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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Apr 06. 2022

박웅현과 장기하


한국에서 잡지사 기자 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박웅현은 내 첫 번째 인터뷰이였다. 서른 넘어 늦깎이로 시작한 잡지 일에, 직원 월급 주기 빠듯해 기자가 나포함 달랑 둘 뿐인 소규모 독립 잡지사였기 때문에 인터뷰는 어떻게 하는 건지, 인터뷰이 선정이나 기획, 섭외 방법도 모르고, 맨땅에 헤딩하며 스스로 배우고 깨우쳤다.


이십 대 내내 휘청거린 나를 다독여준 수많은 책들 중 박웅현의 책이 있기도 했고, 이런 어른이라면 한 번쯤 시간을 내줄 거야, 하는 순수한 기대도 있었다. 이제 막 창간을 앞둔 독립 잡지인데, 이 시대 어른과 젊은이 사이에 다리 역할이 되어 대화를 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쓴 손 편지를 당시 그가 일하던 광고회사에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참 희한한 인터뷰 섭외였다.


박웅현은 흔쾌히 인터뷰를 수락했다. 당시 유명한 광고 크리에이티브 팀을 이끄는 수장으로,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강의로도 유명했던 그가 아직 창간도 안 했다는, 아무것도 보여줄 게 없는 독립 잡지의 인터뷰를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낸 것이다. 10년이 넘은 일이지만 그와 인터뷰했던 신사동 카페의 따뜻한 빛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는 젊은 세대를 다 안다고 자신하지 않았고, 재단하지 않았고, 질투하지 않았다. 따뜻한 연민과 배려, 진정한 응원의 마음이 진심으로 느껴졌다. ‘좋은 어른’이구나, 했다. 아빠 생각도 많이 했다. 아빠와 이렇게 빛이 좋은 대낮, 차 한 잔 하며 이런 대화를 나누면 참 좋겠다, 하는. 


나의 첫 잡지, 첫 인터뷰이였던 그는 창간 파티에 화환을 보내고, 직접 파티에 찾아와 우리를 응원했다. 그는 나를, 우리를, 그리고 우리 잡지를 존경과 진심으로 대했다. 이후 수년간, 잡지사 피처 에디터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할 때마다 나는 그들을 존경과 진심으로 대했다. 나는 인터뷰하는 방법을 바로, 박웅현에게 배운 셈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이 메이저 씬을 한 번 들었다 놨다 했을 때였다. ‘88만원 세대’ ‘잉여 세대’가 당시 우리 세대의 닉네임이었는데, 박웅현은 인터뷰에서, 앞으로 장기하 같은 ‘잉여’가 우리 사회에 더 많아져야 한다고 했다. 앞으로 기술은 더욱 발전해 인간이 일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 그만큼 남는 시간을 창작에 쏟는 젊은이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그래야 사회가 풍족해지고 행복해진다고. 이십 대와 삼십 대 모두를 홍대에서 리스너로, 팬으로, 노동자로, 또 기자로 보냈던 나는, 그때 인터뷰 당시에는, 그 말이 참 매혹적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 장기하와 얼굴들 이후 인디 씬에서 메이저를 시원하게 뒤흔든 밴드는 없었다. 인디 씬을 배경으로 활동하던 아티스트가 예능에 나와 유명해진 건 예외다. 밴드의 철학으로 씬을 변화시키기보다는 대부분 메이저 씬에 스며들었다. 같은 이유다. 이십 대와 삼십 대 모두를 홍대에서 리스너로, 팬으로, 노동자로, 또 기자로 보냈던 나는, 그때 인터뷰 당시 박웅현의 말이 얼마나 비현실적이었는지를 깨닫는다. 


당장 오늘 저녁 끼니 걱정인 사람 앞에서 박웅현은 크렘 블뤠 디저트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 인터뷰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한국 인디 씬에서 여전히 음악을 이어가는 친구들은 집이 잘 살아 당장 집세, 먹을 거 걱정 없는 몇몇뿐이다. 우리 세대 누구도 박웅현이 말했던 ‘잉여’의 긍정과 희망의 뉘앙스에 공감하지 못한다. 잉여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것. 잉여도 돈이 있어야 한다는 시스템을 박웅현은 애써 모른 채 했다. 


도시에서 짐 싸들고 제 발로 걸어 나온 입장에서 보면, 박웅현도 장기하도 결국, 모두 답이 아니었다. 불평불만을 끊임없이 늘어놓으면서도 미운 정도 고운 정,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성격이 안 되어, 적어도 앞으로의 내 삶은 불평불만으로 채우며 살지 말자, 하고 떠나온 사람으로서 정답은 어디에도 없다. 박웅현과 장기하는 그 시대의 시스템과 상처를 모른 채 하는 환상의 아이콘일 뿐이다.


다시 한번 박웅현을 만날 기회가 생긴다면, 나도 어떤 의미에선 잉여로 살고 있다고, 내가 이룬 결정에 당신의 지분이 작지 않다고 전하고 싶다. 그분이 다이빙을 하러 이 섬에 오지 않는 한, 아마 그럴 일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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