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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롱이란 로망”

[쪽샘살롱 01] 들어가는 말

by Harry Yang

어디 보자...


2022년 봄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지금이 2025년이니 이제 3년이 된다. 고향인 경주로 내려와서 이런저런 일자리를 거쳐 보다가, 이제는 나의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페이스북에서 눈여겨보던 페친이 하나 있었다. 남동생의 친구이니, 내게는 고등학교 3년 후배인데, 시사만화를 그리다가 지금은 웹툰을 하고 있다고 했다. 경주에 그런 재능을 가진 후배가 있구나 싶어서 약간의 호기심을 갖고 있던 어느 날, 무작정 메시지를 보내서 그의 작업실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연락을 했다. 그냥 안면이나 터보려던 만남은 두 번째로 이어졌고, 자기가 얻어놓은 공간이 하나 있는데, 뷰가 아주 좋다며 나를 이끈 것이 팔우정 로터리, 흔히 ‘팔우정 해장국 거리’로 널리 알려진 곳의 낡은 건물 2층이었다.


이 인근지역은 지금 '쪽샘고분군'으로 구획이 되어 있는데, 과거에는 '쪽샘'이라고 하면 경주에서 요정과 술집이 많이 있어서 경주고등학교 교장을 잠깐 지낸 유치환 선생 같은 분이 지역의 문인들과 어울려 찾던 곳이기도 하고, 지금은 옮겨간 경주시청의 바로 앞 동네라 젊은이들이 방을 구하거나 외지인이 이사오면 제일 먼저 들어오는 바람에 민가가 빽빽하게 밀집된 동네이기도 했다. 후배가 나를 이끈 곳은 그 많던 민가를 다 철거하고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최후의 라인에 우뚝 서 있는 오래된 건물 몇 동 중 하나였다. 집주인과 시청이 보상에 합의만 하면 언제든 철거가 될 운명인 터였다. 지금은 그 넓은 지역이 다 발굴대상지가 되어 있다. 몇몇 봉분은 복원을 시켜놓았지만, 이 거대한 지역에는 지하 스캔을 해보면 수백 기의 무덤들이 지표면 아래 밀집되어 있다고 한다. 요즘도 종종 발굴 결과를 발표하는 행사가 이곳에서는 열린다. 지금은 오가는 사람들 눈에 풀밭만 남아 있지만, 경주가 관광도시로 개발될 때 특별한 역할을 했던 쪽샘의 지역사까지 깡그리 사라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IMG_4836.JPEG 황량하고 대책이 없는 상태였지만...

약 20평이 넘는 황량한 공간이었는데, 작업실로 꾸몄다지만 코로나 기간 내내 방치되어 먼지가 텁텁했던 곳에 앉아서 차를 마셨나 그랬을 것이다. 건물은 오래되었고, 내부는 춥거나 덥거나 할 것이었고, 군데군데 물이 새는지 세숫대야를 받쳐둔 곳이 서너 곳 보였다. 외부에 만들다만 철계단을 조심조심 올라가 옥상에 가보았는데, 아니, 거기서 쪽샘고분군이 탁 트이게 보이는 것이었다. 멀리는 경주 남산까지 눈에 시원하게 들어오는 조망이었다. 경주에는 대형 고분이 많지만, 이런 정도의 각도로 한눈에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는 위치는 단연코 없다. 그 뷰는 불가항력적 매력이 있었다. 다른 모든 조건은 너무 열악했지만, 경주를 그간 한 번도 보지 못한 시야로 볼 수 있게 해 준 이 공간은 대가를 지불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쪽샘살롱’을 해보겠다고 생각한 유일무이(one & only)한 이유였다.


IMG_9975.JPEG 경주 시내에서 이런 뷰를 볼 수 있는 다른 곳은 없다.


