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듯한 일정으로 갑작스런 부탁이었지만 기술 요건정의부터 자료준비까지 스스로 해냈고 고객사 앞에서 나름 성공적으로 발표를 마친 뒤라 홀가분하고 뿌듯한 기분으로 술자리로 향했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무렵 최근 회사에 합류하여 함께 일하게 된 상사분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보기에 OO씨는 영업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엔지니어 스타일이야.'
테크 영업 쪽으로 20년 이상 일하신 잔뼈가 굵으신 분의 말이기에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나 집에 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묘한 반발심과 함께 풀리지 않는 의문이 생겨났다.
'영업 스타일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 걸까? 반대로 엔지니어스타일이라는 건 또 뭐지? 너무 모호하잖아?'
그때 내가 경영컨설팅 업계에서 IT 업계로 커리어 전환을 했을 때 테크 영업으로 10년 이상 커리어를 쌓아온 학교 선배가 처음 해준 말이 문득 떠올랐다.
'요즘 이쪽 업계에서는 영업만 하던 사람들은 골치 아파하고 오히려 별로 안 좋아해. 반대로 실무 지식이랑 경험 많고 매니지먼트 능력까지 있으면 베스 트지. 경력 좀 쌓이면 영업 쪽으로 이직도 긍정적으로 고려해 보렴'
매사에 논리적이고 명확한 것을 좋아하며 이과적인 성향이 강한 편인 나는 마음 한편에서 상사의 말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러나 문과출신에 기본적으로 사람 상대하는 것을 좋아하고 사교적인 성격인 나는 사람에 대한 흥미 역시 많다. 이런 나에게 엔지니어인지 세일즈맨인지 양자택일 하라는 것은 멀쩡한 나의 자아를 분열시키라는 말과 같이 느껴졌다.
2. 폴리매스는 타고나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해부학자이자 의사였고 과학자이자 건축가였으며 우리가 알다시피 천재적인 예술가이기도 했다. 우리가 작가로 알고 있는 독일의 괴테는 철학자이자 시인이었으며 작센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이기도 했다.
작년 말 감명 깊게 읽은 '폴리매스는 타고나는가?'라는 책에서는 이들과 같이 다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을 '폴리매스'라고 표현한다. 책에서 저자 피터 홀린스는 그들이 단순히 천재이기 때문에 뭐든지 잘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그들이 한 가지 분야에 얽매이지 않고 다방면에 호기심을 가지고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노력을 게흘리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방면에서 독보적인 천재가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1%의 전문가보다 세 가지 이상의 분야에서 상위 25%의 능력을 가진 폴리매스가 될 것을 권한다. 자신의 능력을 한 가지 분야로 제한하지 않고 끊임없이 배우려는 태도를 가지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융합형 인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융합형 인재'가 된 사람들에게 세상은 배울 것들로 넘쳐나는 재미있는 놀이터가 된다.
3. 애초에 질문이 틀린 것 아닐까?
세상이 복잡하고 다양해질수록 우리는 더욱더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폴리매스가 되어야 한다. 엔지니어는 화면만 들여보며 주어진 일만 하는 수동적인 코더(coder)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하고 사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반대로 세일즈맨은 얕은 지식으로 엔지니어들이 알려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촉새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하고 기술적 마인드를 장착해야 한다.
결국 '당신은 엔지니어입니까? 세일즈맨입니까?'라는 질문은 틀렸다. 우리는 엔지니어이자 세일즈맨이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탁월해질 수 없고, 탁월해질 수 없다면 그 둘 중 어떤 것도 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