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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Nov 21. 2016

피라미드의 밑변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30년 넘게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사실임에도 한국 땅을 밟고 살며, 한국 정부에 세금을 내고, 한국 사람들과 지지고 볶고 살던 게 고작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한국을 떠나 살아 보니 더 새삼스럽다.     


나는 진보적인 사람이다. 국어사전에 ‘진보’라는 단어는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첫째, 정도나 수준이 나아지거나 높아짐. 둘째,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함. 그럼 ‘보수’는 뭘까. 첫째, 보전하여 지킴. 둘째,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며 유지하려 함. 나는 한국에서 자칭 ‘보수’라 하는 사람들을 납득하기 어렵다. 우리가 옹호하여 유지해야 하는 전통적인 가치는 무엇일까. 그것이 옛 선조들의 어진 정치에 대한 가르침이나 지혜라면 나 또한 백번 천 번 그 보수란 것을 응원할 생각이 있지만, 과연 지금 한국에서 보수 세력이라 자칭하는 자들이 목숨 걸고 지키고자 하는 것이 진정 나라와 국민을 걱정하는 가치인지, 아니면 자신이 지금 손에 들고 발밑에 깔고 있는 부귀와 영화인지 묻고 싶다. 

    

내가 처음 광장에 나간 건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 집회였다. 그때 나는 대학생이었고, 태어나 처음으로 내게 주어진 투표권을 행사해 대통령을 뽑았다. 나의 첫 대통령. 그는 고졸에 백도 돈도 없었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런 사람을 내가 대통령으로 뽑았다는 사실 자체가 자랑스러웠다. 나에겐 아직도 선명하게 남은 그분의 이미지가 하나 있다. 바로 현직 대통령이었던 그가 검사들과 담판 토론을 벌인 거다. 노무현은 사람들에게 만만한 대통령이었다. 검사들이 몇 줄로 진을 치고 앉아 노무현을 노려 보며 ‘너 따위가, 어찌 감찰에, 감히!’라는 투로 질문을 던졌던 기억이 난다. 나의 대통령은 그 질문을 모두 끝까지 듣고, 반박할 것은 반박하고 싸울 것은 싸웠다. 내 생애 대통령이 그렇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 나온 걸 TV로 본 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만만한 대통령에게 개처럼 대들던 검사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 인간은 언어로 사유한다. 노무현이 쓰는 언어는 허투루 나온 말들이 아니었다. 그 당시 어르신들은 노무현이 너무 말을 가볍게 한다고 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될 것을 괜히 입방정을 떨어 불을 지핀다고도 했다. 그래서 지금 저렇게 입을 꼭 다물고 있는 청와대의 그 여자는 마음에 드는가.  

   

그런 대통령이었다. 나의 소중한 첫 번째 대통령.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국민이, 국가가 무엇인지 조목조목 설명할 수 있는 대통령. 자신의 철학을, 정치를 하는 이유를, 대통령 자리의 가치를 분명히 알고 있던 대통령. 물론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노동자가 지옥에서 천당으로 직행 열차를 탄 것도 아니요, 신자유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내가 기억하는 건 과정이다. 어떠한 정책을 결정하는 데에 여론을 수렴하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 이 정책을 시뮬레이션해보면 누가 피를 흘리고, 누가 금은보화를 두르며, 누가 결국 웃게 되는가. 그 결과 예측 정보를 숨기지 않고, 아닌 척하지 않고, 그렇다고 국민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속이지도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이게 정말 거지 같은 정책이지만 지금 이 상황에선 안 하는 것보다 낫다, 이게 최선이다’라고 최소한 이해는 구하려 했던 대통령, 그런 사람이 내 소중한 첫 번째 대통령이었다.   

   

그는 너무 만만했다. 사람 냄새가 났다. 정치판에선 그게 약점이었다. 내가 뽑은 대통령을 끌어내리려는 세력이 더럽고 치졸한 수를 썼다. 나는 생애 처음으로 나의 대통령이 그들과 똑같이 더럽고 치졸한 수를 써서라도 이기길 바랐다. 그런데 그는 그러질 않았다. 만약 그때 나의 대통령이 그랬다면, 그들과 마찬가지로 옹졸하게 빠져나가려 했다면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그를 그리지 않았으리라. 탄핵 소추 또한 헌법에 의한 것이며 국가의 수장으로서 그것을 받들어야 한다고 여겼으리라. 그것도 법을 공부한 그가, 누구보다 그 가치를 더 잘 알았으리라.     


