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슬픈 바위가 있는 곳 – 스위스 루체른 호숫가
스위스의 루체른 호숫가에 가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바위가 있다. 뢰벤덴크말 Löwendenkmal, 빈사의 사자상이다.
지금이야 세상에서 가장 잘사는 강소국 스위스이지만 영세중립국으로 자리잡기 이전의 스위스는 그냥 궁벽한 산골마을이었다. 단지 험준한 산 속에 있기 때문에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스위스가 먹고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알프스를 공유하는 인근의 오스트리아 – 합스부르크 왕가와의 수백년에 걸친 싸움에서 단련된 용병을 유럽 각국에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대부분의 용병은 실제 우리의 상상만큼 용맹하게 싸우지는 않았다. 어차피 먹고 살기 위해 직업으로 하는 것인데 굳이 내년이면 적이 될지도 모르는 남의 나라 왕에게 목숨까지 바칠 필요가 있었을까?
그래서 많은 경우 실제 총칼을 들고 싸우기 보다는 멀리서 상대의 숫자와 무장상태 등을 가늠해 보고 용병대장들끼리 모여 앉아 협상으로 승패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1440년 피렌체와 밀라노 사이에서 벌어진 앙기아리 전투에는 수천 명의 용병부대가 참가했지만 실제 죽은 사람은 실수로 말에서 떨어진 한 명 뿐이었다. 피렌체의 용병대장이 얼마전까지 밀라노의 용병대장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전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으로 후세에 길이 남아 있다.
앙기아리 전투 Battaglia di Anghiari, Leonardo Da Vinci
하지만 늘 그렇듯 예외는 있었다. 별로 죽기 살기로 싸우고 싶지는 않았던 용병의 역사에서 가장 잘 알려진 예외는 실제 죽기살기로 싸웠던 스위스 용병이었다.
배고픈 쥐는 고양이를 문다고 하듯이 알프스 산중에서 늘 배가 고팠던 스위스군은 유럽 최강의 합스부르크 왕가를 지척에 두고도 오스트리아 영토를 수시로 약탈했다. 실제로는 산적에 더 가까웠던 스위스의 보병군단은 합스부르크의 중장기병과의 전투에서 전혀 밀리지 않고 심지어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이런 스위스군의 용맹이 알려지자 유럽 각국의 왕실들은 앞다투어 스위스군을 용병으로 고용했다. 이들은 실제 고용주를 위해 목숨을 바쳐가며 최후까지 싸움을 벌였다. 그래야 앞으로도 스위스인들이 계속 용병으로 봉급을 받아 고국에 남은 처자식들이 먹고 살 수 있다는 집단의식이었다.
시민혁명에 휩싸인 프랑스에서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를 마지막 순간까지 지킨 것도 이미 시민군이 되어버린 프랑스군이 아니라 용병으로 고용한 스위스 근위대였다.
베르사이유를 탈출하려다 실패한 루이 16세 일가는 튈르리 궁에 유폐되었고, 마리 앙트와네트의 친정인 오스트리아군이 프랑스로 진격하자 시민군의 손에 단두대로 끌려갔다.
이 때 튈르리 궁으로 몰려간 프랑스 시민군은 부르봉 왕가의 간판을 내리는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스위스 용병들에게 제발 살아서 집에 가시라며 읍소에 가까운 퇴각 요청을 거듭했다. 유럽 최강 스위스 용병들과 싸우게 된 자신들의 목숨도 아까웠겠지만, 한편으로는 먹고 살자고 용병 일을 하러온 이웃나라 평민들을 굳이 죽이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왕실과의 계약기간이 남았다며 이를 모조리 묵살한 칠백 명의 스위스 근위대는 버림받은 남의 나라 왕과 왕비를 지키다가 문자 그대로 마지막 한 명까지 모조리 전사한다.
이런 배경을 기반으로 교황청에까지 고용된 스위스 용병대는 나폴레옹이 쳐들어왔을 때도, 스페인과의 전쟁에서도 모두 전멸에 가까운 희생을 감수하며 교황을 지켜냈다.
