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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취향 개발 속성 코스를 알려드립니다?!"

[쪽샘살롱 05] 와인 시음회

by Harry Yang

와인을 배우고 싶어요

쪽샘살롱은 와인바였다. 이것저것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지만 그래도 기본은 와인을 마실 수 있는 공간이 메인 컨셉이었다. '와인(wine)'에 동반되는 다양한 사회적 함의와 연관이 있으므로, 그중에 어떤 것을 전면적으로 내세울 것인가는 또 다른 선택의 문제이다. 사업적 감각이 있는 이들이라면 이 단계에서부터 기획과 방향을 잡고, 거기에 맞추어 인테리어며 온갖 공간 연출을 했을 텐데, 이 초보 자영업자는 일단 시작해 놓고 길을 찾겠다며 좌충우돌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와인바'를 시작하는 것이니, 최대한 친절하게 대중적 눈높이에 맞추어 와인과 친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제공하는 것이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있던 중요한 과제였다.


'와인바'는 지역 사회에서 일정한 진입 장벽이 되기도 했지만, 잠재적 수요를 끌어내기도 했다. 다녀간 이들 중에는 "와인을 배워보고 싶어요"라는 말을 하는 이들이 적잖이 있었다. 와인은 일단 종류가 많아서 선택에서부터 애로가 있고, 그들만의 리그에서 공유하는 특별한 지식도 있어 보였고, 대체로 사회적으로 상층부(를 지향하는 이들)에서 향유하는 문화인 듯 여겨졌다. 그래서 진입을 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와인 마실 때 필요한 최소한의 매너를 익히고 싶어 했고, 관련해서 등장하는 용어들을 알아먹고, 한두 마디 아는 척은 할 수 있는 정도를 습득하고 싶어 하는 수요가 있었다.


이런 그룹에 속할 사람들이 겁먹지 않고 와인에 친숙해지도록 제일 먼저 시도한 것은 '와인 시음회'였다. 초기에는 30분 이내의 강의와 7-9종 정도의 와인을 맛볼 수 있도록 기획을 했다. 화이트 와인과 로제 와인을 3-4종 이내로 제공하고, 레드 와인을 4-5종 준비했다. 화이트는 샤르도네, 소비뇽 블랑, 그리고 가게에 들여놓았던 독일 와인으로 리슬링 혹은 게부르츠트라미너를 내놓았고, 한동안 주력으로 추천했던 로제 와인 한 종 정도를 곁들였다. 레드 와인으로 가면 품종에 따른 차이를 느낄 수 있도록 말벡, 카베르네 소비뇽, 피노 누아 정도를 하나씩 하고, 이태리 와인 중 키안티 클라시코나 보급형 슈퍼 투스칸 와인을 내놓았다. 블렌딩 와인도 먹기 좋은 것이 있으면 소개를 했다. 비용은 3-5만 원 정도를 받았으니, 매우 보급형 '와인 시음회'였던 셈이다.

참가자들의 만족도는 높았다. 품종에 따른 맛의 차이를 혀끝에서 느낄 수가 있었고, 하나씩 시음하면서 자연스레 품종과 지역과 와이너리 이야기들도 접할 수 있었으니 풍성한 시간이었다. 각자 느낀 맛과 향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유명한 전문가들이 매긴 별점과 비교도 해보았다. 조금씩만 맛을 봐도 7-9종이면 꽤 양이 된다. 시음회를 마치면 꽤나 알딸딸한 상황이 되어 즐거운 마무리를 할 수 있게 된다. 허나 시음회는 준비하는 비용이 더 들었기에 오래 지속하지는 못했다. 참가비를 높이면 되지 않느냐 하겠지만, 일정한 가격 저항이 없지 않았다. 해서 이후에는 시음회보다는 지인들 중심으로 파티를 종종 열었다. 돈을 벌기보다는 편하게 와인을 마시는 분위기를 익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일정하게 저변이 확보되지 않으면 길게 가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몇몇 참가자들은 와인에 대한 지식을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비교적 저렴한 참가비로 다양한 와인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욕구가 있었다. 이런 이들을 충분히 가까이 쪽샘살롱의 멤버십 혹은 아군으로 끌어들였어야 했는데, 그까지 나아가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정보는 도처에 널려있다

와인에 대한 국내 관심사의 증가는 놀라울 정도이다. 코로나 시기부터 몇 년간 '내추럴 와인' 붐이 일었다. 와인 생산에서 최대한 인공적 처리를 배제하거나, 포도의 재배에서부터 유기농업을 실시한 와인에 대한 관심은 국제적으로 드높았는데, 한국에서도 몇 년 동안 크게 붐을 일으켰다. 나도 쪽샘살롱을 시작할 때 '내추럴 와인'을 다룰 것인지 고민을 잠시 했는데, 자신이 없었다. '내추럴 와인'은 '전통 와인'과 달리 생산 과정에서 인위적 개입을 의도적으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품질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고, 그런 상황 자체가 매력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허나, 와인을 처음 입문하는 이들에게는 이런 부분이 선택을 더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고,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괜찮은 '내추럴 와인'들은 가격대가 높게 형성이 되어 있어서 접근성에 제약이 있었다. 나는 '전통 와인'도 아직 충분히 대중화되지는 않은 상태라, 시간이 지나도 전통 와인에 대한 저변 확장이 더 일어날 것이라 생각했기에 굳이 까다로운 '내추럴 와인'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 과연 지난 몇 년 사이에 '내추럴 와인' 붐은 크게 꺼졌고, 재고 처리에 고심하고 있다는 업계 이야기도 접하게 된다.