정권이 바뀌고 나는 또 광장에 나갔다. 이번엔 대통령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위함이었다. 광우병 소고기 수입 사태였다. 유통과정에서 판매 식당에서 어떻게든 속일 거고, 어떻게든 나는 그 소고기를 먹게 되리란 걸 알았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 의사를 결정하는 과정이 잘못됐다. 국민은 철저히 외면당했고 무시당했다. 하지만 이명박은 듣지 않았다. 그는 사람 냄새가 아닌, 돈 냄새가 풍기는 사람이었다. 그 정권이 심판받지 않기 위해 내세운 다음 정권에도 나는 광장에 나갔다. 한 번은 지하철 민영화 반대였다. 내가 매일 수도권에서 강남까지 출퇴근하며 타는 전철을 탐욕과 무지, 몰이해로 철철 넘치는 그들의 손에 의해 장난감처럼 갖고 놀려지는 게 싫었다. 왜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의무만을 요구받고, 권리는 내세울 수 없나, 그 답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 광장에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나는 아직도 그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시꺼먼 바다에 뒤집힌 배가 서서히 꺼져 가는 순간, 그 화면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내가 아직도 죄스럽다. 아니, 대한민국 전 국민이 그 죄책감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아마, 사람이라면 모두 그럴 것이다. 그 장면은 나에게, 사람들에게,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트라우마가 됐다. 다이빙을 하는 나로서는 가끔씩 바닷속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 ‘아, 그 아이들이 이곳 어디쯤 있겠구나, 이런 곳에서 무섭게 차갑게 외롭게 죽었겠구나.’ 그 죄를 씻으려고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었다. 도대체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나, 먹고살기도 바쁘고, 잡지사 마감도 해야 하고, 인터뷰도 해야 하고, 화보고 찍어야 하는데, 대체, 대체 왜 내가 여기 이러고 있어야 하나. 청와대의 자리를 꿰찬 대통령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만 꿈벅대고 있고, 그 자리를 보필한다는 인간들은 헛소리나 지껄이고 있었다. 이 미친 세상에서 나는 아직 괜찮다는 걸, 그리고 나처럼 잘못된 걸 잘못됐다 판단하고 말하는 사람이 아직은 꽤 있다는 걸, 아직 세상은 그래도 살만 하다는 걸, 희망이 있다는 걸, 결국 나는 외롭지 않다는 걸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안산 단원고 분향소에 찾아가 아이들 영정 사진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그리고 내가 그들 나이에 ‘이 거지 같은 세상, 다 엎어져야 해!’ 하며 서태지의 ‘교실 이데아’를 따라 부르고 나는 그 숨 막히는 입시 지옥을 거쳤더라도 너희 세대엔 달라질 거라 순진하게 믿었노라 고백했다. 아비규환 같은 분향소를 다녀오면서 나는 정말, 이 나라를, 그리고 이 나라를 만든 사람들을 뼛속까지 증오했다.    

 

하지만 어쩌면 나도 한 통속이었을지 모른다. 정치꾼들이 삼성의 돈으로 정치꾼 행세를 하고, 그 행세로 얻은 특혜를 다시 삼성에게 준 것처럼 나 또한 광고주의 돈으로 한동안 잘 놀러 다녔고 폼 잡고 다녔던 적이 있다. 잡지사 에디터 생활을 하면서 광고주가 제공하는 화려하고 좋은 것들을 ‘기사를 쓴다’는 명목으로 합리화시키며 내가 잘난 줄 착각한 적도 있다. 그 달콤한 착각에 중독되면 영원히 나는 인간쓰레기가 될 것 같아 결국 유난히 혼자서 그걸 견디지 못하고 괴로워하다 사표를 내긴 했지만. 돈이란 건 참 좋다. 그래, 부정할 수 없지. 하지만 그 돈으로 화려해진 내 하루와 일상이 퇴근길에 듣는 진심 어린, 하지만 유명하진 않은 무명 뮤지션의 노래보다 값진가에 대한, 하루에 한 번은 자신에게 되묻는 그 질문에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사표를 내고 삶을 바꾸려 노력 중이다. 무언가를 받으면 무언가를 내어줘야 하는 거미줄처럼 얽힌 이 사회에서 겉으론 화려하고 우아하지만 속은 썩어있는, 공정성과 퀄리티를 내세우지만 안으로는 아마추어 천지에 눈앞에 이익만 생각하는, 권력 혹은 영향력, 그리고 명성, 돈에 가까워져는 가지만 정작 나 자신에겐 솔직하지 못하고 나 자신마저 속이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서다.      


