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매일같이 달리는 이유
잡생각이 많고 집중하기 힘든 날이 있다. 그런 날은 과감히 모든 스케줄을 제치고 운동복을 챙겨 한강으로 향한다. 운동화 끈을 고쳐 메고 그날의 기분에 따라 듣고 싶은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한다.
내가 좋아하는 러닝 코스는 잠수교 남단에서부터 한남대교를 지나 동호대교까지 이르는 왕복 약 7km 정도 되는 짧은 길이다. 갈대숲과 반 고흐의 유화에서 본 듯 한 목가적인 나무들이 늘어서 있는 평화로운 길을 천천히 달리고 있으면 온갖 잡념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인간관계, 어제 읽은 책 생각, 먹고살 걱정, 옛날 생각... 아무런 규칙성 없이 마구잡이로 떠오르는 생각들에 당황스러워할 겨를도 없이 서서히 숨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페이스를 조금 더 올린다. 이제 땀이 쏟아지기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숨이 차오르면서 잡념들이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한다. 힘든 와중에도 불쑥불쑥 생각들이 떠오르지만 이제 잡념은 잡생각일 뿐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한 발치 떨어져서 생각들을 관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동호대교를 찍고 다시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풍경들이 아까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아까의 잡념들이 사라지니 평소에 보이지 않던 까치의 움직임과 갈대의 떨림이 눈에 들어온다. 머리가 텅 비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좋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가 겸 마라토너다. 그는 작품 활동으로 바쁜 와중에도 매일 하루 1시간씩 시간을 내어 러닝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년에 한 번씩은 꼭 마라톤을 완주한다는 그는 저서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없이 항상 내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하루에 1시간쯤 달리며 나 자신만의 침묵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나의 정신 위생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이었다. 적어도 달리고 있는 동안은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아도 괜찮고, 누구의 애기도 듣지 않아도 된다. 그저 주위의 풍경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을 응시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선천적으로 혼자서 멍 때리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도시의 소음과 스트레스에서 멀어져 자신과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확실히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 달리기는 의식적으로 명상이라는 행위를 해본 적이 없는 필자 같은 사람들이 정신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좋은 습관이다.
‘사피엔스’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유발 하라리는 매일 두 시간씩 명상을 하며 일 년에 두세 달은 조용한 곳으로 명상 휴가를 다녀온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스티브 잡스도 명상 신봉자였다고 한다. 그들의 남다른 통찰력은 내면으로 깊이 침잠하여 자신과의 대화를 나누는 시간 속에서 길러진 것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바쁘기 때문에 우리는 의식적으로 자신과의 대화를 나눠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