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하나 Jun 04. 2020

“이 사진에서 잘못된 점을 고르시오”

당신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이 사진이 당신에겐 어떻게 보이는가? 자연스러운가, 불편한가, 아니면 뭔가 어색한 느낌인가? 물론 어느 쪽도 정답은 아니다. 정답일 수도 없다. 그저 당신이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문화에 노출되고 영향 받아 왔는지 자신도 모르게 피부 아래 스며든 사고방식 같은 거니까.


영화 <그린 북>의 포스터다. 몇 년 전, 영화에 대한 아무 정보 없이 비행기 안에서 시간 때울 요량으로 무심코 플레이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 마허샬라 알리가 나오기도 했고. 그러다 결국 옆 사람들이 쳐다볼 정도로 꺼이꺼이 울며 마무리했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엔 이 포스터가 나에겐 아무렇지 않았다. 그저 ‘색감 참 예쁘다’ 하고 생각했다. 영화를 마치고 다시 포스터를 봤다. 다시 보였다. 흑인이 뒷좌석에 앉고, 백인이 운전석에 앉았다. 이게 이상할 일인가? 그렇다. 이상한 일이기에 이 장면이 포스터가 된 거다. 보통 백인이 뒷좌석에, 흑인이 앞좌석에 앉은 장면을 그렇지 않은 상황보다 몇 배는 더 많이 보고 살아온 우리들인지라 이 사진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그렇다고 이 사진이 잘못되었다, 백인을 뒷좌석에 두고 흑인이 앞좌석으로 가야한다 말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면 분명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비난이 날아올 테고, 우리는 모두 그 정도의 적당한 스마트함은 갖추고 있는 현대인들이니. SNS 전문가인 21세기 인간은 적당히 스스로를 브랜딩하는 능력을 자연스럽게 습득해왔으니까. 


사실 나 역시 한국에서 태어나 교육 받고, 한국인들에 둘러싸여 살아왔기 때문에 미국, 유럽의 문화나 철학, 라이프스타일에 환상을 갖고 있었던 건 사실이다. 미드나 영화에서 늘 묘사되는 ‘미국이 세계 정의를 바로 잡는다’ 같은 메시지나 <섹스 앤드 시티>의 캐리의 싱글 여성으로서의 쿨함, 강대국으로서 어깨를 딱 펴고 다니는 국민성 등등. 이건 사실 모두 내가 어릴 때부터 자라며 교육 받고 세뇌 받은 미국의 이미지였다. <기생충>에 나오는 인물들이 상류층 신분 세탁을 위해 영어 이름을 쓰고, 미국 대학 이름을 들먹이듯 2020년 지금도 한국에선 ‘미제’가 가진 프리미엄은 대단하다. 


그렇게 '아메리칸 판타지'에만 갇혀 살다 실제로 미국인 친구들을 직접 대면하고 이야기나누기 시작한 건 한국을 떠나 꼬따오에서 다이빙 강사 생활하면서부터다. 그 중 하나는 한국에서 영어 선생을 했다면서, 나만 보면 어쭙잖은 한국어로 “오빠, 하지망~” 하고 한국 여자들의 말투를 흉내 내며 팔장 끼고 애교부리는 포즈를 지어보이곤 했다. 처음엔 예의상 몇 번 웃으며 받아 넘겼는데, 나중엔 수위가 점점 높아지기에 “Fuck off!”하고 무서운 눈빛을 쏘아줬다. 그 친구는 분명 자신이 한국 생활에서 누렸던 미국인으로서의 파워를 과시하고 있었다. 그게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건지 눈치 챌 정도로 똑똑한 친구도 아니었다. 자기가 하는 말이나 행위나 태도가 대체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지,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떠드는 말이었다. 그래서 더 안타깝고 화가 났다. 이태원에서 홍대에서, 미국인에게 온갖 애교와 미소로 들러붙는 한국 여자들이 없다고 부정하진 않겠다. 하지만 이 자식은 나를 그런 여자들의 카테고리에 집어넣고, 한국인인 내 앞에서 미국인인 자신이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권한을 가졌다는 것 마냥 생각 없이 떠들었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하나하나 조목조목 설명했다. 한국에서 ‘미국에서 온 영어하는 백인’이 얼마나 환대 받는 지 잘 알고 있지만, 그게 너의 특권이라는 뜻이 아니며 네가 한국에서 누린 그 ‘미국 백인’으로서의 시간을 이런 식으로 한국도 아닌 태국에서 만난 한국인에게 농담으로 써먹을 화제는 아닌 걸 똑바로 알아두라고. 바라건대 그 친구가 앞으로 또 다른 한국인을 만나면 그러지 않길. 한국에서 복무했다는 미군 출신 친구들도 대부분 비슷했다. 그리고 그들이 한국에서 겪은 문화를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물론 나도 그 중 하나다) 앞에서 희한한 문화처럼 탈바꿈해 떠벌리는 와중엔 분명 그들의 태도에 ‘한국보다 우월한 미국’이라는 의식이 깔려있었다. 


