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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바트로스 Nov 26. 2020

서울에서 세 달 살기 하며 깨달은 것

디지털노마드의 삶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의 주인공 산티아고는 피라미드 아래 보물이 숨겨져 있음을 암시하는 꿈을 꾼다. 그는 그 꿈을 믿고 양을 팔아서 아버지가 주신 돈을 가지고 정말 무모하게 피라미드를 찾아서 스페인 어느 시골마을에서 이집트까지 보물을 찾으러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여행을 시작하자마자 사기를 당하고 도둑을 만나 빈털터리가 된다. 죽을뻔한 고비도 몇 번 넘긴다. 그래서 산티아고는 피라미드 밑에서 그토록 찾아 해 매던 보물을 찾았을까?


수년 전부터 디지털노마드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 시간과 장소 그리고 돈에 구애받지 않고 전 세계를 무대로 살아간다는 것. 나는 디지털노마드라는 단어를 알기 전부터 그런 삶을 갈망하며 실천해왔다. 나는 한국사회에 만족하지 못했고 더 크고 넓은 무언가를 찾아 나섰다. 철저히 계획을 세우고 한국을 벗어났다. 본격적으로 역마살이 낀 삶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나는 산티아고처럼 이집트 피라미드 밑에 숨겨진 보물을 찾으러 떠났다.


일본 유학길에 오른 이후 한국은 나에게 항상 가깝지만 먼 나라였다. 한국은 분명 고향이자 가장 익숙한 나라였지만 내 집은 아니었다. 가족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지 오래였고 나는 삶의 기반을 일본에 두고 있었으니 당연히 그럴 만도 하다. 외국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고 나서 새로운 관점을 장착하고 12년 만에 '서울 세 달 살기'를 하면서 경험해본 한국은 너무나도 신기한 나라였다.


달리는 자동차부터 배달까지 모든 것이 lte처럼 빠르고 편리하지만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더 편하고 빠른 것을 원한다. 한국인들은 입버릇처럼 일본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장점은 잘 모른다. 코로나에 그 어느 나라보다 철저하게 잘 대응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토요일 밤 강남 논현 압구정은 화려하게 차려입은 2~30대로 불야성을 이룬다.


사람들은 익숙함에 속아 당연한 것들을 소흘이 하는 실수를 곧잘 저지르곤 한다. 늘 보는 도시 풍경, 삼시 끼 챙겨 먹는 음식들 그리고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이 모든 것들이 그저 평범하고 벗어나고 싶은 일상이 되는 순간 사람들은 권태감에 빠지고 나태해지며 새로운 것들을 갈망하기 시작한다. 정작 외국인들 눈에 그들의 모습과 일상이 얼마나 신기하게 보일지 그들은 절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헬조선 탈출을 꿈꾸며 해외를 마치 꿈에 그리던 이상향인 듯이 그려내곤 한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헬조선과 비슷한 말로 일본 유학생들 사이에는 일본을 탈출한다라는 의미인 탈 본이라는 단어가 있다. 일본인들은 겉으로는 안 그런 척 해도 기본적으로 외국인과 잘 어울릴 수 없는 폐쇄적인 마인드가 매우 두드러지는 사람들이다. 특히나 한국인이나 한국계 일본인에게 뿌리 깊은 콤플렉스와 우월감을 동시에 가지고 매우 복잡 미묘한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그들 사이에서 살아간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미국에서의 삶도 불편한 것 투성이인 것은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는 차가 없으면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 버스를 타고 밤늦게 LA 시내를 빙빙 돌며 마주쳤던 노숙자들은 대마에 취해 대부분 눈깔이 풀려있었다. 밤 10시가 넘어서 다운타운을 걸어 다닐 때는 항상 총을 맞을까 봐 신경을 곤두 세운다. 백인들 사이에서 가끔 어딘지 모르게 주늑드는 기분이 들 때면 복잡 미묘한 감정이 나를 괴롭힌다. 나는 확실히 안다. 장담하건대 북유럽을 가든 호주를 가든 어느 나라를 가든 각국 버전의 헬조선이 존재할 것이다.


산티아고가 찾던 보물이 숨겨져 있던 곳은 피라미드 아래가 아니고 다름 아닌 그의 고향 스페인의 어느 시골마을이었음을 암시하면서 소설은 끝난다. 산티아고는 가까이 있는 일상과 보물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게 된 벌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는지 모른다. 산티아고처럼 십수 년간 떠돌이 생활을 하며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보물이 그렇게 멀리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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