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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바트로스 Aug 27. 2023

경제적 자유라는 환상

경제적 자유가 도대체 뭔데?

  얼마 전부터 모 대기업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서 서울에서 경기도로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원래 인구과밀을 누구보다 싫어하며 통근시간은 무조건 줄이고 모르는 사람은 최대한 피해 다니자는 주의였던 내가 편도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게 될 줄이야. 인생은 역시 살아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 투성이다.


  다행히 운전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고 한적한 자연풍경을 좋아해서 조금 길어진 출퇴근 길과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날씨 좋은 날 차창 너머로 보이는 해가 산을 넘어가는 풍경을 보면서 듣는 보사노바와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조금은 우울한 분위기와 함께 듣는 클래식 음악이 좋다. 어쨌든 본의 아니게 출퇴근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아이러니하게 일상에서 벗어나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동안 잊고 지냈던 나 자신과의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3년 전 나는 그 누구보다 퇴사생각이 간절했다. 돌이켜보면 학교 졸업논문으로 '아시아와 유럽 선진국의 산업구조와 노동 생산성' 같은 것들을 주제로 썼을 정도이니 회사생활이 끔찍이도 싫었던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그때 나는 경제적 자유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당시 나는 부의 추월차선 같은 지금은 공짜로 줘도 안 읽을만한 책들을 읽으면서 회사 생활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평가절하하고 9 to 6의 라이프스타일을 벗어나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해 절망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퇴사를 선택했고, 1년 6개월 동안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고 사업을 하기 위해 법인을 설립해보기도 하며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던 것들을 실행에 옮겼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지난날에 내가 앓았던 것이 '사업병'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사업에 대한 열정이 있어서 그랬던 것도 아닌 것 같고, 굳이 말하자면 젊은 날의 객기 같은 것에 가까웠다. 지금은 그다지 퇴사생각이 간절하지 않다. 아직 배워야 할 것들이 많을뿐더러, 일은 나에게 생각거리와 글감을 제공해 주는 생각의 원천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일은 일정기간 내가 야생에서 사냥하러 이리저리 뛰어다니지 않아도 될 만큼의 적당한 시간과 여유를 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내가 9 to 6의 삶을 옹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굳이 회사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시키는 대로 해야 할 할 만큼 심리적 노예상태에 있지도 않다. 퇴사는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며 내일 당장 직장을 잃는다고 하여도 그런 경험쯤은 이미 많이 해보았기 때문에 별로 두렵지도 않다. 회사를 다니면서 이미 수입원 다각화를 이루어 가고 있고, 즐길만한 일자리는 또 찾으면 그만인 것이다. 사업체를 일으키는 것 또한 그럴만한 마음이 들면 하면 되는 것이다. 조급할 것이 없다.  


  3년 전 내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경제적 자유라는 게 무엇인가? 젊었을 때 페라리를 모는 것? 일하지 않고 여행 다니면서 노는 것? 아니면 남들에게 재산을 과시하고 으스대는 것? 솔직히 별로 관심도 없고 이제 그런 것들이 과연 인생을 살면서 나 자신과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것들 인지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경제적 자유에 대한 집착을 놓았을 때 나는 오히려 진짜 자유로워짐을 느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나는 지금 심리적으로 매우 자유롭고 돈이 우선순위가 아니다. 진심으로 살면서 돈보다 중요하며 이루어야 할게 많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통장 잔고와는 별개로 나는 감히 내가 경제적 자유상태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스의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외적 조건이 아닌 내적 조건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비록 노예 출신이었지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면서 인생을 낭비하지 않았다. 예전의 나였다면 그를 나약한 인간이라며 멸시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의 주장에 충분히 동의한다. 노자 역시 도덕경에서 중도를 지킬 것을 주문했다. 나는 노장사상을 인생 뭐 별거 있어?라고 요약하고 싶다. 별거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거기에는 진짜 인생의 정수가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때 퇴사하는 게 맞았다. 가보지 않은 길을 놔둔 채 꾸역꾸역 하나의 길만을 걸어갔다면 나는 영원히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을 남겨둔 채 익숙한 것들에 둘러싸여 인생의 더욱 큰 묘미를 놓치며 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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