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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May 04. 2021

이토록 완벽하게 서늘하고도 뜨거운 드라마 <괴물>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되어버린 사람들.





사로잡히다


사로잡히다. JTBC 드라마 <괴물>을 묘사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단어다. 첫회만에 사로잡혔다. JTBC는 신하균과 여진구를 주연으로 내세운 이 심리 추리극을 밤 11시에 편성했다. 정확히 같은 주, JTBC 창사 10주년 타이틀 아래 <시지프스>가 시작되었다. 첫회를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밀려들었다. 조승우는 첫 씬 촬영부터 알아챘을까?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걸. <괴물>의 신하균은 흥미로운 선택을 했다. 스타 작가와 감독 대신 제대로 된 작품을 선택했다. <괴물> 첫 화 엔딩씬, 신하균의 알 수 없는 미소가 클로즈업되며 최백호의 탄식 같은 OST가 흘러나오는 순간, 과장하지 않고 말 그대로 머리칼이 쭈뼛 섰다. 이대로만 간다면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드라마를 배신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 드라마를 강박적으로 챙겨보며 한국 드라마엔 눈길도 안 뒀던 내가 <괴물>은 한국판 <트루 디텍티브>가 될 수도 있겠단 기대를 품었다.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은 물론 매 에피소드는 최고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어떤 에피소드는 보는 내내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어 엔딩 씬 이후에야 크게 숨을 고르기도 했다. <괴물>은 회를 더해갈수록 호평을 모았고, 종영 이후 5월 13일 제57회 <백상예술대상>에 작품상, 극본상, 연출상, 최우수연기상 등을 비롯한 7개 부분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최근 넷플릭스 서비스도 시작했다. 한 점의 의심도 없이 감히 이 드라마를 추천한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대가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역시 그대를 들여다본다.’

니체 <선악의 저편> 중에서





괴물은 누구인가

형사물이나 추리극은 기본적으로 ‘정의’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취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결이 결정된다. 잡으려는 자의 욕망과 잡히지 않으려는 자의 욕망, 범인을 잡기 위해 정의를 어디까지, 어떻게 정의 내릴 것인가에 대한 갈등, 이 모든 게 한국적 정서를 압축시킨 만양이라는 공간 안에 압축되어 있다. 








괴물 같은 연기

<괴물>을 통해 신하균은 자신의 연기 인생에 멋진 이정표를 세웠다. 여진구는 극 초반에 비해 가면 갈수록 물이 오른다. 신하균과 여진구의 일대일 구조는 신하균 쪽으로 기우는가 싶더니 결국 완벽한 밸런스를 이룬다. 이 과정을 공들여 쌓았을 감독과 작가, 스태프들도 멋지다. <괴물>에 등장하는 모든 배우들은 ‘진짜’ 연기를 한다. 등장하는 인물이 하나도 잊히지 않고, 작품 끝까지 내내 가슴에 남는다. 작가와 감독이 작품을 준비하며 섭외를 할 때에도 신념을 꺾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테다. <괴물> 방영 도중 쏟아지는 호평에도 배우들은 호흡을 잃지 않고 흔들리지 않았다는 점도 놀랍다. 첫 화를 보고 이 호흡을 끝까지 가져간다면 너무 좋겠지만, 그건 배우들에게 너무 가혹할 거란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작가와 감독, 배우를 비롯한 모든 스태프들이 <괴물>을 통해 품은 욕망을 오롯이 실현해냈다. 그들의 인내와 열정과 탐구 자세는 박수받아 마땅하다. 




판타지와 리얼리즘 사이

<괴물>은 시종일관 새벽녘의 푸르스름하고 서늘한 톤을 유지한다. 진실이 숨어든 검은 밤을 지났으나 여전히 해는 뜨지 않아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대부분 한밤의 잠에 취해있으나 누군가는 깨어있는 이른 새벽. <괴물>은 그 새벽의 톤을 첫 화부터 마지막화까지 시종일관 유지하면서 야릇한 매력을 풍긴다. <괴물>에 등장하는 범죄와 범인, 그리고 악인들이 현실에 있을 법하면서도 허구인 듯 오묘하다. 만양이라는 도시 자체가 우리 내면에 지어진 가상의 공간 같기도 하다. 판타지와 리얼리즘 사이, 그 어디쯤에 만양과 이동식, 한주원, 그리고 <괴물>이 있다. 





카메라 예술

<괴물>처럼 클로즈업을 많이 쓰고, 카메라 앵글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한국 드라마는 보지 못했다. 이는 심리적으로 보는 이를 더 옥죄이며 몰입감을 선사한다. 많은 배우들이 클로즈업을 부담스러워한다. 연기에 자신 없는 배우라면 이러한 카메라 앵글 앞에서 진즉에 무너졌을 것이다. 



최백호의 음악

좋은 드라마나 영화는 음악이 차지하는 지분이 크다. 음악을 잘 쓰는 영상은 언제나 옳다. <괴물> 첫 화 엔딩씬, 신하균이 오묘한 미소를 지었고, 그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화면을 꽉 채웠고, 최백호의 탄성에 가까운 목소리가 흘러나온 타이밍, 모든 게 완벽했다. 



작품을 닮은 사람들

<괴물>은 드라마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유기적으로 하나의 몸처럼 움직여 만들어진 수작으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우리는 결국 어떤 형태로든 모두 ‘괴물’이고 선과 악, 정의는 흑백으로 나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괴물>은 절망하지 않는다.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된 이들에게마저도 인간다움을 기대하고 애정을 갖고 따뜻하게, 또 애처롭게 바라보며 기다린다. 힘이 많이 들어가는 범죄 수사 추리물은 자칫하면 보이지 않는 눈을 의식해 과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괴물>은 묵묵하고 담백하게 갈 길을 간다. 김수진 작가와 심나연 연출, 이 두 여성이 세상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일 것이다. PPL로 도배된 다른 한국 드라마와 비교할 수 없는 품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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