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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Jun 25. 2023

파라다이스의 패닉 어택

스스로 믿기로 결심했다.


바닥을 쳤다. 이 섬에 들어온 이후, 참 오랜만이다. 


다섯 손가락 꽉 차는 시간만큼 함께 일해온 보스와 문제가 있었다. 감정이나 불만을 드러내지 않고 조직 생활을 하라고 어릴 적부터 훈련받은 한국인으로서 인내와 성실로 나는 맡은 역할을 했다. 그것도 기똥차게 아주 잘.


어느 날, 오래 함께 일해온 동료에게 갑작스러운 고백을 받았다. 예전부터 나를 좋아했고, 내가 남자친구가 있을 땐 질투가 나 일부러 나에게 다이빙 코스 일을 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오래 사귄 여자친구가 있었고, 심지어 같은 다이빙 센터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의 여자친구는 자신의 남자친구 대신 나를 적으로 삼았다. 내가 가장 싫은 건 문제 있는 남자는 놔두고 언제나 여자끼리 싸우는 현실이다. 하지만 이건 달랐다. 우선 가장 중요한 건 나는 그에게 손톱만큼의 관심도 매력도 못 느낀다는 거다. 둘째, 그는 다이빙 강사들의 스케줄을 담당하던 오퍼레이션 매니저로 자신의 직위와 힘을 이용해 사적인 감정을 이입해 나에게 일을 주지 않았다고 스스로 고백했다. 셋째, 그로 인해 그의 여자친구는 나와 마주칠 때마다 인사는커녕 죽일 듯이 나를 노려본다. “헤이, 걸! 화낼 상대는 내가 아니라 네 멍청하고 교활한 남자친구라고! 정신 차려!” 몇 번을 말해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수년간 감정을 숨기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그의 변태스러운 고백에 며칠 동안 화나고 분해 잠을 못 잤다. 이유도 설명도 없이 다이빙 센터에서 일을 주지 않아 ‘내가 뭘 잘못했나’ 반성하고 자책하던 밤이 몇이었던가. 그걸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 듯 으스대며 떠드는 그의 얼굴에 왜 나는 침을 뱉고 따귀를 날리지 못했나. 내일이면 일터에서 그의 얼굴을 또 봐야 하다니.


다이빙 센터에 일하는 한 사람은 하도 여자를 훑어보고, 만지고, 성희롱해서 섬에 있는 모두가 알 정도이다. 수년간 이어진 그의 추행에 얼마나 많은 어린 여자 강사들이 고통스러워했는지 모른다. 팀에 새로 합류한 터키 강사도 손버릇과 입버릇이 좋지 않다. 이에 대한 불만은 여자 강사와 교육생들에게서 많이 들었고, 나도 실제로 여러 번 당한 적 있다. 하지만 모두 쉬쉬- 했다. 이게 공론화되면 어떻게 끝날지 우리 모두 잘 알기 때문이다. “증명해 보라”가 나올 것이고, “거짓말쟁이 미친년”이 될 것이며, 결국 조직을 떠나야 하는 건 피해자가 될 것이다. 파라다이스의 변태 가해자들은 며칠 어디로 휴가를 다녀와 또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하겠지. 


다이빙 강사가 된 이후로 다이빙 산업계에서 8년을 넘게 보냈다. 다이빙 업계에 만연한 성차별과 인종차별도 만만치 않다. 글로벌하다. 나는 어찌어찌 운 좋게 힘든 시간을 넘겼다지만, 후배 여성 다이버들이 많아지면서 더 이상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이제 그만. 그래서 고민 끝에 보스를 찾았다. 영국인 보스의 엄마가 성폭력 상담소 같은 곳에서 일한다고 들은 게 기억 나서다. 나에겐 마지막 희망이었다. 나는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그리고 매력적이고 건강하고 일을 잘한다는 이유로,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 감정을 자신의 힘에 이입해 컨트롤하려는 누군가에게 괴롭힘 당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다이브 센터 내의 성희롱 발언과 행동, 성차별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했다. 아무에게도 말 못 하고 고통받는 여자 다이버들이 여기 너무 많은데, 그걸 왜 모르냐고 보스를 책망하기도 했다.


이후, 보스는 몇 주가 지나도록 아무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다이브 센터 여자 강사들과 학생들을 하나씩 불러 “일어난 일에 대해 명확하고 자세하게 증명하라, 그럴 수 없다면 우린 더 이상 ‘거짓말쟁이’와 함께 일할 수 없다”라고 했다. 그렇게 내가 애정을 쏟아부었던 다이브 센터의 모든 여자 강사와 학생 다이버들이 쫓겨났다. 


보스는 내가 괘씸했는지 한동안 나에게 일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쫓아내진 않기에 나도 침묵으로 버텼다. 오는 9월, 말레이시아에서 1년에 한 번 열리는 코스디렉터 트레이닝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다이빙 단체의 가장 높은 타이틀인 만큼 이것저것 필요한 게 많았다. 일찌감치 비즈니스 플랜을 만들어 보스에게 보내고 승인 사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 핑계 저 핑계로 보스는 피드백을 주지 않았다. 이런 일, 처음 당하는 게 아닌데? 싸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힘을 이용해 나를 컨트롤하려는 사람이 바로, 보스였다.


코스디렉터 트레이닝 참가 지원서 마감 며칠 전, 나는 보스를 찾아가 사직 의사를 밝혔다. 근로계약서가 있는 것도 아니니 복잡할 것도 없었다. 보스는 나를 붙잡았다. 하지만 어떤 대안도 희망도 제시하지 못했다. 협박처럼 들리는 으름장도 있었다. 보스는 이 섬에서 힘이 센 사람이다. 괜찮다. 나는 더 이상 그가 두렵지 않다. 마지막으로 보스에게 말했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일어난 사건을 “증명해 보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건 기본적인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작은 목소리를 겨우 내 나에게 도움을 청한 여자들이 느낀 권력과 힘에 대한 공포, 어차피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란 무력감, 발설의 책임으로 지게 될 짊에 대한 압박을 공감하진 못할망정 왜 이해할 노력도 못 하냐고.