바티칸이 나치에게 포위된 2차 세계대전 당시 이런 역사를 잘 알고 있던 교황 비오 12세는 생애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고 있던 자신의 근위대를 찾아가 제발 나를 지키다가 죽지 말아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해야 했다. 교황의 간청과 중재 덕분에 스위스 근위대는 나치에 맞서 무기를 버리고 상징적인 의미에서 창을 든채로 교황청을 지키고 있다
창을 든 스위스 바티칸 근위대
단지 먹고 살기 위해 남의 나라의 왕과 왕비, 그것도 스위스의 영원한 숙적 합스부르크의 딸인 마리 앙트와네트를 지키다가 이국 땅에서 죽어간 선조들의 슬픈 역사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은 고국 루체른의 호숫가에 커다란 바위조각을 새겼다.
스위스군의 상징인 사자는 온 몸에 창을 맞은 채 부르봉 왕가의 상징인 백합이 새겨진 방패 위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어가고 있다. 언젠가 스위스를 찾았던 마크 트웨인은 이 바위를 보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바위’라는 말을 남겼다.
Löwendenkmal 빈사의 사자상, Wikimedia
이런 보릿고개 같은 역사를 간직한 스위스이지만 이 나라는 더 이상 용병으로 먹고 사는 궁벽한 산골이 아니다. 오히려 도시 구석구석까지 완벽하게 관리된 지상낙원 같은 곳이 오늘날의 스위스이다. 오늘날 스위스가 누리는 부의 수준은 상상 이상이다.
예전에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무작정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적이 있었다. 다음 직장 출근까지는 두달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파리에 도착해 호텔에 짐을 푼 후에야 이제 무엇을 할까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파리 동역으로 가서 TGV를 탔다. 오랜만에 여행자의 마음으로 기차를 타고 스위스의 루체른으로 향했다. 그리고 역에 내리자마자 호텔을 알아보거나 택시를 불러타기도 귀챦아 그냥 역앞에 있는 호텔에 들어가 체크인을 했다.
그렇게 딱 일주일을 스위스의 호숫가에서 딩굴거렸다. 아무도 없는 망망대해와 같은 뉴질랜드 호수에 비하면 스위스의 호수가는 동화 같은 마을들이 줄지어 있어 돌아다닐 맛이 난다. 다양한 노선이 있는 호수의 페리들을 내키는 대로 골라타며 오늘은 이 봉우리, 내일은 저 봉우리하며 봉우리 순례를 하다보니 주말이 되었다. 아니 한시적 백수인지라 주말이 된지도 몰랐는데 눈앞에 펼쳐지던 익숙한 풍경이 한순간에 바뀌어 버리며 주말이 온지를 깨달은 것이다.
조용하던 호수가 갑자기 배로 꽉 차버렸다. 주중에 텅 빈 호수를 고요히 누비던 페리들은 주말이 되면서 스위스 사람들이 저마다 한 척씩 몰고 나온 배들을 피해다니느라 수시로 뱃고동을 울려댔다. 호수를 뒤덮은 배들은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었다. 돈많은 부자들은 영화에 나올 것 같은 멋진 요트를 끌고 유유히 주말을 즐겼다.
부지런한 멋쟁이들은 폴로 셔츠에 선그라스를 끼고 무동력 세일링 보트의 돛을 조정해가며 호수를 누비고 있었고, 사람 좋은 인상의 배불뚝이 아저씨들은 멋진 요트들 사이에 작은 보트를 띄우고는 자신의 작은 배를 물살에 맡긴 채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배가 남산만한 이 아저씨들의 조각배에는 대낮에도 곧잘 와인병이 보였다. 그래, 이런게 선진국의 주말이지.
주말이 되자 호수가 저마다의 배로 새하얗게 덮이면서 주중의 호숫가에서 즐기던 여유가 사라졌다. 그러자 갑자기 빈사의 사자상이 떠올랐다. 루체른에 와서 사자상을 안보고 그냥 갈 수는 없었다.
배로 뒤덮인 호수와는 달리 사자상 앞은 한산했다. 한 때 처자식을 먹여살리기 위해 이웃 나라왕에게 목숨을 바쳤던 조상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자상과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나라의 호수를 새하얗게 뒤덮은 요트들을 번갈아 보면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스위스는 어떻게 해서 목숨걸고 입에 풀칠하던 나라에서 한순간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로 변모했을까?
