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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바트로스 Dec 02. 2021

내가 메타버스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

메타버스와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페이스북은 얼마 전 사명을 ‘메타’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페이스북의 사명 변경으로 주식과 코인 시장은 출렁였다.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메타버스에 대한 비전과 확신을 담은 행보에 메타버스 관련 주식과 코인은 단기간에 3~4배의 급등 랠리를 이어갔다.


메타버스에 관해서 아는 것은 남들이 다 알만한 것들 뿐이었지만, 조금 일찍 산업에 관심을 가지고 시드의 일부를 투자를 해 놓은 덕에 원금이 두배 이상 불어나는 짜릿한 경험을 했다. 비록 소액이었지만 이번 투자를 계기로 메타버스와 그 시장에 대한 관심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행과 야회활동을 즐기는 사람의 입장에서 메타버스가 주류가 되는 세상은 어딘가 꺼림칙하다. 메타버스를 생각하면 영화 메트릭스에서 좁디좁은 인큐베이터에 갇힌 채 컴퓨터의 건전지로 전락해버린 인간의 모습이 떠오른다. 비즈니스와 기업의 입장에서는 메타버스가 무궁무진한 수익창출의 장이 될 수 있겠지만, 개개인의 입장에서 메타버스는 유토피아보다는 디스토피아와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1. 호모 비아토르와 메타버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간을 ‘호모 비아토르’ 즉, ‘여행하는 인간’으로 규정했다.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하기 시작한 40만 년 역사의 99%의 기간 동안 인류는 수렵과 채집을 중심으로 살아온 유목민이었다. 즉 끊임없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 것이다. 그런데 메타버스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떠나고자 하는 이동 본능을 억누를 수밖에 없다.


지금은 게임에 국한된 면이 있지만, 웹 3.0과 NFT 등 메타버스 관련 산업이 발전하면서 지배적인 메타버스 플랫폼이 등장하고 그곳에서 현실세계와 같이 고유한 가치를 창출하고 교환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사람들은 가상세계에서 상업활동을 하고 부동산을 거래하면서 무궁무진한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게 된다. 이제는 온라인 쇼핑몰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된 것처럼.


그러나 인간이 메타버스에서 야외활동과 여행을 하는 장면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가상의 비행기를 타고 이탈리아 로마에 가서 화려한 그래픽으로 구현된 콜로세움을 보고 돌아오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애들 소꿉장난이나 게임과 무엇이 다른가? 



2. 그날의 공기와 거리의 냄새그리고 사람 사이의 느낌



영화 김종욱 찾기에서 주인공 임수정은 인도 여행을 회상하며 말한다. 그날의 공기와 거리의 냄새. 그리고 사람 사이의 느낌. 이 모든 것이 10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고. 이것이 우리가 온갖 고생을 감수하면서도 여행을 떠나는 본질적인 이유가 아닐까?


우리는 여행에서 희열을 느끼고 나아가 거기에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 이 순간 그곳에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니체가 이야기한 ‘영원회귀’가 실재한다고 가정해 본다면, 우리는 다시 태어나도 여행을 떠나 ‘그곳’에 존재하며 1분 1초를 느끼는 것이다.


여자 친구와 발리를 여행하면서 킨타마니 산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웅장한 산보다 더욱 기억에 남는 것들은 그곳의 쓰레기 태우는 매캐한 냄새와 차가운 공기 그리고 사람들이 건내던 말과 표정들이다. 나아가 그때 생겼던 버릇과 그곳에서 했던 생각들은 우리가 그때 그곳에 존재했기 때문에 받을 수 있었던 선물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여행은 단순히 먹고 보고 즐기는 것을 넘어서는 어떤 철학적인 행위일지도 모른다. 메타버스 위에 완벽하게 구현된 멋진 건물을 보고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돌아온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3. 메타버스 여행에는 기승전결이 없다


수메르의 길가메시와 그리스의 오디세우스를 비롯한 인간의 모든 여행기는 서사시의 형태를 띠고 있다. 여행과 관련된 거의 모든 서사에서 주인공은 어떠한 특별한 계기로 여행을 시작하고, 여행을 하면서 고난과 위기를 겪게 되며, 그것을 극복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즉 기승전결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여행이라고 할 수 없다. 그곳에는 그 어떠한 재미와 감동 그리고 스릴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메타버스로 여행을 떠나는 것을 생각하면 아무런 설렘이나 희열감도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대학교 4학년 시절, 비행기표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나 홀로 무턱대고 인도의 깡시골로 향하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도착하자마자 스마트폰이 고장 났지만 수리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영어 한마디 할 줄 모르는 인도 깡시골 사람들 사이에서 외부세계와 연락을 취할 수단이 사라지자 나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스마트폰을 수리하려면 대도시로 가야 했다. 인도의 열악한 2등 칸 기차에서 현지인들과 몸을 부대끼며 14시간을 넘게 이동해서 뭄바이에 도착했다. 아이폰 수리점을 찾아 맡겨놓고 가슴을 졸인 끝에 결국 스마트폰 전원이 다시 들어왔다. 나는 살았다는 생각에 환호성을 지르며 춤을 추었다.


온갖 우여곡절 끝에 한 달간의 인도 종단 여행을 마치고 도쿄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나는 어떤 안도감과 삶의 의미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여행은 직접 겪고 부딪히며 삶을 배우는 것이다. 메타버스에 관광지의 멋진 건물들이 아무리 화려하게 구현되어도 우리가 여행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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