미국에서 흑인 혐오 범죄 발생률에서 선두를 차지하는 애틀랜타 출신 친구와도 꽤 여러 번 논쟁을 벌였다. 아직도 그의 어머니가 ‘인내와 자비를 베풀어’ 어린 흑인 친구들을 돕곤 했다고 자랑하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의 가까운 친구 중엔 흑인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자신을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쌍한 흑인을 도운 자선가쯤으로 생각한다. 그의 전반적인 말이나 행동, 태도는 언제나 오만했다. 다른 문화를 배우기 위해 여행을 다닌다면서 언제나 미국의 문화를 우월하다 생각했다. 그와 미국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나는 항상 물었다. 대체 미국의 그 밑도 끝도 없는 ‘글로벌 리더’ ‘세계 경찰’ 헤게모니는 어디서 온 거냐고, 니들 역시 원주민들로부터 빼앗은 땅에서 흑인을 노예로 부리며 쌓은 부를 가지고 떵떵거리는 배부른 ‘이민자’ 아니냐고. 그런데 누가 누굴 탄압하고 차별하고 폭력을 행사 하냐고. 대체 총은 왜 가지고 다니며, 땅도 그리 넓은 나라에서 백인 아닌 다른 사람들은 왜 그렇게 괴롭히는 거냐고. 그리고 대체 왜 그렇게 한국을 컨트롤 못해 안달이냐고. 대체 왜 그리 미국인들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대뜸 ‘남이냐, 북이냐’를 묻냐고, 잘난 니들 미국 때문에 우리나라가 두 쪽으로 갈린 건데.’ 이렇게 항상 쏘아대는 터에 물론 그 친구는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어쩌면 속으로 ‘미친 미국 혐오 한국인 여자’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 친구 역시 미국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자라며 미국 중심의 사고방식이 체화되었으니 내가 불편하다 느끼는 모든 게 반대로 그에겐 자연스러운 것일 테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나는 웃으며 이렇게 대화를 맺었다. “니들은 곧, 조만간 X 되는 날이 올 거야.”


얼마 전 오랜만에 그 친구의 메시지를 받았다. “네가 맞았어. 우리는 너무 오만하고, 남을 존중할 줄 몰라.” 코로나가 미국에서 크게 번지며 세계에서 가장 감염자가 많은 나라로 랭크되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세달 전 그는 한국에서 확진자가 많이 생길 때 이렇게 깐죽거리곤 했다. ”지금 가장 가기 위험한 나라 TOP 3 중에 한국이 있는 거 알아?” 그동안 미국에서 너무 많은 일들이 폭탄처럼 터지다 보니 이 친구도 뭔가가 잘못 되었다 느끼긴 하나. 나는 미국에서 오래 살아본 경험도 없고, 많은 미국 친구들을 만나진 못했다. 모든 미국인들이 내가 만난 몇몇과 같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이 나고 자라며 교육 받는 그 나라의 시스템이 인격의 기초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건 확실하다.


