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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Apr 28. 2021

나쁜 새로운 것

다시, 한국을 떠나며.



다시, 한국을 떠났다. 내가 한국을 떠난 날, 지구 반대편에서 윤여정이 74세의 나이에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혁명이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거기에 조영남이 한 마디 했다가 낄 때 안 낄 때 가리라는 핀잔을 들었다. 이러한 해프닝 또한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다. 아들 둘을 혼자 힘으로 키운 싱글 여성이 오직 자신의 힘으로서 올라간 아카데미 시상식에 바람피우다 이혼당하고 대작 논란으로 재판까지 간 남자는 비루하게 자존심을 세우며 게걸스럽게 그 여자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다. 


팬데믹의 한가운데 태국 입국으로 공항에서 태국 공기를 30초도 못 쐬고 차에 실려 바로 호텔로 이동해 격리를 시작했다. 이곳이 한국인지 태국인지 알 수 없다. 스마트폰이 알려주는 시간은 한국보다 2시간 느리다. 이 2시간의 시차를 아직 좁히지 못하고 나는 한국도 아닌 태국도 아닌 그 어딘가에 있다. 한국에서의 습관처럼 유튜브로 <뉴스룸>을 틀었다. 오늘의 헤드 뉴스는 여성가족부의 발표다. 앞으로 5년 내에 가족의 개념을 바꾸겠다는 것. 반드시 아빠의 성을 따르지 않아도 되고,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하는 커플이나 한부모 가정 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고 법제화하겠다는 내용이다. 장관이 이래서 중요하다. 


여전히 한국은 언제나 한발, 아니 두세 발은 늦다. 50년 넘게 연기를 해온 싱글 워킹맘 윤여정이 오스카를 타는 게, 사유리가 비혼으로 아이를 낳는 게 정부의 경직된 행정과 사고를 바꾸는 것보다 더 빠르다. 수많은 아동들이 학대에 죽고, 수많은 여성들이 성범죄와 스토킹에 희생되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하다 쓰러지고, 수많은 경비노동자들이 갑질에 사그라진다. 그리고 나서야 정부는 부랴부랴 뒷수습에 허둥댄다. 내가 생각하는 선진국은, 좋은 나라는, 한발, 아니 반발이라도 먼저 움직이는 것이다. 사회와 구성원들의 변화를 빠르게 감지하고 가능한 한 모든 변수를 감안해 토론하고 법률을 만들어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 그것이 공무원과 정부, 국회의원들이 해야 할 일이다. 한 발이 힘들다면 발을 맞춰라도 가야지.


여당은 계속 한심한 짓이다. 얼마 전 한국에서 니체의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떠올리며 한 때는 민주화 투사였지만 지금은 관행과 불공정의 상징이 된 파란당 이야기를 썼다. 80년대 민주화 운동으로 지금의 한국 사회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에 눈이 멀어 모순으로 가득한 잔을 들고 파티를 즐기고 있는 그들. 스스로 자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독배 인지도 모르고 벌컥벌컥 들이키는 모습이 아슬아슬 위험해 보여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20대 초중반을 김대중, 노무현과 보내고,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을 보냈다. 사실 ‘흙수저’ ‘금수저’ 같은 수저 족보와 ‘헬조선’이란 말은 이미 이명박근혜 정권부터 나왔다. 인정사정없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으로 오세훈과 박형준을 뽑은 지금의 20대에게 “니들이 이명박근혜 시대를 직접 겪어봐야 해!”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따지고 보면 김대중, 노무현도 자유롭지 않다. 당장 내 주머니 채우기 바빠 일단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명분으로 고속 성장을 내달리는 동안 챙겨야 할 법제나 약자를 위한 안전망을 세세히 살피지 못했다. 정치가 동화책처럼 흘러가진 않는다. 집값은 어느 정권이든 올랐고 불안정했고 잘 사는 사람들만 잘 사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내가 한 가지 믿는 건 사람들의 원성과 불만이 화산처럼 폭발하는 건 언제나 그나마 덜 나쁜 정권에서라는 거다. 오바마가 집권했을 때 미국 사회의 흑인 이슈가 더 많이 부각되었다. 오바마는 자신이 흑인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흑인의 편을 대놓고 들지 못했다. 그는 흑인들만의 대통령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노무현도, 문재인도 대통령만 되면 반토막 내놓고 싶은 인간들이 한둘이었겠냐만은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의 검찰 수사 변호를 맡고 그의 죽음을 목도하고도 대통령이 되어 저리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건 그의 속내가 정말 평온해서가 아니라는 걸 안다. 그는 스스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지 파란당 지지자들의 대통령이 아니라는 취임식 선서를 했기 때문이다. 오바마도 문재인도, 좀 더 적극적으로 문제를 고치지 못했다 비난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 정치는 차악이다. 정치인을 뽑을 땐 ‘더 나은’ 사람이 아닌 ‘덜 나쁜’ 사람을 고를 수밖에 없다. 지금은 억울한 일 있으면 국민청원이라도 하지, 내가 정치적으로 한창 예민했을 때 경험한 이명박근혜 정권은 사람들이 어떤 불만도 표현하지 못하는 사회였다. 사찰과 감시가 있었고, 박정희 시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청와대와 국회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그런 통치 방식이 여전히 통할 거라 굳게 믿었다. 오죽하면 박근혜 탄핵 통과가 안 될 확률이 크다고 점친 청와대에서 헌법재판소 판결 이후 촛불을 든 사람들이 일으킬 폭동에 대비해 계엄령 선포 준비까지 했을까. 우리는 절묘한 찰나에 한 끗 차이로 다시 군사정권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는 겨우 20년이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든지 미얀마와 태국, 필리핀처럼 될 수 있다.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한 20대들이 지금은 주요 요직을 차지했다. 나는 그들에게서 무엇보다 큰 모순을 발견한다.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사실 하나로 지금껏 추앙받아온 사람들, 억울하게 옥살이도 하고 고문도 당하고 많은 희생을 한 만큼 또 같은 이유로 지금 큰 권력을 얻은 사람들. 누구보다 도덕적 우월감을 갖고, 사회적 정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라는 자부심도 큰 사람들. 하지만 결국 그들 중 일부는 걸핏하면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걸 거들먹거리는 직업 정치인이 되었다. 그리고 현시대의 변화를 눈치 채진 못할망정 뒤따라가지도 못하고 어거지를 부리며 옛 영광으로 유세를 떤다. 