이제 스위스하면 용병보다는 알프스 산 속의 목동과 시계가 먼저 떠오르긴 한다. 하지만 낙농업은 스위스의 국가이미지를 위해서 국립 낙농학교에서 배출한 목동들에게 월급을 주면서 인위적으로 유지하는 관광산업의 일부일 뿐이다.
스위스에서 만드는 롤렉스나 오메가 시계 역시 가성비라는 측면에서 보면 말도 안되는 가격표를 달고 있지만 여기서 나오는 수입 역시 수백만의 인구가 세계 최상위권의 소득수준을 누리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스위스 경제의 핵심은 금융업, 정확히 말하면 돈세탁과 낙전수입이다. 스위스의 국회의원이었던 장 지글러는 ‘왜 검은 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라는 책에서 스위스가 국가차원에서 어떻게 마약 카르텔 두목들과 독재자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고 이들의 검은 돈을 세탁해주어 왔는지를 폭로했다.
지글러에 따르면 스위스 정부는 미국의 강력한 외교적 항의와 송환 요구에도 불구하고 남미의 마약 카르텔 두목들에게 스위스 내에 은신처를 제공하며 이들의 자금을 세탁해주고 있다고 한다.
이런 천문학적인 돈을 세탁해주다보면 각종 수수료와 떡고물, 보관료 등의 수입도 발생하지만, 스위스 금융기관들에게 가장 큰 수입원은 이런 예금주들이 죽은 후에 생기는 낙전수입이다. 스위스 은행들은 독재자나 마약두목들이 이런 저런 사유로 죽고 나면 그 누가 오더라도 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일절 출금을 불허한다.
이들 중 천수를 누리며 먼 이국땅의 은행계좌 상속까지 깔끔히 해결하고 죽은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자 스위스는 1년에 한 번만 있다는 국빈 방문으로 박 전 대통령을 성대히 환영하며 마음의 빚을 덜었다.
스위스의 치부를 폭로한 장 지글러는 책 발간 후 연방의원으로의 면책 특권도 박탈당하고 수시로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산적과 용병의 후예들은 돈세탁과 낙전 수입으로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를 만들었다. 가을마다 알프스 산에서 내려오는 소떼를 맞이하는 목동축제를 열고 제네바의 화려한 시계 공예를 선보이며 국가 이미지를 세탁하고는 있지만 결국 이래서 근본이라는게 중요한 것이다.
스위스 호숫가에서 망중한을 즐기다 이탈리아로 향했다. 원래 그리스로 가려던 참인데 오는 길에 핸드백을 하나 사오라는 모친의 전갈을 받고 먼저 밀라노에 들렀다가 아테네로 가기로 했다.
이탈리아의 북부와 남부는 마치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를 보는 것 같다. 우리가 볼 때는 생긴 것도 비슷하고 말도 비슷하고 음식도 비슷해 보이지만 부유한 전자가 가난한 후자를 엄청나게 무시한다.
밀라노는 부유한 이탈리아 북부에서도 가장 상업이 발전한 중심도시로 당연히 이탈리아에서 가장 잘사는 도시이다. 그런데 스위스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내다가 밀라노에 입성하니 한순간에 스위스를 떠나 이탈리아에 왔다는 느낌이 번쩍 들었다.
스위스와 이탈리아는 도시의 정돈상태, 특히 큰 길에서 한걸음 꺾어 들어간 작은 골목들의 청결 상태가 차원을 달리한다. 남부 스위스와 북부 이탈리아는 언어도 같은 이탈리아어를 쓰고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도 많은 것을 공유하는 곳인데 이리도 다른 세상처럼 보인다.
스위스의 대도시부터 시골마을까지 구석구석을 들여다 보면 같은 사람 사는 곳인데 어쩌면 이렇게 철저하게 관리될 수 있을까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단지 눈먼 돈을 많이 떼어먹었다고 이런 완벽한 국가가 나올 수 있을까? 나 혼자의 생각만으로는 도무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