이 ‘미국’의 ‘백인’이라는 끔찍한 특권 의식은 뉴욕 공원에서 개 산책 시키다 흑인 남성이 정중히 개 목줄을 채워달라는 요구(그 공원에 야생 조류들이 많아 정해진 공원 방침)에 기겁하며 경찰에 신고하는 미국 백인 여성 Amy Cooper를 통해 생생히 들어난다. 그녀는 영상에서 휴대폰을 들고 흑인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I‘m gonna call 911 and I’m gonna tell them ‘African-American’ man threatening my life.” 그녀는 자신의 ‘백인’으로서의 권력을 이용해 미국 사회에서 어떻게 ‘흑인’을 협박할 수 있는 지 소름 끼치도록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공권력에 도움을 요청할 때 '흑인'이라는 단어를 쓰면 그 파급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소름 끼치도록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권력을 실제로 이용했다. 이는 그녀가 미국에서 백인으로 태어나 백인 가정에서, 백인 학교에서, 백인 선생님에게서, 백인 친구들에게서, 백인 직장에서, 백인 커뮤니티에서 아주 조금씩 조금씩 그녀의 뼛속까지 스며든, 엄청나게 거대하고 끔찍한 우월주의를 아무런 방해 없이 키워왔다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나는 그녀의 저 한 문장에 무너졌다. 대체 미국 사회에 저렇게 만들어진 백인 인간이 얼마나 많을까. 


그런데 여기서 나는 자기 검열에 들어간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 또한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린 북> 영화를 보고 인천 공항에 내려 지방 엄마 집으로 가던 그날 리무진 버스 안엔 지방에서 일하는 조선족 노동자들이 많았다. 터미널에 내려 캐리어를 내리는데, 운전기사는 한국어를 몰라 방황하는 몇몇 조선족 노동자들에게 호통에 가까운 수준으로 훈계 질을 하며 그들의 짐을 내동댕이쳤다. 내가 미국인 친구들을 비난했던 그 오만과 방자, 편견이 그대로 한국판으로 적용되는 현실이었다. 어렸을 때 TV 예능에 가수 이정이 나와 태국인들 흉내 내며 “싸장님, 마싸~~~지” 하던 유행어가 있었다. 그땐 그게 얼마나 끔찍한 인종차별이었는지 몰랐다. 그 당시 한국 사회 분위기는 급격하게 경제 성장을 이루며 꽤 사는 나라가 된 한국이 태국,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사회를 내려다보는 이상한 분위기가 정당화되던 때였다. 이정이 지금 TV에서, 아니 개인 SNS에서라도 그때 했던 똑같은 말과 행동을 했다면 그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다른 방식의 차별과 혐오는 한국 사회 구석구석 어디에나 언제나 존재한다. 미국인들은 차라리 전 세계에서 자기들이 짱이야, 라는 일관성이라도 있지, 한국인들은 미국, 유럽, 호주, 뉴질랜드에 최선을 다하고 동남아, 중동, 아프리카 지역엔 까칠하다. 이중적이고 위선적이다. 여전히 한국 아저씨들은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 각국으로 원정 매춘을 즐기러 간다. 그러다 생긴 아이들을 나 몰라라 해온 게 수십 년 째다. 


미국과 한국뿐일까. 지금 미국 전역을 혼란으로 빠뜨린 인종차별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인종차별은 우리가 태어나 자라고 살아온 환경, 문화, 교육 등 전반적인 시스템으로부터 기인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차별한다. 백인은 흑인을 차별하고 흑인은 아시안을 차별하고, 아시안이 흑인을 차별하기도 한다. 미국의 백인 사회에서 조차 서로를 차별한다. 영국 백인 애들끼리는 '진저'를 차별하고 괴롭히고 언제나 조롱거리로 삼는다. 미국에서조차 상류층 흑인들은 상류층 백인 사회에서 계속해서 거절 당하면서도 가난한 흑인들을 차별하고 멸시한다. 무엇보다 더 끔찍한 건 꼬리칸 사람들이 굶주림에 지쳐 서로를 잡아먹는 거다. 오늘 아침 태국 꼬따오에 살고 있는 영국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 수많은 태국 사람들이 외국인들을 ‘더러운 파랑(farang은 외국인을 일컫는 태국어다)’이라 부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중국이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로 피크를 찍었을 땐 중국인을, 이탈리아가 그럴 땐 이탈리안을, 미국이 그럴 땐 미국인을. 상대만 바뀌지 태국 사회에 만연히 퍼져있는 인종차별이 심하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 친구에게 사진 한 장을 보냈다. 성소수자를 비난하는 한국 기독교 단체의 시위였는데 한 외국인이 예수님 분장을 하고 그 앞에서 ‘I’m cool with that’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한국이 미국만큼 다양한 인종으로 이뤄진 나라였다면 우리는 달랐을 거라 생각하나? (하지만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한국은 수 만 년 간 다양한 인족 혼혈로 진화했다. 한국이 ‘단일민족’이라는 건 조크다.) 성소수자나 여성 인권, 이민자를 비롯한 약자와 소수자를 대하는 한국인의 전반적인 태도로는 절대 미국을 못 났다 비난할 수 없다.