오랫동안 믿고 의지했던 보스였다. 나에겐 꼬따오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더 밉고, 충격적이었다. 내 가족의 허물을 제대로 보지 못한 건 몰랐다는 핑계로는 부족하다. 내가 다이빙 강사로 일하는 한 계속 머물 거라 생각했던 다이브 센터를 갑작스럽게 떠나게 되는 것도 싫었다. 차라리 일을 못 하거나 게으르거나 지각이 잦아 잘린 거라면 낫겠다. 다른 사람은 나를 잘도 컨트롤하는데 나는 자신조차 컨트롤 못 하는 것 같았다. 무력해졌다. 하- 깊은 무력감에 빠져 맞게 될 지루하고 긴 우울과 권태를 또 어떻게 견뎌내지. 


일단 급한 불부터 껐다. 그래도 이 섬에서 오래 있었다고 내 이름이 꽤 알려졌다. 억울하게 쫓겨난 새내기 여자 강사들에게 추천서를 써주고, 이력서를 들고 찾아가야 할 다이브 센터와 매니저를 알려줬다. 나와 함께 다이빙을 시작했던 친구들이 시간이 흘러 대부분 이 섬의 다이브 센터 매니저가 되었으니 나도 이참에 내 힘을 좀 써봤다. 아무도 책임지고 사과하지 않는 상황에서 나라도 어른답게 책임을 다하고 싶었다. 친구들이 좀 더 나은 환경의 다이브 센터에서 일을 시작하는 걸 보고서야 숨을 돌렸다. 이제, 내 차례였다. 


나는 끝도 없는 어둠 속 바닥을 향해 돌진했다. 모티베이션, 리얼리티, 나이, 성별, 국적, 모든 것에서 ‘현타’가 왔다. 나를 더 사랑하기 위해 도망친 섬에서 나는 또다시 나를 경멸하는 상태를 맞았다. 이 섬의 아름다운 사람들도 모두 괴물로 변했다. 온몸에 스트레스성 염증이 생겼다. 언제 멈춰야 할지 잘 모르는 나는, 지나고 나서야 ‘그래, 그땐 멈추는 게 맞았어’ 할 때가 있다. 이젠 안다. 지금은 일단 멈춰야 한다는 걸. 


일주일은 행복했다. 큰 책임과 압박에서 벗어났고, 보스의 위협적인 말과 행동에 긴장할 필요도 없다. 24시간 메시지 올 일도 없고, 수년째 사랑한다는 이유로 나를 괴롭힌 변태를 다시 볼 일도 없다. 내가 그곳에서 어떤 취급을 당하며 일해온 지 지켜봐 온 친구들은 제 일처럼 기뻐해 주고 응원했다. 심지어 퇴사 해방 기념 파티까지 열어줬다. 


유난히 마음이 가볍고 자유로운 날이었다. 바로 그날 밤, 집에서 한밤 중 공황발작을 겪었다. 공황발작은 극도의 공포심이 느껴지면서 심장이 터지도록 빨리 뛰거나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차며 땀이 나는 등 신체 증상이 동반된 죽음에 이를 것 같은 극도의 불안 증상을 말한다. 갑자기 숨을 쉬기 힘들었고, 주체 못 할 감정이 폭발했다. 이러다간 내 발로 발코니로 걸어 나가 뛰어내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Help me”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민폐 끼치지 말고 살라는 아빠의 말을 어렵게 어겼다. 한달음에 친구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내 옷가지를 챙기고는, 자기 집으로 가잔다. 나를 절대 혼자 둘 수 없다고. 그렇게 친구들 집에서 며칠을 보냈다. 혼자 욱여넣기만 하고 참기만 했던 감정을 대화로 풀어내고 나니 머리가 점점 맑아졌다. 


마침 생에 첫 번째 책 출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섬에 들어오기 전, 이 섬에 들어온 이후의 수년 전 내 마음을 다시 읽었다. 마치 다른 사람이 쓴 책을 읽는 듯했다. 그때의 내 생각, 희망, 상실, 낭만, 모든 게 낯설다. 겸손한 마음으로 이 섬에 들어온 사람들은 결국 다시 오랜 습성을 회복해 불안과 욕심, 욕망, 시기, 질투, 허영, 경쟁심을 키운다. 


2015년 꼬따오라는 섬을 찾아 그 어렵고 먼 길을 한달음에 나선 나, 그리고 2023년 지금의 나. 애초에 이 섬에서 다이버로 살겠다는 건 내 선택이었다. 이렇게 될 걸 알고도 선택한 거다. 이 섬이 나에게 준 지혜를 떠올리자. ‘신뢰’는 누군가를 믿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나약한 인간은 신뢰가 무너진 이유를 오직 상대에게서 찾는다. 다시 한번, ‘신뢰’는 스스로 믿기로 결심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저, 스스로 그 신뢰를 무너뜨리기로 한 것뿐이다. 그들의 신념의 깊이가 고작 그 정도인 것이다. 누구도 탓할 필요 없다. 바다는 변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이 변한 것뿐. 


나는 무력하다. 이미 일어난 일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무기력하지 않다. 일어난 일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온전한 내 몫이다. 앞으로 또다시 상처받고 배신당해도 괜찮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 나만의 시간과 사람, 장소를 찾아 내 두 발로 온전히 밀려오는 파도를 마주해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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