자신들이 자유와 정의를 외치던 광주에서 접대 여성을 양옆에 앉히고 “내가 민주화 운동할 때 말이야…” 했다는 이야기에 머리가 쭈뼛 선다. 당시 민주투사들은 돈이 많으면 흠이라 있어도 없는 척했다. 부동산, 집, 땅 같은 것에 관심 있으면 안 멋있는 거였다. 나쁜 짓도 해본 놈이 안다고, 그런 사람들이 부동산 투기 세력을 어떻게 잡나. 그래서 결국 민주화 운동 시대엔 태어나지도 않은, 민주화 운동은 교과서로만 배우는 지금의 90년대 생들이 집 한 채를 못 사게 만들었다. 


한편, 과거에 그토록 정의를 외쳤으면서 지금은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 민주화 운동 당시 그렇게 억울한 죽음과 희생을 많이 목격했으면서 지금은 수많은 이들의 억울한 죽음에 눈 감는 사람들. 공정을 외치다 조국 자식이 문제가 되니 “다들 그리 살지 않나”, 곪아 터진 스포츠계 폭력 사태가 터지니 “운동은 다 맞아가면서 하는 거 아니었나”, 그저 어깨만 으쓱, 하는 사람들. 민주화가 절실했던 그 시대에는 신념이 자신들 밥을 먹였지만 지금은 먹히지도 않는 뜬구름 잡는 소리나 하면서 사람들의 당장 먹고사는 문제와 욕망은 보지 못하거나, 보고서도 모른 채 하는 사람들. 안희정과 박원순, 오거돈을 비롯한 수많은 성 비위에도 “우리 땐 다 그러고 살았는데 이게 왜 문제인 건가” 전혀 요즘 시대의 변화를 눈치 못 채고 스스로 무덤을 파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한국을 대표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주나.


“우리만 그런 게 아니고, 다들 그렇게 살아왔어” 하는 관행은 찰떡같이 지켜오며 못된 짓은 다 배워 해오면서도 겉으론 정의와 공정을 외치는 깊은 모순의 386 세대. 말로는 혁신을 외치며 그들의 기성세대를 답습하는 발전 없는 인간들. 능력주의 시대에서 자신 역시 살아남기 위해 가열차게 욕망을 품으며 살아와놓고선 지금의 청년들에게 왜 자신들처럼 노력하지 않느냐, 노력하는 만큼 얻는 것이란 시대착오적인 소리나 떠들어대고 있는 한심한 인간들. 박근혜는 청년 실업 문제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젊은이들을 중동으로 보내라는 헛소리를 지껄였는데, 문재인 정부의 요직을 맡은 인간은 박항서 감독도 한국에서 퇴짜 맞고 베트남 가서 성공했다며 젊은이들에게 동남아를 추천했다. 초선 의원들의 자성과 반성의 외침에 “건방지다”며 호통을 치고, 문자 폭탄으로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를 테러하고 집단으로 똘똘 뭉쳐 괴롭히는 문화를 가장 앞장서서 보여주는 추잡한 인간들. 그러고는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했다며 승리의 잔을 오늘도 부딪히고 있겠지. 


