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워킹홀리데이 : 홍콩 1

모든 여정의 시발점

by harrymerry

나는 대학에서 호텔조리과를 전공했는데, 졸업 전 반드시 업장에서 최소 한 달의 산학실습 기간을 마쳐야 했다.

주방 혈연, 지연, 학연이 전혀 없었던 난 어디서 어떻게 일할 곳을 찾아야 할지 막막했지만 정말 운 좋게 여름 방학 때 알게 된 사부(칼질을 가르쳐주셨다. 무를 일주일에 8통씩 썰었는데. 어디 계신가요 사부..!)의 지인을 통해 실습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서울의 한복판, 삼성역에 위치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던지라 발길이 끊이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내가 실습했던 시기가 연말이어서 평소보다 배로 바빴던 곳이었다.


만약 전공 선택 전 누군가 '진짜' 주방은 전쟁터라고 귀띔이라도 해줬더라면 나는 요리의 길을 걸어가는 것을 고려했을 것이다.


"지지지직- 지직"

적군들이 검은 박스를 통해 도전장을 내밀기 시작한다.

그 흰 종이들은 끊임없이 서로의 궁둥이를 물고 늘어져 구석에서 똬리를 튼다.

그들은 굶주렸으나 전쟁의 승리를 예감한 듯 웃고 떠들고 포효한다.

날카로운 스테이크 칼과 뾰족한 포크를 세워 전투태세를 갖추고 흰 천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가려 방어까지 마친 상태다.

언제나 그렇듯 아군의 수는 저쪽에 비해 항상 부족하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모두의 턱엔 땀이 맺히다 못해 뚝뚝 떨어지고, 검은 조리복 위로 시뻘건 토마토소스가 튄다. 뛰어다니지 않고서는 그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정신 차려라!! 빨리빨리!!", "여기, 설거지 지원!"


오븐부대와 가스레인지부대에서 피자 병사와 파스타 병사들을 현장에 투입시키고, 한쪽에서는 고기 익는 연기에 정신이 혼미해지지만 힘겹게 수증기를 뚫고 날아다니는 기름 총알을 피해 피자 도우 포탄을 끊임없이 채운다.

와인 지원군이 최대한의 병력을 투입하지만

아, 역부족이다. 임무를 다한 와인병들은 검붉은 액체를 뚝뚝 흘리며 임종을 맞이한다.

적군들이 한바탕 휩쓸고 간 자리에는 프라이팬들과 접시들의 싸늘한 죽음뿐, 생존한 셰프 전사들은 데고 베였지만 치료할 새 없이 그들의 뒷수습까지 처리해야 한다.

이제 막 들어온 신참은 이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이 무섭고 벅차기만 하다.


무경력에 실수 투성인 사회 초년생은 주방 선배들이 그렇게 대단하고 거대해 보였다.

국내 이곳저곳을 다니며 경력을 쌓으신 분도 계셨고 해외로 유학을 다녀온 분도 계셨다.

특히 눈이 크고 파랗게 염색한 헤어스타일이 인상적이었던 동갑내기 여직원은 어린 나이임에도 직급이 꽤 높은 데다 아는 것도 많고 일도 척척 잘해서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배울 게 많은 멋진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나에게 올해(12년도의 끝자락이었다) 이룬 목표가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학교를 다닌 것과 양식 자격증을 취득한 것 이외엔 없다고 답하자, 자기는 승진이 올해의 큰 성취였고 몇 년 후에 모은 돈으로 요리 유학을 갈 예정이라는 미래 계획까지 얘기해 줬는데,

그 얘기를 들은 나는 부끄러움이 든 동시에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깨어난 느낌을 받았다.


실습기간이 끝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나는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드릴 말씀이 있으니 집에 들어가기 전 밖에서 같이 식사 한 끼 하자 했다.

우린 당시 핫플이었던 롯데마트의 푸드코트에서 만나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눴다.

11년이 지난 지금 그 당시 기억은 가물가물해져 가지만 어머니께 긴장하면서 얘기한 걸로 기억한다.

아마 '살면서 처음 서울에서 일해보니 해외로 유학을 갔다 온 사람, 일 해본 사람들이 있더라?, 놀아도 큰 물에서 놀라는 말이 이제 뭔지 알겠더라?,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더라?, 서울에 이렇게 대단한 사람들이 많더라 엄마?, 그리구 볼 것두 많구 코엑스는 대빵 크구 먹을 것두 많은데 심지어 맛있기까지 하더라?, 나중에 같이 놀러 가면 좋겠다, 그지 엄마?, 여튼간에 거기서 같이 일하던 동료 중 한 명이 정말 멋진 구석이 많은 친구여서 배울 게 참 많은 그런 사람이었다?, 근데 걔가 요리 유학을 간다고 하니까 나도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왜냐면 서울에 이렇게 다양하고 배울 사람들이 많은데 해외는 오죽할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거기-서, 많이 배울 수 있을- 거, 같애-서, 나 이제 성인이구 그러니까 준비두 철저히 하구 갈 거구 걱정두 안 시킬 거구, 근데 아빠는 허락해 줄까, 근데 엄마 아빠가 가지 말라 하면 슬플 거 같긴 한데 그래두 갈려구'라고 말씀드린 거 같다.


어머니는 내 말을 듣는 내내 이미 답을 정해놓으신 표정을 지었다.

나는 해외에 혼자 나가는 것에 반대하실까 노심초사했지만 다 지원해 줄 테니 꼭 가라는 말씀이 전부였다.


허락을 받은 후 학교를 1년 더 다니며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한 나는

2014년 5월 19일, 홍콩으로 떠났다.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2014.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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