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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Mar 19. 2021

애틀랜타의 백인 남자

동양인 여자에 총을 난사하다



멕시코에 있었다. 태어나 처음 겪는 팬데믹이었다. 스페인 독감은 역사 속 이야기로만 여겼지, 21세기 글로벌 팬데믹 한복판에 파묻힐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한국을 떠나 태국 외딴섬에서 다이빙 강사로 수년을 보냈다. 눈을 뜰 때나 감을 때나 늘 바다와 정글과 바람과 달과 별이 함께였다. 매일같이 바다에 들어가면서 인간이, 우리가 이 지구를 어떻게 취급하는지 봤다. 자연 인간에게 크고 작은 경고를 해왔다. 코로나19 팬데믹 역시 그렇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인간은 끊임없이 혐오와 분노를 쏟아낸다. 인간은 자연에서 인종 불문, 스스로 우월하다 착각하는 가장 어리석고도 열등한 종이다.


팬데믹 선언 바로 직전 나는 멕시코에 입국했다. 수개월 전 계획된 여정이었고 그때는 아무도 코로나19의 19가 21로 바뀔 때까지 바이러스가 창궐할 거라 예상치 못했다. 멕시코에 입국하자마자 하늘길은 모두 막혔다. 좋든 싫든 몇 개월은 그곳에 있어야 했다. 멕시코 유카탄 반도, 수천 년 간 자연이 만든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수중 동굴 케이브 다이빙 수련에 몰두했다. 다이빙을 업으로 시작한 이후로 나는 지상보다 물속에서 시간을 더 많이 보냈다. 전 세계 여행자들이 다 모이는 태국 섬에서 웨스턴들을 대상으로 다이빙을 가르쳤다. 이전엔 한국 패션지에서 에디터로 일했다. 나름 세상 별의별 다양한 사람을 많이 만났다고 생각한다. 사람 사는 세상엔 오해도 모욕도 무관심도 존재한다. 그나마 물속에 있는 시간이 길어 좀 낫다. 한 번은 덴마크 가족이 내가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강사를 바꿔달라고 다이빙 센터에 요구했다. 다이빙 센터는 그 가족을 센터에서 내쫓았다. 태국에 놀러 온 백인이 동양인을 차별하는 인종주의자라니. 나보다 덩치도 크고 피부도 하얗고 체력도 좋은 친구들을 가르칠 땐 코스가 시작할 때마다 나를 보는 미심쩍은 눈초리를 견뎌야 한다. 그리고 다이빙 코스가 끝나면 그들은 나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러나저러나 좋을 리가 없다. 못 하면 여자라 못 하는 거고, 잘하면 여자치고 잘하는 거다. ‘동양인’과 ‘여자’ 이 두 키워드엔 백인 사회 시스템의 역사 깊은 편견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태국에서 잠깐 만났던 친구가 있다. 미국인이었고 조지아 애틀랜타 출신이었다. 한국 잡지 기자 시절부터 스트릿 문화에 관심이 많던 나와 말이 잘 통했다. 그 친구는 애틀랜타에서 꽤 유명한 스케이터였고 스노보드를 타다가 허리를 크게 다쳐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서, 조금 덜 익스트림한(?) 태국에서 다이빙 강사가 되었다. 멕시코에서 여러 해 지내며 케이브 다이빙을 오래 한 경험도 있었다. 자유로운 영혼이다. 세계를 여행하며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한량이라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경험도 풍부했고 여유가 넘쳤다. 나와는 짧게 만났고 지금은 이탈리아 사르디니아에서 케이브 다이빙을 하고 있다.


내가 멕시코에 있단 이야기를 들은 그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자신이 지냈던 곳이기도 하니 도움을 주고 싶었나 보다. 내가 지내는 숙소와 동네를 묻기에 대답하자 “Oh, fancy~~~”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자신이 있던 곳은 내 숙소 반값도 안 된다며 내가 헤라 팰리스에라도 살고 있는 듯 어기적거렸다.


이 친구와 대화하기 전 이미 한 차례 난리를 치른 상태였다. 어차피 다이빙하다 숙소에선 잠만 자니 최대한 싼 곳을 찾았다. 우선 한 달 지내볼 생각에 계약을 했는데 들어가자마자 일주일 내내 잠 한 숨 못 자고 다이빙까지 캔슬해가며 고생하다 뛰쳐나왔다. 현지인들이 지내는 로컬 구역이었는데 옆집, 아랫집, 윗집 멕시칸들이 24시간 음악 틀고 약 하고 파티를 했다. 비가 오니 물이 현관부터 거실을 지나 방까지 들어왔고, 동네를 거닐 때면 사람들은 나에게 “치나! 치나(China! China!)” 하고 부르며 위협했다. 멕시코는 팬데믹의 가장 큰 피해를 당한 나라 중 하나였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여전히 모든 국경을 활짝 개방해둔 채로 뒀다. 미국에선 코로나19는 새빨간 거짓말이자 사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멕시코 칸쿤으로 휴양을 왔다. 하지만 멕시코 사람들은 방역 수칙 안 지키고 무례하게 구는 미국인 대신 나 같은 동양인에 화풀이했다.