한 사회를 가늠하는 기준은 기성세대가 다음 세대를 대하는 방식이다. 어른이 젊은이를 대하는 방식이다. 한국 사회는 그 스탠스가 잘못돼도 한참이다. 가상화폐에 관한 금융위원장의 발언엔 “어른들이 요즘 애들이 잘못된 길로 가면 가르쳐야 한다”라는 문장이 들어있다. 가상화폐에 대한 개념도 제대로 모르고 종이 지폐를 신처럼 받들던 기득권이 돈줄을 쥐고 너희들은 어림도 없으니 꿈도 꾸지 말라고 젊은이들에게 엄포를 놓는다. 가상화폐의 핵심은 ‘탈중앙화’다. 전 세계 기득권이 가지고 흔드는 돈줄을 타파하자는 게 탄생 목적이다. 지금까지의 정통 화폐 개념과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이다. 뉴스에선 일론 머스크 한마디에 급등하는 도지 코인을 젊은이들의 한심한 투기 욕망으로 보도하고 있지만 뉴스 기자들도 아무것도 모르긴 매 한 가지다. 기득권이 지구에서 종이 지폐 한 장이라도 더 가지려 남을 짓밟을 때 일론 머스크는 달과 화성으로 우주선을 쏘아 올려 우주에서 쓸 화폐로 도지 코인을 고려하고 있다. 혁명이다.


지금 대한민국을 이끈다는 리더 중 가상화폐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이는 하나도 없다. 한국인의 해외 가상화폐 거래소 이용을 막아 국내 거래소에 갇힌 거래자들로 인해 같은 코인도 한국거래소에선 더 비싸게 거래되는 ‘김치 프리미엄’이라는 게 생겼는데, 신난 중국인들은 이 차익을 이용해 어마어마한 돈을 챙겼다. 연일 경제부총리며 금융위원장이 가상화폐는 투기라며 인정할 수 없다, 투자자 보호도 없다, 하면서 과세는 하겠다고 하니, 투자자들은 지금껏 해온 것처럼 보호 필요 없다, 바란 적도 없다, 그런데 세금은 왜 걷냐는 반응이 당연하다. 고구마 서너 개가 목구멍에 막힌 듯 답답하다. 이미 수많은 나라가 가상화폐를 제도권 아래 두고 검은돈이나 부정 거래를 막으려 하고 있다. 가상화폐는 실제로 거래되는 화폐로 보기보다는 다양한 블록체인 사업의 가치를 상징하는 코인이라고 봐야 한다. 투자자들은 코인의 가치를 보고 투자를 한다. 이미 주식을 토큰화 해서 가상화폐 시장으로 들어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가상화폐를 쓰고 있을 것이다. 이름에 ‘화폐’가 들어간다고 해서 정부 꼰대들이 정말 이걸 ‘돈’의 개념으로만 보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이다. 정부가 만든다는 백신 여권에도 블록체인 기술이 들어가고, 개인 정보 보호나 금융 거래 방식에도 다양한 가상화폐 프로젝트가 쓰인다. 동남아나 아프리카의 낙후된 경제 시스템에도 탈중앙화 블록체인 기술이 희망이 되고 있다. 나도 잘 모르는데 가르쳐주고 싶을 정도로 답이 없는 사람들이다. 잘 모르면 이 분야를 잘 아는 젊고 참신한 인재를 기용하고 귀 기울여야 하는데 꼰대 기득권들은 그저 자기 밥그릇 뺏길까봐 전전긍긍이다. 결국 늘 그랬듯, 세계 각국이 가상화폐 사업에 뛰어든 후에야 허둥지둥 따라가겠지. 


