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서니 자극적이었다
그날의 새벽녘은 습기를 살짝 머금은 분홍빛으로 물들여져 있었다.
가족들에게 담담한 표정으로 아프지 말고 걱정 안 되도록 잘 지내고 올게-라며 뒤돌아 떠났으나 내 마음속엔 파티가 한창이었다.
혼자 자취를 해봤거나 해외에 나가본 경험은 전무했고, 그곳에서 살 집이나 직장을 미리 구해 가지 않았지만(눈으로 직접 볼 수 없는 모든 것은 믿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선택이었다) 두렵거나 무섭기보다도 "해외"에서 "혼자" "생활한다"는 것에 한껏 들뜬 탓이었다.
얼마나 신나던지, 실 것들이 나를 충남 천안에서 홍콩 공항으로 옮기는 동안 핸드폰에 정리해 둔 관광지와 맛집 정보들을 보느라 정착을 못해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 거란 걱정 하는 걸 깜빡 잊을 정도였다.
마침내 비행기의 앞발이 목적지의 활주로에 내려앉았고 천장의 주황빛을 내는 사인이 동-하는 맑은 소리와 함께 사라지자 200여 개의 벨트가 맥없이 떨어져 나갔다.
도착의 기지개를 쭉 켜며 홍콩의 첫 숨을 들이 마시니
이것저것 섞인 습하고 눅눅한 냄새가 코 안에 가득 채워지는 한편,
이 날을 위해 나름 고심하고 입었던 청 스키니 진은 습한 공기가 더 조여주다 못해 살에 들러붙게 하고 흰 남방을 뜨겁게 만들었다.
땀 한 번 닦고 짐 옮기고, 땀 세 번 닦고 버스카드 구매하고, 또 땀 두 번 닦고 시내 가는 버스 정류장이 어디예요 하고 물어보고, 마지막으로 땀 한 번만 더 닦고선 빨간 2층 버스에 올라탔다.
지금 같았으면 바로 택시행이지만, 당시 20대 초반의 신체로부터 나온 '체력이 닿는 데까지 절대 안 쓴다'의 올곧은 정신으로 하여금 그것들에게는 눈길도 안 줬다 하더라.
모든 것이 처음인 데다 구글 맵도 어색했던 나는
숙소를 가기 위해선 현지인의 도움이 절실했다.
내가 버스에서 처음 마주친 현지인은 그 빨간 버스의 기사님이었는데
아쉽게도 나는 광둥어를 할 줄 몰랐고 버스 기사님은 영어를 할 줄 모르셨다.
그렇지만 영어인지 광둥어인지 하여튼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르겠는데
중간중간마다 에? 에?를 가미해 아마 외계어가 있다면 이렇게 들릴 것 같은,
손짓 발짓 몸짓 눈짓 별짓을 다 하니 마치 옆에서 보면 야구 경기에서나 볼법한 사인을 남발하는,
그렇지만 사람 사는 거 똑같은지라 신기하게 서로를 알아듣는 나와 버스 기사님 사이의 완벽했던 의사소통은 그 정류장에 내려야만 하는 미션을 클리어할 수 있었고,
따봉과 함께 "떠제(고맙습니다)"라는 나의 감사 인사를 끝으로 우리의 추억을 태운 버스가 떠나자, 진짜 혼자 외국에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게 됐다.
핸드폰을 이리저리 돌려 가며 임시 숙소로 향하는 길로 죽 가다 좌절해 버렸다.
숙소로 올라가는 길에 하필 계단이 어마어마하게 있던 것이었다.
남은 체력을 수건처럼 짜내어 시간은 걸렸지만 '짐 세 개 지고 계단산 오르기' 관문에 성공했고 이어서 방탈출 게임 하듯 숙소 입구 찾기도 성공했다.
나는 일반 게스트하우스의 여성 전용 6인 도미토리에서 총 2주간 지내며 앞으로 지낼 방과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나는 틈틈이 홍콩을 여행했다.
홍콩은 한 청년의 22년 동안 만들어 논 세계를 흔들어줄 만한 것들이 갖쳐진 곳이었다.
인종과 국가의 범위가 넓어 네팔 음식부터 멕시코 음식까지 다양한 음식들을 두루 접할 수 있다는 것, 그 당시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미슐랭 가이드에 선정된 세계적으로 유명한 셰프들의 식당들이 즐비해 있다는 것, 구수하고 뭔가 쿰쿰하지만 중독되는 홍콩의 냄새, 붉은 간판이 깜빡대는 밤거리, 무려 이소룡의 고향, 위험하니 비키라는 소리와 함께 도시를 가로지르는 트램과 똑똑똑 투박한 신호등 소리, 해지고 색 바래진 반바지만 입고 설렁설렁 다니는 쿨한 홍콩의 아버지들과 여기저기서 들리는 매력적인 광둥어를 포함한 모든 걸 말이다.
짐을 내려놓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홍콩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구석에서 주문한 에그 누들을 호로록 먹으며 생각했다.
'생각한 거 이상으로 멋진 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