자본주의에서 누군가 돈을 번다는 건 누군가가 그만큼 돈을 쓴다는 거다. 그리고 부패한 경제 시스템일수록 그 돈은 돌고 도는 게 아니라 자꾸 어느 한 곳에 머물게 된다. 그것도 아주 많이. 모두 잘 쓰고, 잘 버는 세상은 그래서 불가능하다. 그건 한 인간이, 한 회사가 잘나서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정유라 같은 아이를 본 게 한두 번인가. 부모가 돈 있고 백 있다고 학교에서 서로 치고 박던 아이들 중 하나가 전학을 가고 하나는 남은 적이 한두 번인가. 네 대학 등록금 때문에 허리가 끊어지고 너 때문에 내 인생을 전부 바쳤는데, 나도 먹기 사는데 허리가 끊어질 판인데, 너는 그 대학 나와 언제까지 빌빌 거릴 거냐, 이젠 네가 나를 먹여 살려야지, 하는 부모의 푸념을 들은 게 한두 번인가. 뭔가는 잘못되었는데 대체 어디에 화를 내야 하는지, 어디부터 어떻게 잘못된 건지 알 수 없어 고개 젓고 친구들과 “소주나 마시자” 하는 게 어디 한두 번인가. 나는,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내가 지금 대통령 자리를 꿰찬 저 여자를 증오하는 이유 중 가장 소름 끼치는 건 피라미드의 꼭짓점에서 밑변을 이루는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할퀴고 증오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통합’이라는 단어의 정의는 내릴 수 있는지조차 의심스럽지만 자신이 그리 외치던 그 단어는 ‘분열’이고 ‘증오’이고 ‘폭력’의 의미를 가졌다. 서로를 의심하고 미워하고 싸우고, 네가 덜 벌면 나는 더 벌고, 네가 불행하면 나는 행복해진다는 믿음을 사람들에게 심었다. 피라미드의 꼭짓점이 마음껏 주무른 시스템의 부산물로 밑변의 사람들인 엄마와 딸은 돈 때문에 싸운다. 꼭짓점이 조정하는 대로 서로를 비난하고 할퀴는 밑변의 사람들. 누군가 거대한 성에 서서 무덤덤한 눈빛으로, 성난 백성들이 자신들이 성이 난 이유도, 진정 책임을 물어야 할 사람이 누군지도 모른 채 당장 오늘의 밥상이 절실해 서로를 죽이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그 최면에서 벗어나고자 어떻게든 발버둥 치려 광장에 나갔다. 춥고, 귀찮고, 자괴감 들고, 바쁘고, 멀어도 내가 그렇지 않다 생각하는 이슈가 있을 때마다 광장에 나가려 애를 썼다. 생각보다 그 광장은 어른들이 이야기하듯 피와 폭력으로 물들지 않았다. 이때다, 대목이다 싶어 김밥을 이만큼 싸가지고 나와 파는 아주머니도, 핫팩과 촛불을 나눠주는 자원 봉사자들도, 이게 뭔가 싶어 구경 나온 사람들도, 그냥 그날 일진이 안 좋아 어디 화풀이할 때가 필요해 들른 사람들도, 그렇게 삼각형 밑변의 사람들이 광장에 나와 페이스북 대신 진짜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눈빛을 살피는 것 자체만으로, 나는 꽤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타국에 있는 몸이라 지금 광장에 나갈 처지가 못 되지만 멀리서도 진심으로 응원한다. 이번에도 사람들이 제풀에 지쳐 세월호 때처럼 이제 지겨우니, 그만 좀 하지, 그런 거 밝히라고 국회, 검찰, 정부가 있는 건데 사람들이 이런다고 뭐가 되냐, 하면 끝장이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이제 그만 좀 하자, 하면 끝장이다. 그래서 그 시간이 지나 우리, 좀 먹고살만해졌나. 지금까지 무엇이 밝혀지고 무엇이 해결되었나. 해체된 해경은 이름만 바꿔 배를 옮겨 탔고, 갈아 마셔도 모자란 관련자들은 줄줄이 승진했다. 그래, 이제야 밝혀진 건 있다. 그리고 부정하던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인 책임자는 박근혜, 당신이라는 것. 멍청하고 무능한 것도 모자라 자신이 아둔한지도 모른 채 어여쁜 성 안에 갇힌 공주라 생각하는 인간. 미친 자다. 정신병이다. 제정신이 아닌 자가 저 자리에 앉았다. 나는 세상 어떤 것에도 상관없이 행복하고 강해지고 싶어 이곳으로 왔다. 그런데 그녀는 여기까지 좇아와 나를 괴롭힌다. 내 여권의 국적이 바뀐다 해도 그녀는 나를 괴롭히겠지. ‘국민 행복 보장’이라는 그녀가 내뱉은 말이 생각나 소름 끼친다. 나는 그녀에게 투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정신이 아닌 통치자를 끌어내릴 권리는 있다. 제발 피라미드의 밑변을 지탱하고 있는 사람들끼리 다투지 않기를. 밑변을 지탱하고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색출해 그 밑변의 또 밑변으로, 벼랑 끝으로 내몰지 않기를. 부디, 우리 모두 지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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