능력이 없다면 진심이라도 있어야 했다. 여기, 대한민국에 임대인과 세입자가 있다. 임대인이 월세를 어느 날 갑자기 두 배를 올려 세입자를 쫓아내면 세입자가 입는 피해에 대한 보상을 임대인이 해줘야 한다. 이게 상식이고, 많은 선진국들이 시행하고 있는 법이다. 하지만 한국은 임대인의 재산권 행사 권리가 우선이다. 임대인이 이긴다. 을지로의 최초 호프집이자 백 년 가게 오비맥주는 그렇게 문을 닫게 생겼다. 그래서 한국의 서울은 ‘소울’은 없고 ‘힙’만 가득한 요상한 도시가 되어간다. 내가 그리도 사랑하던 홍대 거리에 요즘 한 발만 들여도 신물이 올라온다. 한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이렇게 만든 게 바로 지금 높은 데 한 자리 꿰고 있는, 왕년에 민주화 운동 좀 했던 사람들이다. “우리가 만든 게 아니라 우리 윗세대가 그랬어” 핑계를 댄다면 그걸 바꾸지 못한 것도 당신들의 책임이다. 게을렀든 무능했든 방관했든, 모두 책임져야 한다.  


부동산 정책 실패로 20대 남자들이 민주당에 등을 돌렸다고 파란당 한심한 386 작자들은 군 제대한 남자들에게 가산점을 주는 제도를 다시 살리겠다고 설레발을 친다. 밀레니엄이 되기도 전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차별이고 위헌이다 결정 난 사안이다. 끔찍하다. 빨간당이 공포와 혐오를 먹고 산다면 이제 파란당도 그걸 똑같이 배워 괴물이 되어간다. 20대 남성이 온갖 여성 혐오에 N번방에 스토킹에 성범죄를 저지르는 왜곡된 젠더 의식을 과연 누구한테 배웠을까? 젠더 갈등을 부추길수록 세대 갈등은 더욱더 깊어진다. 지금 젊은 세대를 얼마나 바보로 보면 이런 게 먹힐 거라 생각할까. 


타고난 시대에 최선을 다해 민주화를 외쳤다, 그래, 좋다,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만들어줘 감사하다. 그런 시대가 가고 먹고사는 게 중요해진 시대에 자신도 모르게 욕망이 생겼다. 그래서 권력도 갖고, 좋은 차에 좋은 집도 샀다. 그래, 좋다. 그럼 적어도 혁명이나 정의, 공정, 혁신, 개혁 같은 단어는 스스로 부끄러워서라도 꺼내지 말아야지. ‘민주’가 없던 시대 ‘민주’를 외치는 것보다 ‘민주’가 있는 시대에 ‘민주’를 외치는 게 더 힘들다. 털어도 털어도 먼지 하나 안 나올 자신이 있으면 개혁을 입에 담아라. 조국 같은 사람으론 어림도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스스로 원했든 아니든, 지금은 그런 끔찍한 괴물이 되어버린, 한때 괴물과 싸우던 자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당신들이 외치던 혁명과 자유에 대한 보상을 받을 때가 되었다 생각하는가.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도 혁명과 자유가 필요한 때이다. 지금 파란당 사람들이 가세하는 차별과 증오는 두려움에서 출발한다. 두려움은 무지에서 출발한다. 대학, 대학원 석박사라고 아는 게 아닌, 경험과 배려, 품위가 있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지금 파란당은 아무도 그걸 갖춘 사람이 없다. 무지하니 두렵고, 두려우니 차별과 증오를 키워 사람들의 마음을 갉아먹는다. 빨간당 괴물들이 하는 짓을 똑같이 하고 있다. 어디 가서 진보의 ‘ㅈ’자도 꺼내지 말라. 쪽 팔린다. 기득권을 비판하며 새로운 기득권의 상징이 된 이들, 그 부끄러운 자리에서 내려오라, 손에 쥔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


나는 지금의 한국 젊은이들이 저 부끄럽고 추잡한 괴물들의 이간질에 넘어가지 않을 거라 믿는다. 혐오와 증오, 공포를 먹고사는 정치인에 넘어가면 끝이다. 대한민국 젊은이로서 차별받고 불공정과 부정에 대한 분노를 느끼고 있다면 그것을 화풀이할 대상은 같은 세대, 반대의 성을 가진 이들이 아니다. 약하고 다른 자들이 아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성’ 미국을 향해 가느냐, 상식과 배려, 공정의 북유럽을 향해 가느냐는 지금 우리의 판단에 따라 정해진다. 이미 괴물이 되어버린 저들은 스스로 결정권자라 착각하지만 세상은 변했다. 이 또한 그들만 모를 뿐이다. 


그 모색의 도정이 혼란스럽고 거칠고 아름답지 않을 수 있겠지만 ‘좋은 옛것’이 아닌 ‘나쁜 새로운 것’에서 출발하라는 브레히트의 충고는 여기서도 유효하다. 그러니 도래한, 도래하고 있는, 도래할 시인들이여, 웰컴. 

-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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