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지난 1년간의 꾸준한 삽질에 대한 작은 선물로 브런치에서 결산 리포트를 보내주셨다. 주로 유럽여행에 대해 기록한 나의 글들은 18.7만명의 독자분들에게 읽혔고, 100명이 넘는 독자분들이 계정을 구독해 주셨으며, 생각보다 많은 라이킷을 받았다고 한다.
브런치 결산 리포트를 받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애초에 왜 금전적인 대가 없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일까? 왜 vlog와 유튜브가 아닌 글쓰기와 브런치였을까? 자기표현이나 기록에 대한 욕구 같은 것들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글을 쓰고싶은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읽기의 희열
돌이켜보면 살면서 희열을 느꼈던 농도 짙은 순간들에는 항상 위대한 작가들과 책들이 있었던 것 같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대책 없이 회사를 그만두던 그날도 나는 책을 읽고 있었다. ‘팩트에 기반한 인류의 대하소설’이라고 평하고 싶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를 하룻밤 사이에 완독 하면서 느꼈던 그날의 희열과 쾌감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군 시절 병영에서 심란함을 달래기 위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읽었을 때에도, 유럽여행 중 틈틈이 읽던 채사장 작가님의 ‘지대넓얕’ 시리즈를 완독 했을 때에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곳곳에서 뜻하지 않게 오랜 시간 고민했던 문제들에 대한 간단하고 명쾌한 해답들을 발견했을 때에도... 책과 위대한 작가들은 항상 그곳에 있었다. 책에 몰입해있던 날들만큼은 직장 내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도, 먹고사니즘이나 미래에 대한 고민도 모두 그저 하찮은 모레 조각처럼 느껴졌다. 책에는 그런 위대한 힘이 있다.
계속 읽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나는 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읽고 경험한 것들을 통해 발견한 '나만의 진실'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읽는 행위의 희열과 기쁨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저 읽는 것이 좋아서 시작했던 글쓰기로 누군가에게 감동과 희열을 주기까지 아직 갈 길이 멀어도 너무 멀어 보인다. 다시 읽어본 나의 글들은 너무 투박하고 두서가 없으며 메시지도 중구난방이다. 하지만 나는 빗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지혜의 말을 진심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