나도 와인 입문자에 불과한 상황에서 기본적인 지식에 대한 갈증이 늘 있었다. 처음 와인에 관심을 갖게 해 준 통로는,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영향력을 끼쳤을 것 같은데,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이었다. 처음에는 과장과 허풍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인을 마신 주인공의 눈앞으로 꽃이 만발하고, 하늘이 열리고, 대자연이 춤을 추는, 어마어마한 장면들이 줄을 잇는데, '아무리 만화라도 그렇지. 뻥이 이게 뭔가?' 싶었다. 그런데, 몇 해 전 나는 우연히 와인 전문가인 소믈리에들의 모임에 한 번 초대받아 간 적이 있었다. 거기서 그들이 각자 들고 온 와인을 블라인드로 마시고, 지역, 와이너리, 빈티지를 맞추는 게임을 하는 것을 나는 직접 경험한 적이 있다. 7-8명 모였는데, 그중에 2명은 정말 귀신같이 와인을 맞추곤 했다. 그런데 거기서 나는 꽤 괜찮은 와인을 두어 종 맛보게 되었다. 와인 쌩 초보의 입에도 그 와인은 입 안에서 놀라운 향과 맛을 터뜨렸다. 그냥 직관적으로 '이거는 좋은 와인이구나'를 알 수 있었다. 모든 식음료의 미식 체험은 지식과 정보의 유무와 상관없이 감각적으로 확인이 되는 차원이 있다. 아무리 머리로 납득이 안되고, 감정적으로 무심하더라도, 일단 맛을 보는 순간... 감각이 반응해 버리면 도리가 없다. 인간의 감각은 한번 체험하면 그 기준이 다시 낮아지지는 않는다. 그 경험을 하고 나서 나는 <신의 물방울>이란 만화가 묘사하는 그 과장된 경험치가 세상 어딘가에는 존재할지도 모르겠다고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뒤에 다시 그 만화를 들춰보았는데, 거기 등장하는 와인들이 하나 같이 엄청난 평가를 받고 있는 최고급 와인임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언젠가는 나도 그런 와인을 마시고, 그런 경험을 풀어놓을 날이 오지 않을까 꿈꾸어 본다.

와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요즘은 유튜브 채널을 활용하면 좋다. 내게 도움이 많이 되었던 곳은 '와인 킹'이란 채널인데, 특히 와인 전문가인 그가 프랑스나 이탈리아를 방문해서 현지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어떻게 주문해서 즐기는지를 자연스럽게 볼 수 있었던 영상과 그가 자신의 스승과 함께 다양한 와인을 테이스팅 하는 영상이 좋았다. 와인 테이스팅이 실제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좋은 와인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가 어떤 스펙트럼으로 나오는지를 잘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와인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잘 담고 있는 책을 한두 권 구비해 두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된다. 관련 정보를 바로 찾아볼 수 있어서 좋고, 뒤적거리다 보면 새로운 정보를 발견할 수 있어서 그것도 좋다. 그리고, 와인에 관심을 갖게 된 이들 중 '와인 편력기'를 동영상이나 책으로 낸 경우가 꽤 될 텐데, 나는 임승수 작가가 쓴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슬기로운 방구석 와인 생활>(수오서재, 2021) 같은 책이 읽기도 쉽고, 내용도 몹시 마음에 들었다. 자신만의 와인 즐기는 법을 갖게 된다면 삶이 매우 풍성하리라 생각한다. 그것이 굳이 와인이 아니어도,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고 이를 발전시켜 나아가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즐거운 경험이다.


동호회가 찾아왔다.

와인을 '고독한 미식가'처럼 즐길 수도 있지만, 처음에는 아무래도 같이 즐겁게 마시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쪽샘살롱에서 직접 동호회 같은 모임을 만들어 볼까 생각도 했지만, 아무래도 일을 너무 벌이게 될 것 같아 주저함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지역의 '와인 동호회'가 찾아왔다. 30대 초중반 직장인들이 주축이 되는 모임이었는데, 분기에 한 번 정도 꼴로 쪽샘살롱에 와주었다. 전문가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관심자들이 만든 것인데 오히려 서로 가르치는 관계가 아니라 비슷한 또래이자 경주 생활을 하는 젊은 세대들이라 일종의 사교적 역할을 잘 이어나간 듯하다. 나중에 보니 여기서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경우까지 볼 수 있어서 매우 의미 있게 생각한다. 이들은 쪽샘살롱이 공식적으로 영업을 마치는 날 예약해서 동호회 모임을 갖고, 내게 '감사패'를 증정하기까지 했다. 마지막에 정말 고마운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시음회'가 약간은 학구적 분위기가 되기 쉽다면, '동호회'는 훨씬 와인을 즐기는 분위기가 된다. 안주와 음식을 미리 짜서 시간 진행에 맞게 와인을 내고, 와인에 대한 설명을 곁들여 주었다. 왁자하게 즐거운 대화 가운데에도 잠시 와인 소개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때로는 원하는 외부 음식을 주문해 와서 먹기도 했는데, 나는 매번 3-4종 정도를 추천해서 차례대로 마시도록 준비해 주었다. 동호회 멤버들 중 일부는 나중에 혼자 오거나 친구와 같이 와서 동호회 모임 때 눈여겨보았던 와인을 주문해서 맛보기도 했다. 쪽샘살롱의 전 기간 중 와인을 가장 잘 즐긴 이들이 아닐까 싶다.


나는 앞으로도 적절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몇 종류의 와인을 구해다가 음식과 맞추어서 즐겁게 먹고 마실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보고 싶다. 가까운 친구나 지인들과도 이런 자리는 즐거운 것이고, 가끔은 잘 모르는 이들도 이런 자리를 통해 서로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지기도 하는 것이니, 삶의 호사를 이렇게 누릴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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