나는 지금 코로나로 멕시코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데, 현재 미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태국에서,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다. 클릭 한번이면 지구 반대편 나라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확진자 수가 얼마인지 몇 초 만에 알 수 있지만, 그 커다란 숫자는 오히려 나의 충격 지수를 무뎌지게 만든다. 하지만 정작 내 옆집에 사는 멕시칸 여자가 코로나에 걸렸는지는 모른다. 우리 모두 인간의 지성과 기술이 하늘을 찌른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인간성은 점점 바닥으로 치닫고 있다. 페이스북과 유튜브에선 스페이스X와 NASA가 유인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실시간 영상이 플레이되고 있는 동시에 George Floyd가 경찰의 무릎에 짓눌려 질식해 죽어가는 영상 역시 무한 반복되고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실제 살인 광경을 목격하는 세상이다. 이는 나에게 트라우마다. 며칠을 숨죽여 지켜본 시꺼먼 바다, 세월호 아이들 수백의 죽음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나에겐 모든 것이 버거운 순간이다. 나는 이러한 상황들을 어떻게 소화시켜야 할지 한동안 갈피를 못 잡았다. 


나는 감히, 세상에 그 어느 누구도 인종차별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 자신한다. 나 역시 그렇다. 우리 모두 각자 ‘나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야’라고 하겠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우리는 모두 어떤 면에서 차별주의자다. 나는 사람들이 스스로 이 사실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미처 인지조차 못한 상태에서 행해지는 차별, 혐오가 분명 있다. 인종차별은 세기를 걸쳐 전 세계 곳곳에 스며들어있다. 


지금 내가 오롯이 할 수 있는 일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뿐이다. ‘좋은 사람’. 따분하고 지루하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정의하기 힘든 단어다. 스스로 교육해야 한다. 나 스스로, 알게 모르게 스며든 ‘이 정도는 농담이야, 괜찮아’ ‘다른 사람들도 많이 그러는데, 뭐’ 했던 방식도 안 된다. 실수로 했더라도 바로 멈추고 인정하고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 스스로 기준을 정해야 하고, 나이가 들어 지혜로워질수록 그 기준선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인격을 갖춘 인간이 되기를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하는 것 말고는 나는 방법을 모르겠다. 내가 2020년, 지구에서 사는 사람으로서 할 일은 내가 알게 모르게 행해온 작게, 혹은 크게 행해온 갖가지의 차별과 혐오에 기반을 둔 말과 행동, 생각을 뒤돌아보고 반성하고, 읽고, 보고, 듣고, 경험하고 배우며, 내 피부 아래 스며든 차별의 독소를 계속해서 조금씩 빼내어야 한다. 디톡스는 몸뿐 아니라 영혼에도 필요한 일이다. 


다행히 나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사회를 탓하기 보다 나부터 좋은 인격체가 되어야 한다는 걸 가족과 친구들과 사회로부터 배웠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촛불을 통해, 그 결과로 재구성된 정부를 통해, 하루하루 값지게 정직하게 살고 있는 엄마, 아빠로부터, 친구들로부터. 그리고 그런 구성원 하나하나로 채워진 사회는 자라나는새  아이들을 바로 교육할 수 있다고 믿는다. 교육이 가르치는 걸 뜻하는 게 아니다. 그저 보여주고 들려주면 되는 거다.


생은 선택의 반복이다. 그리고 그런 선택의 결과들이 모여 나란 사람의 인격을 보여준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선택의 순간에 나는 ‘선’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졌나, 그리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의지를 가졌나, 그렇지 않은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지성을 갖췄나, 그리고 올바른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지키며 이어갈 수 있는 영혼을 지녔나. 우리는 지금, 자기 검열이 필요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겨울잠 자는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