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바트로스 Jun 14. 2021

한번쯤은 백수여도 괜찮아

지난 1년간의 백수생활을 돌아보며

몇 번의 이직과 방황 끝에 퇴사를 한지 벌써 1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나는 분명 회사생활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되었다. 더 이상 매일 아침 지옥철에 몸을 구겨 넣지 않아도 되고, 회사에서 별 의미도 없는 지겨운 일들을 열심히 하는 척하지 않아도 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은 상사와 부하직원 눈치를 전혀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백수가 되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자유를 갈망하고 있다. 눈을 뜨면 문득 나를 엄습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과 공허함으로부터의 자유,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의 걱정 어린 시선과 비웃음 그리고 멸시로부터의 자유, 돈 걱정으로부터의 자유, 소외감으로부터의 자유... 


퇴사만 하면 자유로울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자유는 애초에 그렇게 쉽고 간단하게 얻어지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회사생활이 만인의 만인을 향한 투쟁이었다면 백수생활은 오롯이 나 자신과 벌이는 외로운 사투이다.


그래서 백수생활을 하려면 배워야 한다. 잊힐만하면 하루에도 수백 번씩 고개를 들이미는 근거 없는 불안과 걱정들을 다스리는 법, 남들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법, 쓸데없는 자존심을 버리는 법, 주인이 던져주는 사료를 걷어차고 스스로 사냥하는 법, 무엇보다 목표했던 바를 이룰 때까지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법을.


백수생활은 회사생활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힘든 일이다. 혹자는 회사 안은 전쟁터지만 회사 밖은 지옥이라고 말한다. 나는 회사 안이 여러 사람들의 욕망이 충돌하는 아수라장이라면 회사 밖은 자기 자신이라는 환영과 싸워야 하는 진정한 불지옥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가 인생에 있어서 한 번쯤은 백수생활을 해봐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진짜 나라는 사람은 누구이며 내가 이 세상에 던져진 이유는 무엇인지 한 번쯤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고 답을 찾아야 하는 인간이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길든 짧든 방황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아마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 직장이라는 아수라장으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혹은 진짜 자신을 발견하고 영원한 자유를 쟁취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예전과는 다르게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당당히 백수로 살아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울에서 세 달 살기 하며 깨달은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