그런데 네가 감히 내게 그딴 식으로 말을 해?


“나는 낯선 곳에서 숙소를 구할 때 너처럼 쉽게 결정할 수가 없어. 팬시? 그래, 팬시해야지. 나에겐 팬시가 ‘안전’이라는 뜻이야. 안전하다는 게 무슨 의미냐고? 네가 모르는 모양이니 내가 잘 설명해줄게. 안전하다는 건 내가 잠들 때, 그리고 잠에서 깰 때 혹시 누가 침입하진 않았나, 나를 죽이려 하진 않나, 나를 강간하려 하진 않나 하는 걱정 없이 편하게 발 뻗고 잘 수 있다는 거야. 네가 매일 밤 하는 것처럼 말이야. 내가 만약 너처럼 미국에서 온 백인에 남자라면 제일 싼 가격만 보고 누우면 그만인 것과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잘 때만 그럴 거 같아? 밝은 대낮에도 길에서 누가 나에게 동양인에, 여자라는 이유로 해코지하지 않을까, 늘 상냥한 미소를 머금고 다녀야 해. 요즘엔 마스크를 써야 해서 그것도 힘들어. 내가 낮이고 밤이고 너와 똑같이 길을 걷더라도 이유 없이 폭력을 당할 확률이 너보다 훨씬 높다고. 단지 딱 두 가지, 겉으로 보이는 것 때문이야. 동양인, 그리고 여자. 이건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니고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야. 무슨 말인지 알겠니?”


그 친구와 헤어지길 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애틀랜타’에서 ‘백인’ ‘남성’이 ‘동양인’ ‘여성’들을 타깃으로 ‘마사지샵’에 들어가 총기를 난사했다. 미국 경찰은 그가 그저 ‘Bad Day’를 보낸 것뿐이라고 두둔했고, 성 중독증을 앓고 있어 자신을 유혹하는 마사지샵을 없애버리려고 했다는 말을 옮겼다. 동양인을 타깃으로 한 증오 범죄는 형량이 더 높기 때문에 범인은 애초부터 그걸 피하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일본 덕분에 서구 섹스 산업의 각종 미디어를 통해 백인 남성들이 가진 동양인 여성에 대한 성적 패티시는 오랫동안 견고히 쌓여왔다. 일본 포르노에 나오는 동양인 여성들을 통해 백인 남성들은 자신의 우월함에 환각처럼 빠진다. 세계 일진이던 미국을 사사건건 건드리는 중국이 안 그래도 신경 쓰였는데 바이러스로까지 괴롭힌다. 서구 세계는 제 스스로 무너지고 있는데 원망할 건 떠오르는 동쪽 나라들뿐이다. 거기에 트럼프는 한동안 중국은 미국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적이라 사람들을 혐오와 증오, 우월주의로 세뇌시켰다. 오랜 시간 상상도 못 했던 일이 벌어졌다. 동양인이 그래미에 가고 아카데미에 간다. 원래 모든 게 다 자신들 거였는데. 미국이 세계 최고 일등 시민이라는 교육을 받아온 백인 남자가 자신보다 우월하지 못하다 믿는 동양인 여성을 노리고 작정하고 들어가 총을 난사했다. ‘Youngs Asian’이라는 간판을 내건 ‘마사지샵’에서 백인 여성이 있을 거라, 혹은 남성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들어간 게 아니지 않나. 이게 혐오범죄, 인종범죄, 증오범죄가 아니라면 무엇인지 누가 나를 이해시켜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팬데믹 선언 이후 멕시코에서 하늘길이 다시 열릴 때까지 수개월을 밖에 나가지 못하고 스스로 몸을 사렸다. 세상 폭력을 당할지도 모를 수많은 이유와 상황, 하다못해 우연이 존재한다. 하지만 단지 내가 ‘여자’이거나 ‘동양인’이기 때문에 이유 없는 폭력에 노출될 위험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크다면,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그는 수밖에 없다. 아틀랜타의 백인 남자, 그들은 죽을 때까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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