목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칭기즈칸과 지옥에서 온 군대’ 같은 세계사나 잡학상식에 대한 콘텐츠가 주목을 받으며 채널 구독자가 떡 상하는 계기가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개업한 재즈카페 '피터캣' / 출처 = 나무위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신주쿠의 레코드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재즈 카페에 드나들기를 좋아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와세다 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재즈 카페를 개업해 운영했었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역시 본캐는 카페 사장이었고 부캐로 작가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그가 본격적으로 소설을 써보기로 마음먹은 것은 서른 살 즈음. 메이지 진구에서 프로야구 개막전을 보고 있던 도중 우연히 떠오른 생각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일단 해봐야 안다


부캐의 사전적 의미는 게임에서 '본래의 캐릭터가 아닌 추가적으로 만든 캐릭터'이다. 게임을 할 때에도 정성 들여 키워놓은 '본캐' 보다는 '부캐'를 통해 게임의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잘하려는 생각과 강박관념을 내려놓은 만큼 '부캐'를 통해 평소에 익히지 않았던 다양한 스킬을 익히고 도전적인 실험을 감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과연 우리의 ‘본캐’이고 ‘부캐’인 것일까?  우리는 아직 모른다. ‘부캐가 본캐가 된 사람들’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의 진짜 ‘본캐’는 평소에 하지 않던 생각과 시도를 반복하는 과정 속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그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필자는 불과 1년 전만 해도 글쓰기 울렁증을 가지고 있었다. 30년 인생을 살면서 글쓰기라고는 일기 쓰기와 회의록 작성밖에 해본 적이 없었다. 특히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내는 것은 발가벗겨지는 느낌이 들어서 정말로 싫었다. 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글쓰기에 흥미를 가지면서 글쓰기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지금 필자의 ‘본캐’는 작가다. 글을 써보지 않았다면 절대 발견할 수 없었을 ‘부캐’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제 ‘본캐’만을 고집하려는 태도는 버려도 좋지 않을까? ‘부캐’로 시작한 일이 당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우리가 앞으로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부캐’를 가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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