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서양의 예술
기독교가 예술에 끼친 영향
그 존재에 대한 배경 설명이 길 수밖에 없는 존재론 Ontology이 이처럼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철학이 신학의 시녀 노릇을 하게 된 이유는 기독교의 이론적 기반을 탄탄하게 만들고 그 권위를 확립해서 성직자들의 부와 권력을 유지시켜 주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당시의 모든 일들은 교회의 권위를 키우고 유지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철학도 신학의 시녀가 되는 판국에 음악이나 미술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중세시대 음악과 미술 역시 모두 교회에서 신앙심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 코너에 몰렸던 기독교를 하드캐리했던 존재론과 여기에서 파생된 형이상학적 이원론에 기반한 예술은 기본적으로 존재 Being의 표상 Representation을 최대한 자세히 묘사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예술가의 역할은 실제 우리 눈에 보이는 이 표상을 충실히 구현하는 것에 불과했다. 르네상스 시대까지 예술가와 장인이 구분되지 않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르네상스와 함께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자연과학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신 중심의 사고가 사람 중심으로 바뀌면서 교회의 권위가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15세기에 르네상스가 촉발된 배경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첫번째로는 중국에서 발명되어 중앙아시아와 아랍을 거쳐 들어온 종이의 보급을 꼽을 수 있다. 양피지 시절에 비해 지식의 유통이 늘어나며 유럽에 종이가 보급된지 딱 백년 후에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르네상스가 촉발된 또다른 원인은 십자군 원정이었다.
기독교의 논리적 토대를 탄탄하게 만들기 위해 애를 쓰던 교부철학자들은 십자군 원정을 통해 접하게 된 이슬람의 문화 수준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곧 이슬람의 인문학과 자연과학에 드리워진 아리스토텔레스의 그림자를 발견하였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살아온 유럽에서는 배척되고 잊혀 졌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랍에서는 계속 계승되고 연구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교부들은 이슬람에서 역수입된 아리스토텔레스를 연구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수 백년을 이어온 신플라톤주의와 교부철학에서 한걸음 나아가 스콜라철학을 탄생시켰다.
가뜩이나 교부들이 구약성경의 일원론적 기반에 플라톤의 이원론을 얹어버려 꼬이기 시작한 기독교의 교리는 한술 더 떠 플라톤과는 다른 의미에서 대척점에 있던 아리스토텔레스까지 불러들이며 본격적으로 아무말 대잔치가 시작되었다.
쉽게 말해서 존재론의 기반이 되는 이데아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플라톤에게 이데아의 유무는 논증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한 때 사제지간이었지만 이런 플라톤을 문과생 취급하며 자연과학에 기반한 증명을 앞세우던 아리스토텔레스가 화려하게 귀환하자 성경에 대한 해석은 상황에 따라 ‘믿쑵니까 아멘’과 이성적인 논증이 뒤섞이게 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귀환하기 전까지의 중세의 미술가들은 교부들이 도입한 플라톤의 형이상학적 이원론을 예술의 토대로 삼았다. 선과 악, 빛과 어둠이라는 이원론이 예술에 도입되며 빛이 휘감는 성령과 어둠의 악이라는 구도의 그림이 탄생한 것이다.
신학이 시녀로 삼은 철학의 도구에 불과한 예술에 있어 아름다움은 그 주된 목적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아름다운 여인의 나체는 순진한 신도들을 시험에 들게 하여 종교의 권위를 높여야 하는 당시 예술의 합목적성에 반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반쯤 감긴 졸린 눈에 기묘한 신체비율과 구도를 가진 성화를 그려오던 미술가들은 르네상스 시대에 재발견된 그리스 로마 조각을 보고 깜놀하며 그대로 따라하기 시작했다.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 모두 그리스 조각을 본따 눈이 얼굴 반만하고 목이 사슴보다 긴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생긴 인물들을 그리고 조각했다. 다비드상이 그 완벽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음악 역시 졸린 눈에 어울리던 단조로운 단성음악에서 벗어나 화려한 선율의 다성음악이 시도되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르네상스로 과학과 인간 이성에 대한 지식이 늘어나며 종교의 권위가 조금씩 쇠토했기 때문이다. 천년의 시간 동안 빛과 어둠이나 논하던 중세의 사상가들이 이슬람 문화와 함께 화려하게 귀환한 아리스토텔레스를 재영접하면서 플라톤에서 기원한 형이상학적 이원론은 서서히 퇴장할 준비를 하게 되었다.
르네상스를 맞이하여 미술과 음악은 이렇게 중세를 지배해온 신학으로부터 독립해 나가기 시작했다.
<반쯤 눈이 감긴 고딕 시대의 성모>
성모의 대관, Paolo Veneziano 1324
<그리스 영향을 받은 르네상스 시대의 성모>
시스티나의 성모, Raffaello Sanzio 1512-13
<그리스 모방에 대한 반감으로 일부러 신체비율을 왜곡한 매너리즘 시대의 성모>
목이 긴성모, Parmigianino 1534-1540
르네상스를 통해 자연과학이 발달하자 교부들이 그렇게 애를 써서 지켜내었던 교황의 권위는 자연스레 추락하게 되었다. 신화학자 카렌 암스트롱은 16세기부터 로고스 (이성)가 뮈토스 (mythos 신화)에 승리를 거두며 신화적 사유방식이 무너지고 종교와 신화는 신뢰를 잃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교부철학자들이 수백 년에 걸쳐 가다듬었던 기독교의 철학적 기반도 사회 전반에 걸쳐 서서히 그 영향력을 잃기 시작했다. 예술도 예외는 아니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