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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Jan 15. 2023

Every day is my birthday

매일이 내 생일이라고, 뜨거운 트로피칼 섬에서, 건조하게 말했다.


2023년 1월, 10일. 생일이었다. 트로피칼 파라다이스에서 야자수와 해변을 배경으로 몇 년째 맞는 생일인지 기억이 가물해지는 걸 보면, 꽤 된 거다.


생일 축하도 이 섬에선 상대적인 개념이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땐 생일을 챙기는 게 큰 의미였다. 데이빗 보위 생일이 같다며 내 생일을 더 특별히 여겼다. 지금 생각하면 모순이고 우스운 일이다. 내 생일을 특별히 여기기 위해 다른 이의 생일에 숟가락까지 가져올 필요는 없었다. 데이빗 보위 없이도 내 생일은 충분히 귀하고 특별하다.


그래도 그게 다, 하루하루 사는 게 팍팍하고, 일상이 고달팠기 때문이다. 도시 정글에서 살아남으려 고군분투하며 애쓴 364일에 대한 위로다. 내 선택과 무관하게 태어난 세상,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을 거라는 절망을 넘어선 무기력함에 전기 충격 한 번 주는 거였다. 어떤 해 생일엔 내게 주어진 삶에 감사했고, 어떤 해 생일엔 내 생의 시작을 저주했다. 어떤 해 생일은 희망에 부풀었고, 어떤 해 생일은 한없이 침울했다.


도시를 빠져나와 살고 있는 나는, 요일도, 주중, 주말 개념도 없는 다이빙 강사로서 작년 생일에도 이 섬에서 다이빙 강사 과정을 가르치고 있었고, 이번 새해 첫 강사 과정은 내 생일에 시작했다. 함께 강사 과정을 가르치는 내 보스이자 동료인 Matt이 수업 중 갑자기 없어졌다. 나는 그 대신 수업을 마치고, 끝났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돌아온 답은 “I need to talk with you…” 보스의 ‘…’은 안 좋은 상황에 쓰는 표현이라 다이브 센터에 안 좋은 일이 생겼나, 얼른 달려갔더니 함께 일하는 동료 강사들이 나를 위한 깜짝 파티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내 인생에, 이렇게 전 세계에서 모인 국적, 문화, 성별, 출신, 언어가 모두 다른 사람들에 둘러싸여 바다가 ‘쏴아, 쏴아’ 들려주는 소리를 배경음악으로 케이크 촛불을 불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맥주를 함께 하는 날이 있다니. 여전히 신기하고 어색하다. 축하한다는 사람들의 메시지에 하루 종일 나는 같은 대답을 하고 다녔다. “Thank you so much! But everyday is my birthday!”


아침부터 카카오톡 스타일의 귀여움 넘치는 이모지로 제일 먼저 아빠가 축하를 전해왔다. 아빠는 늙을수록 귀여워진다. 내 평생 아빠가 보낸 이모지를 받게 되는 날이 오다니! 그나저나 태국으로 떠나와 살기 시작한 이후로 한 해도 거른 적 없던 엄마의 메시지가 깜깜이다. 한국, 심지어 같은 집에 살 때 엄만 내 생일을 잊기도 하고, 일이 바빠 못 챙기기도 하고, 무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와 한국을 떠난 이후, 엄마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어김없이 다정한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다.


시골 사는 양반, 눈길에 넘어져 다쳤는데 말도 않고 또 혼자 끙끙 앓고 있나 해서 다 된 저녁 즈음,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경쾌하고 밝은 엄마의 목소리. “엄마, 오늘 딸내미 생일인데 메시지 하나 없어서 혹시 무슨 일 있나 전화했어, 별일 없어?” 했더니 엄마는 그제야 “엄마야! 서울서 친구들이 내려와서 놀고 있었는데, 깜빡했다, 어머, 미안하다, 얘, 생일 축하해, 우리 딸!”


기분이 정말 좋았다. 한국 살기 싫다고 투덜대다 정말 짐 챙겨 해외로 떠나버린 딸의 부재를 안타깝고 야속하게 생각하지 않는 엄마가 딸의 생일을 깜빡할 정도로 당신만의 일상을, 삶을, 인생을 온전히 즐기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아니라곤 하지만, 늘 태국 외딴섬으로, 온전히 나 자신 하나만을 위해 떠나온 딸자식으로서의 알 듯 모를듯한 죄책감이 마음 한 켠 스모그처럼 늘 깔려있었다.


나는 항상 엄마의 바람과 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엄마는 내 선택이 자신의 행복에 일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많이 서운해했다. 어렸을 때 나는, 엄마가 나에게서 당신 삶의 의미를, 행복의 이유를 찾지 않길 바랐다. 엄마가 온전히 엄마 자신으로서 행복하길 바랐다. 처음으로 엄마가 나와 상관 없이 나로부터 자유롭게, 온전히 엄마 스스로 행복한 모습을 마주하니 마음이 비단결처럼 부드럽게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파라다이스에서 꿈을 살고 있는 딸이 행복하다는데, 이 세상 행복하지 않을 엄마가 어디 있겠는가.


대화가 끝날 무렵, 엄마가 “네가 행복하면, 매일이 네 생일이지” 하고 말했다. 당신 특유의 시니컬하고 건조한 말투였는데, 나는 그 말이 너무 반갑고 짜릿했다. “와, 엄마! 내가 오늘 하루 종일 그 얘길 하고 다녔거든, 여기서.”


내가, 나를 존중하고, 나를 이해하고, 나를 헤아리며, 마침내 나를 사랑하게 됐다. 진정 자유롭고,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무미건조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진심이다. 뜨거운 기운을 가진 이 열대 섬에선 없는데 있는 척 꾸밀 일도, 속일 일도, 호들갑 떨며 기념할 것도, 축하할 것도 특별히 없다. 이 섬에선 매일이 내 생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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