충동적이었지만, 후회는 없어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 동하자, 다른 모든 불리한 조건은 부차적인 문제가 되었다. 당시 나는 코로나 정국을 지나며 예전부터 알아왔던 전직 기자가 꾸린 '재열투어'란 여행모임에 참여해서 꽤 열심히 국내여행을 다니고 있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풍성한 여행지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특히나 각지에 뿌리내린 지역의 은둔고수들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다.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이 한 차원 업그레이드 되는 즐거움이 엄청나게 컸다. 여행모임에서는 내가 경주에서 왔다고 하니, 종종 경주의 숙소나 맛집을 추천해 달라거나, 좋은 코스를 안내해 달라거나, 아예 그룹으로 경주를 찾아오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여행을 다니며 눈에 담아두었던 여러 지역의 멋진 아지트 하나가 경주에 열려도 좋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장사란 것을 아예 해본 적이 없었던 내가 제대로 상권이며, 유동인구며, 메뉴 선정이며, 사업 가능성을 꼼꼼히 따져보았을 리가 없다. 나는 내 감을 믿었고, 주변 지인들도 들썩들썩하며 한몫씩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맨땅에 헤딩하는 자영업자의 삶이 시작되었다. 아마 전국에 이런 식으로 식으로 시작된 중년 아저씨들의 로망 실현 공간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다들 엄청난 포부와 구상을 갖고 덤벼들었을 터인데, 나도 그중에 하나를 보태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몰랐고, 무엇이 없거나 모자란 줄을 몰랐다. 다만 나는 이런 프로젝트를 믿어준 친구와 지인들, 그리고 하면 된다는 무모함으로 잔뜩 충전된 의욕만으로 ‘쪽샘살롱’을 개장하기로 했다. 지인들의 십시일반 펀딩과 내게 있는 돈을 다 끌어모아 인테리어 공사부터 들어갔다. 온갖 낯선 업무를 다 헤쳐가며 몇 달을 준비해서 오픈한 것이 2022년 10월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2년 반, 준비기간을 다 합하면 3년의 시간을 나는 쪽샘살롱에 쏟아 넣었다. 그리고 장렬히 전사... 지난 2025년 6월로 폐업신고까지 마치고 지금 저 공간은 원래 모습대로 돌아가 있다. 누구도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공간이 어떻게 변했다가 다시 이렇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낡은 건물로 돌아와 있는지 알 길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라져 버린 시간 동안 쪽샘살롱은 온갖 상상과 실험의 장이 되었고, 놀랄만큼 다른 모습을 연출하는 공간이었다. 나는 공간을 이렇게도 꾸며보고, 저렇게도 운영해 보면서 파란만장한 내면세계의 격동을 겪었고, 그러면서도 여러 사람들과 연결되어서 내가 알지 못하던 경주의 여러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 내 곁에서 함께 무언가를 도모하는 사람들은 다 쪽샘살롱에서 얻은 인연들이다. 공간을 만들고, 유지하고, 내용을 채워가는데에는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필요하다. 고마운 나의 지인들은 기꺼이 손발을 뻗어 도움을 주었고, 쪽샘살롱에 찾아와 즐겁고 의미있는 시간들을 만들어 주었다. 그들의 흔적은 어떤 방식으로든 기억되어야 한다. 하여, 이제 주변 정리도 좀 되었고, 그 시간 동안 내가 거쳐온 생각과 벌였던 일도 기록으로 남겨보고자 글을 써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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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을 단 것은 오픈하고 일 년이 지난 후였다. 사진의 인물은 쪽샘살롱의 투머치 고급인력 셰프 박 선생과 열정적 후원자 하 선생.


나는 경주에서 와인바를 열어 고군분투해 온 이야기를 재료 삼아 몇 편의 글을 써보려고 한다. 장사 성공담이나 노하우를 말할 생각은 없다. 나는 그런 이야기에는 자격 미달이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수업료를 비싸게 물었는데, 결론적으로 나는 장사에는 모자란 것이 많은 사람임을 확인했을 뿐이다. 비슷한 관심사를 갖고 있는 분들이라면 승산 없이 일을 벌이지 않도록 교훈을 삼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과정을 통해 경주의 수면 위와 아래의 삶을 경험할 수 있었다. 경주는 역사문화도시로는 위상이 높은 국제적 도시이지만, 거기에 사는 시민들의 생활 조건은 전형적인 대한민국 지방 소도시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 둘 사이의 갭이 경주에 대한 기대치가 현실에서 번번이 어긋나는 이유일 것이다. 그 반짝이는 가능성과 아찔한 실망의 사이. 나는 그런 이야기를 간간이 해 보려고 한다.


나는 이 연재를 통해 술 이야기며, 경주 이야기를 주절 주절 할 것이다. 하고 많은 상품 중에 와인과 위스키를 골랐고, 그 일을 2년 반동안 했으니 그 와중에 보고 느낀 바가 없지 않다. 나는 30대까지도 거의 술을 마시지 않았던 사람이다. 교회 다닌다는 이유가 제일 컸겠지만, 술주정하며 사람이 흐트러지는 것을 매우 싫어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랬던 내가 와인바라니, 위스키바 라니… 세상 일 모르는 것이다. 여하튼 나는 중년이 넘어가면서 술을 조금씩 마시게 되었고, 내 생각과는 달리 의외로 술을 잘 마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젊은 시절에 술을 안 마신 덕택에 간이 쌩쌩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고, 부전자전의 체질 덕분도 있었지 싶다. 술에 대해, 술 마시는 것에 대해, 그 전후좌우를 둘러싼 삶과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쪽샘살롱은 2025년 6월에 완전히 문을 닫았다. 나도 경주에서 하는 다른 영역의 일들이 늘어나고 있었고, 선택과 집중의 원리에 따라 일의 우선순위를 정돈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그렇게 마무리하기로 했다. 뒤처리를 하는 데에도 두어 달이 걸렸다. 끝을 보고 나니 오히려 홀가분하게 그간의 발자취를 정리해 볼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 그러면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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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