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종말의 시대에 다시 학교로
한 5년쯤 전부터 '대학의 종말'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졌다. 양질의 교육 콘텐츠에 대한 진입장벽이 예전과는 비교도 안되게 낮아진 요즘, 대학은 그 존재감이 정말 많이 희미해지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 당장 자신의 대학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는지 따져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적어도 열에 여덟에서 아홉은 자신의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미국 대학원의 명성이나 교육과정 자체가 가지는 권위가 추락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선 인풋대비 아웃풋을 살펴보면 학교는 배움의 수단 중 가성비가 가장 나쁘다. 어려운 GRE(Graduate Record Examinations) 시험준비를 하며 대학 교수님의 추천서(Reference Letter)를 받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복잡한 학업 계획서(Cover Letter) 따위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누구나 Coursera나 Udemy와 같은 교육 플랫폼에서 수준급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이러한 시대에 대학원이라는 선택은 투자한 노력이나 돈에 대비해서 그 리턴이 너무 작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미국 대학원은 시간투자나 금전적인 면에서도 좋은 선택이 아니다. 1년에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의 돈이 깨지는 것은 물론이고, 최소 2년이라는 시간투자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기회비용이다. 일을 하고 있는 현업 엔지니어의 입장에서는 주간 최소 10시간에서 많게는 2~30시간까지 여가시간이나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줄여가며 공부해야 한다는 점도 큰 디메리트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대학이나 대학원 중퇴자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일론머스크)가 똑똑한 박사학위 소지자보다 평균적으로 훨씬 더 많은 돈을 번다는 사실 역시 대학원이 얼마나 나쁜 선택인지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분야에서 한 나라에서 전문가로 인정받기 위한 방법에는 어떤 게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내가 내린 답은 어찌 되었든 그 나라의 고등교육기관을 졸업하고 학위를 받는 것이었다. 사실 일을 하면서 느껴지는 깊이 있는 지식에 대한 목마름이나 자기만족이라는 부분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일을 하면서 미국의 정식 석사 과정을 계획한 기간 내에 성공적으로 마치고 학위를 받는 것은 나의 아메리칸드림의 또 다른 마일스톤이 되었다.
그런데 나의 선택이 진짜 아이러니한 것은 지금부터다. 바로 문과출신이었던 내가 석사 과정으로 컴퓨터 과학(Computer Science)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뉴욕 연방준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22~27세 사이 대학 졸업생 중 컴퓨터과학과 컴퓨터공학 전공자의 실업률이 각각 6.1%, 7.5%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 한다. 생물학과 미술사 전공 신입 졸업생의 실업률인 3%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준이라고 하니, 이제는 컴공과를 졸업하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철학과나 목탁 제조학과를 졸업하는 것보다 취업에 있어서 훨씬 더 불리한 세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렇게까지 비이성적이고 무모한 결정을 내리고 어두운(?) 미래로 불나방처럼 달려들고 있는 것일까? 그 답은 내가 AI 개발/엔지니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바로 4년 전 문과생으로서 가지게 된 '기계는 정말로 자아를 가지고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 때문이다.
그 무슨 바보 같고 엉뚱한 질문인가 싶지만 나는 일을 하면 할수록 여전히 잘 모르겠고 궁금하다. 그런데 여기에 반전이 있다. 인공신경망(ANN)과 딥러닝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제프리 힌턴(Jeffry Hinton) 박사는 원래 실험 심리학을 전공한 문과 출신이었다는 점이다. 그는'마음의 작용'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개념을 기계에 구현해 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컴퓨터 공학자의 길에 들어선 대표적인 인물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다. 살아오면서 코딩이나 컴퓨터에는 전혀 흥미를 가지지 않았던 내가 석사 과정으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미국에 가는 것이 최악인 것처럼 보이는 시기에 나는 미국 귀국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아이러니의 연장선에서 나의 아메리칸드림 만큼이나 아이러니한 미국 대학원 석사 과정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돈 때문에 시작한 일은 돈이 안되면 지속하기 어려워진다. 마찬가지로 누군가 자신을 치켜세워주는 것이 좋아서 시작한 일은 명예가 사라지면 더 이상 지속할 이유가 없어진다. 역설적으로 아무런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않는 순수한 호기심이야말로 삶의 목적이나 본질을 담고 있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