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예술을 가스라이팅하다 I

공감각자의 등장과 현대 예술의 탄생

결국 음악은 소음이 되고 미술은 쓰레기가 되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현대미술이나 음악을 진정으로 즐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처음에는 조금 저러다 말겠지 싶었던 현대예술의 괴랄함의 정도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히려 점점 더 심해지면서 작금에는 심지어 이런 주장이 나오기에 이르렀다.


이들 현대예술가들은 많아야 전 인구의 2~3% 정도를 차지하는 공감각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공감각이란 서로 다른 감각, 예를 들면 음에 대한 청각이나 색에 대한 시각을 느끼는 신경분야의 경계가 무너져 이를 복합적으로 느끼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쇤베르크의 무조 음악은 우리 같은 일반인들 귀에는 그냥 소음으로 들리지만 공감각자들에게는 남들에게는 귀로만 들리는 음계가 눈앞에 펼쳐지며 귀에 들리는 소음이 아닌 눈에 보여지는 음계에 대해 아름다움을 느낀다.


칸딘스키가 쇤베르크의 불협화음을 좋아하다 못해 이를 그림으로 표현한 일화도 있듯이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일 수 있다.


다음 그림은 칸딘스키가 쇤베르크의 공연장에서 눈에 보이는 음악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impression iii_칸딘스키.jpg


Impression III (Concert) 인상3, Wassily Kandinsky 1911, 뮌헨 렌바흐 시립미술관



하지만 이들 소수의 공감각자들을 제외하면 콘서트홀에 갇혀 무조 음악을 두 시간 동안 들어본 후에도 ‘협화음과 불협화음은 단지 익숙함의 차이’라는 쇤베르크의 주장에 동조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리고 이건 이러한 예술이 등장한 배경 뒤에 숨어 있는 철학과 사상의 흐름은 송두리째 무시하고 개개인의 감각에만 초점을 맞춘 설명이다.


쉽게 말해 만약 쇤베르크가 중세에 태어났다면 그의 공감각적 능력은 아무 의미없는 재능이었다.


귀에 피가 나는 고통에 뿔이 단단히 난 주교에게 공감각을 타고난 오르간 주자가 ‘협화음과 불협화음은 단지 익숙함의 차이일 뿐이옵니다’라며 아무리 울부짖어봐야 돌아오는 것은 화형대의 장작더미뿐이었을 것이다.


아니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이미 쇤베르크 같이 공감각에 기반한 음악적 감각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그게 음악적 재능인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평생 농사나 지으며 살다 간 사람이 더 많았을 것이다.


미술도 마찬가지이다. 칸딘스키 뿐만 아니라 ‘리듬을 그리는 화가’ 파울 클레, 아실 고르키, 호안 미로 같이 추상파와 초현실주의를 넘나드는 미술가들 대부분은 공감각자라는 평을 받았지만 이들이 르네상스 시대에 태어나서 이런 그림을 그렸다면 그 비싼 안료를 낭비한 죄로 채찍질이나 당하고는 물레방앗간으로 쫓겨났을 것이다.


dutch interior_호안미로.jpg


Dutch Interior I, Joan Miró 1928, MoMA


[또 다른 공감각자, 호안 미로가 음악을 그린 그림]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런 현대예술을 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스스로가 공감각자가 아니기 때문에 본인들도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상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영화음악을 작곡하는 내 동생은 뉴욕대 New York University에서 영화음악과 작곡을 전공했는데, 뉴욕대 음대 학장이 입학식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 학교는 사람들이 듣는 음악을 만든다’


현대 예술의 사조를 철저히 계승하고 따르는 음’학’을 하는 미국의 다른 음대에 비해 영화학과가 강세인 뉴욕대는 음대 역시 어떻게 말하면 상업적인 음악, 또 달리 표현하면 ‘사람들이 듣는 음악’을 만드는 곳이라는 말이다.


이와 반대의 경우가 내가 나온 인디애나 대학 Indiana University at Bloomington의 음대이다. 인디애나 음대는 미국에서 가장 큰 음대로 명성이 높은데 이 곳의 작곡과에서는 현대음악의 이론에 충실한 음학, 즉 ‘사람들이 듣지 않는 음악’을 만든다.


인디애나 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하던 한 친구는 자신의 작곡 발표회 때면 비전공자 친구들이 꼭 이렇게 묻는다고 토로했다. ‘이거…음악 맞지?’ 작곡가 자신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불행히도 공감각적 능력을 타고나지 못한 작곡가 스스로의 귀에도 이게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음악으로는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20세기 초반에 와서야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에 존재하지도 않던 공감각자들이 갑자기 무더기로 쏟아져나와 추상이니 초현실주의하는 예술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이들은 유사 이래로 언제나 우리 곁에 존재해왔다. 그런데 갑자기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이들의 괴상한 감각이 예술적 재능이라고 칭송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 우리 같은 일반인의 눈에는 괴랄맞게만 보이는 현대예술이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이들 공감각자들의 놀라운 예술혼의 발휘라기 보다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공감각적인 음악이나 미술을 예술이라고 받아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그 동안 서양 사상사를 지배하며 예술의 형식에까지 영향을 미치던 형이상학적 이원론이 드디어 수명을 다했다. 해체주의로 대표되며 다원론을 지향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이 등장하면서 수천년 간 예술과는 무관하게 살아온 공감각자들의 재능이 오늘날 빛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 현대음악이나 미술이 어쩌다 이런 모습을 하게 되었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달팽이관이 찢어지는 고통을 꾹 참으며 불협화음을 몇 시간씩 듣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는 왜 전통적인 예술관을 지향하는 형이상학적 이원론이 지배를 했고, 어쩌다가 현대의 사상은 다원론을 지향하게 되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걸 알아야 오늘날에는 왜 관객이 느끼는 아름다움이나 즐거움과는 상관없이 그저 예술가가 느끼고 원하는 대로 만든 것을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는지 그 맥락을 이해할 수가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존재론 Ontology이라는 우리에게 조금은 낯선 단어가 핵심으로 등장한다.


현대 예술이 나오기 전까지의 예술은 쉽게 말해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존재 Being을 충실하게 표상 Representation하는 것이었다. 존재 Being와 표상 Representation, 이 것이 흔히들 말하는 형이상학적 이원론의 본질이다.


따라서 근대 이전의 예술에서는 예술가의 독창성이나 창의력은 필요없었다. 본질적인 존재인 Being은 신이 창조하는 것이고, 인간인 예술가의 역할은 이를 현실에서 충실하게 표상하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 예술가의 능력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예술혼이라고 부르는 독창성이나 창의력이 아니라 ‘존재 Being’을 충실하게 현실에서 구현하는 손기술과 인내력에만 달려있었던 것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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