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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ry Jun 16. 2019

나의 페로소나를 벗어던지며.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내는 두 번째 편지

 아팠습니다. 몸도, 마음도... 한 동안 아무것도 먹지도, 잠을 자지도, 책을 읽지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시름시름 앓았던 지난겨울은 저에게 몹시 추웠습니다. 정신과 상담을 받았습니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지요. 친구의 추천으로 찾아간 첫 상담은 유독 낯설었습니다. 긴장을 풀고자 갔던 화장실. 그 거울에 비친 제자신이 유독 작아 보였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무엇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든 것일까? 그렇게 저의 첫 상담은 시작되었습니다. 


 요 며칠 샌프란시스코는 비가 내렸습니다. 비가 내리는 샌프란시스코는 좀 낯설기만 합니다. 한 달 내내 뜨거운 햇살에 살다 보니 비가 내리는 샌프란시스코는 상상을 못 했으니까요. 우중중충한 날씨 때문인지 유독 빛의 소중함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오랜만에 눕지 못했던 잔디밭에 누웠습니다. 한 동안 참았던 열정을 뽐내듯 어느 때보다 강렬한 빛을 비춥니다. 어제와는 사뭇 다릅니다. 잠시 눈을 감고 동공으로 들어오는 어떤 뜨거움을 느낍니다. 강렬함. 뭔가 부글거리는 것이 그 안에 있습니다. 그 뜨거움을 좋아합니다. 




 지난겨울 내내 위로가 되었던 김진영 교수님의 아침의 피아노를 다시 펼쳤습니다. 임종 3일 전까지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담담한 고백이 좋았습니다. 아침의 피아노는 김진영 선생님이 암투병중에 쓰신 글들의 모음집이며 애도일기입니다. 선생님은 매일 스스로와 대화를 시도합니다. 아마도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본인의 육체와 정신과의 싸움이었을까요? 매일매일 다르게 다가오는 그 감정선들. 마치 피아노 선율처럼, 강약을 두드리며 악보처럼.  때론 감사했지만, 때론 분노했습니다. 때론 후회했으며 억울해했습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그의 태도는 솔직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죽음 그 자체를 정면으로 직시하며 멋있는 척도, 용기 있는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떨림으로 내뱉는 한숨, 자기도 모르게 툭 내뱉는 두려움, 갑자기 북받쳐 오로는 한염없는 눈물. 죽음 앞에 그는 고백합니다. 나약함을, 결함을, 소멸해 감을, 그리고 겸손함을, 절제를, 사랑을, 아름다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임종 3일 전까지 


  아프고 나서 제 삶의 가장 달라진 태도는 '솔직함'입니다. 솔직해지고 싶습니다. 지난 10년은 저를 지키기 위해 강한 척, 힘들지 않은 척했습니다. 일종의 페르소나. 저의 본연의 모습을 숨긴 채 가면을 쓰고 살았던 셈이지요. 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상대방이 저를 얕잡아 본다고 생각했습니다. 형님 문화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저의 무기이자 생존기술이었습니다. 학연과 지연으로 연결된 사회에서 고립을 택했고,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했습니다. 패거리 문화에 휩쓸리느니 외로움을 선택했습니다. 유독 형님 문화가 심한 정치권에서 저 같은 캐릭터는 살아남기가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초면에 반말하는 분들에게는 유난히 더 차갑게 대했고, 학연과 지연으로 친분을 과시하는 사람은 더욱 멀리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저의 중심은 서서히 흔들려 갔음을 고백합니다. 필요할 때는 가면을 벗기도 했고, 필요할 때는 가면을 쓰기도 했습니다. 때론 편했고, 때론 불편했습니다. 점점 그 유혹의 손길은 저의 마지막 방어선까지 침투했고, 얇고 넓은 관계선으로 대체되고 있었습니다. 한 다리만 건너면 아는 한국사회에서 최대한 많은 폰번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생존을 위한 필수 기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을 쉽게 푸는 첫 단추는 담당자가 누구와 한 다리를 걸쳐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고, 그 한 다리와 함께 술 한잔 기울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밀고 당기는 밀당의 기술도, 유독 차가움을 드러내는 무표정도, 당신과 친해질 마음이 추오도 없다는 진한 존댓말 투도. 저를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지난날을 회고한다면 형님과 의리로 점철된 정치권 세계에서 적당한 술을 곁들인 권력의 미학에 취해 허우적 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길을 잃고 방황했습니다. 헷갈렸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점점 중심을 잃어가는 팽이처럼 무너져 갔습니다. 어느덧 누군가에게 부탁을 할 때 형님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고, 나도 모르게 학교와 지역을 팔며 친분을 과시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물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가면이 나인지, 내가 가면인지 통 알 수가 없을 때 
진짜 저의 모습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진짜 나는 누구일까요?

 솔직해지고 싶다는 저의 고백은 제 본연의 자아를 찾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어떤 사회적 지위나 역할에 따라 달라지는 자신이 아니라 본래 그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투영할 수 있는 자아.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소비되는 내가 아니라 진짜 나. 우리는 너무 많은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론 그 가면이 진짜 자신의 자아인 양 착각하는 순간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대표적으로 연예인이나 정치인의 삶이 그렇지요. 끊임없이 미디어에 어떻게 노출될지 긴장하며 대중들이 원하는 삶을 연기하는 사람들. 결국 가짜 자신은 어떤 우연에 의해 탈로나게 되고, 사고를 치기 마련이죠. 


