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발리에서 다섯 달 살기를 할 때 영화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보고 한참을 생각에 잠겼던 기억이 난다. 사고뭉치 주인공 알란 할아버지에게 사람들은 항상 큰일이 난 것처럼 소리를 지르곤 한다. 알란은 타고난 폭파 본능 때문에 실수로 살인을 하고 소년원에 가기도 하고 사이코 의사를 만나 정체모를 수술을 받고 남자 구실을 못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근심과 걱정이 별로 없고 어쨌든 인생은 잘 흘러간다.
알란은 100세가 되도록 여자도 만나보지 못했고 자녀도 없지만 스탈린을 만나고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등 세계사의 굵직한 획을 긋는 여러 일에 관여하며 꽤나 멋진 삶을 살아간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발리의 석양을 보면서 이 영화의 핵심을 담고 있는 의미심장한 대사를 날리며 영화를 마무리한다. “소중한 순간이 오면 따지지 말고 누릴 것. 우리에게 내일이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가끔 우리는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지나치게 심각해지곤 한다. 어느 대학을 갈지, 어떤 직장을 고를지, 누구와 결혼할지, 어떤 차를 사고 어떤 집을 살지 등등 인생을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많은 선택과 책임으로 버거워한다. 그러나 알란 할아버지는 지나치게 심각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인생을 선택과 책임 혹은 어떤 정답이 있는 무겁고 진지한 것이 아닌 짧고 재미있는 여행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3년 전 커리어에 대한 고민과 직장생활 스트레스로 힘들어하고 있을 때 나는 지나치게 진지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책상 앞에 앉아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걱정을 했다. 하지만 인생은 점점 더 나락으로 빠졌고 무엇하나 해결되는 것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지난 30년간의 인생을 통째로 복습하며 제 인생이 잘 풀리고 재밌었을 때를 떠올려 보았다.
갖고 싶은 장난감을 손에 넣었을 때, 처음으로 여자 친구를 사귀었을 때, 단순한 호기심에서 일본 유학을 결정했을 때, 원하던 회사에 합격하고 처음으로 정장을 쫙 빼입고 출근을 했을 때, 이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무턱대고 발리로 떠나왔을 때… 성공적인 인생은 진지함이나 고민과는 별로 상관이 없어 보였다. 내가 솜털같이 가벼운 마음과 순수한 호기심을 가지고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을 때 세상은 어김없이 나에게 원하는 것을 쥐어주었다.
순수한 욕망으로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과정은 여행을 떠나는 것과 매우 닮아있다. 어디선가 본 여행지 풍경에 끌림을 느껴 그곳으로 향한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우리는 원하던 풍경을 보며 행복해한다. 하지만 여행은 항상 즐거운 과정만은 아니다. 도둑을 만나거나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기대했던 것과 다른 여행지 풍경에 실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중간에 여행을 포기한다면 여행을 떠나지 않는 것만 못하다. 그래서 우리는 머리를 쥐어 짜내고 방법을 찾아내어 어떻게든 여행을 마무리한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은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행복과 시련 그리고 고통이라는 형태로 우리에게 가르침을 준다. 그래서 누구든 최고의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최고의 여행자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