 당연히 적당한 가면은 필요한 법입니다. 사회적 동물로써 때론 적당한 페로소나는 자신을 지키는 또 다른 방법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진짜 자신이 누 군인 지도 모른 체 가면 속에 살아간다면 자신의 감정은 곪아가고 언젠간 반드시 터지기 마련입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저는 한동안 제 자신을 돌보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일 이외에는 다른 경험이나 감정들을 여유 있게 느낄 시간을 주지 못했습니다.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척했던 저의 태도는 저를 지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아팠던 이유는 육체적 피로감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제 자신의 마음을 돌보지 못한 탓이기도 합니다. 참 오래 걸렸습니다. 잠시 멈추는 것 어려운 것 아닌데... 누군가 이 동시를 읽어주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가던 길 멈추는 것 어려운 것 아닌데... 내 마음이 아픈지 알아채는 것 시간 걸리는 게 아닌데...


 참 오래 걸렸다 

가던 길
잠시 멈추는 것
어려운 게 아닌데

잠시 발밑 보는 것
시간 걸리는 게 아닌데,

우리 집
마당에 자라는
애기똥풀 알아보는 데
아홉 해 걸렸다.

― 박희순(1963~ )



 첫 상담이 있던 그날, 저는 화장실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제 자신이 누구인지, 나는 어떻게 살았는지를 말하는 일은 제가 살아온 지난 30여 년 삶 동안 너무 낯선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오래 함께 일했던 동료조차도 나는 네가 어떤 애인지 모르겠다. 너는 통 너의 이야기를 잘 안 하니까.  돌이켜보면 저는 주로 물었습니다. 저를 숨기기 위한 전략 인 셈이었지요. 제 자신을 숨기는 대화에 본능적으로 탁월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담은 제가 질문하는 게 아니라 주로 질문을 받는 자리입니다. 피할 수 없는 공간, 상담자와 내담자 단둘이 시선을 마주하고, 오직 나 '김성환'이라는 주제로 이야기하는 시간, 그렇게 저는 처음으로 제 가면을 벗고... 서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부터 왔는가? 


성환 씨가 어떤 분인지 참 궁금해요?  

 상담 선생님의 첫 질문이었습니다. 성환 씨가 어떤 분인지 참 궁금해요? 이 질문은 저에게 너무나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저는 한 30여분 동안 제가 지난 시간 동안 했던 일들을 말했습니다. 시민운동가, 서울시 비서관, 청와대 행정관.... 그런데 대뜸 성환 씨가 누구인지 물었는데 일 이야기만 하시네요? 일 말고요. 한동안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저의 첫 상담을 통해 깨달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제가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는 그 사실을 고백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저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꽤 큰 충격적인 소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제 자신의 삶을 꼭꼭 숨기며 살았으니까요. 저의 이 고백은 제가 솔직하게 살고 싶다는 또 다른 선언이기도 하며 상징적인 의식이기도 합니다. 아직도 저는 제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말하는 일은 서툴고 낯설기만 합니다. 


 저는 여전히 친분을 과시하며 의사 결정되는 그런 형님 문화를 싫어합니다. 하지만 순간순간 갈등하고, 때론 타협하며 살아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가면을 벗고 솔직함으로 승부할 것입니다. 제 본연의 자아를 어떤 다른 언어나 지위로 포장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저의 약함과 결함을 당당히 드러내고 솔직함이라는 무기로 살아갈 것입니다. 얇고 넓은 관계선이 아니라 투명하고 평등한 관계선으로 대체할 것이며, 고립이 아니라 다른 감각의 연결로 더 가치 있는 세계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유독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김진영 선생님이 생각나는 이유는 찬란한 빛 때문입니다. 김진영 선생님에게 그 빛은 간절함이었고, 꿈이었고, 음악이었습니다. 지금껏 누군가에는 그토록 간절했던 햇빛을 너무 소홀히 했습니다. 김진영 선생님의 글이 위로가 되었던 것은 죽음을 앞둔 한 인간의 좌절과 허망함, 약함을 온전히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약함을 고백하는 일. 그것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제가 그에게 배운 것은 어쩌면 용기 있는 태도였는지도 모릅니다. 저의 오늘 이 고백은 저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며, 솔직해지고 싶다는 강한 의지이자, 용기 있는 태도로 살겠다는 강한 포효이기도 합니다. 앞으로는 조금씩 저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연습을 해 볼 생각입니다. 그것이 저를 지키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은 지난날이기도 하니까요.  오늘은 김진영 선생님의 고백으로 편지를 닫을까 합니다. 한국은 뜨거운 여름이지요. 부디 잘 견뎌내시길 바라며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나무들 사이에 열린 허공의 창 안에 아침 빛이 그득하다.
  베란다에서 세상의 풍경을 바라본다.  
또 간절한 마음이 든다 한 번만 더 기회가 주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뭔가 부글거리는 것들이 그 안에 있다. 
나는 살고 싶은 것이다. 일하고 싶은 것이다.
already but not yet

나는 나를 안아준다. 괜찮아! 괜찮아!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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