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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Jun 27. 2023

방콕에서 종이 버스표를 손에 들고

내 삶에 책갈피를 꽂아두고 싶은 순간이 있다.


3년의 팬데믹도 이겨낸 다이빙 강사가 또 깊이 방황했다. 난생처음 공황발작을 겪었고, ‘파라다이스’라 불리는 섬에서 겪는 무기력함과 우울감은 더욱 깊게 나를 수렁으로 잡아끌었다. 


당장 짐을 싸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두 번 다시 타인에 의해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엄마, 아빠, 그리고 우리 강아지 콜라, 환타가 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엄마가 해준 밥이 너무 먹고 싶었다.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무작정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머릿속은 복잡했고, 마음은 헝클어졌다. 건강도 좋지 않았다.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 한국을, 서울을 떠났는데, 작고 예쁜 섬에서 나는 또 나만의 스트레스를 만들어 산 것이다. 삶의 기막힌 아이러니에 나는 또 한 번 무력해졌다. 귀농한 엄마, 아빠의 집은 내가 사는 태국 작은 섬보다 더 고립되어 자가용 없이 다니기 힘들다. 서울에 있는 병원은 가야겠고, 매번 엄마 차를 얻어 타는 것도 미안해 버스 정류장까지 1시간을 걸었다. 하루에 한 대만 다닌다는 시골 마을버스는 감감무소식이다. 이래서 사람들은 어떻게든 서울에서 살려고 아등바등하는구나. 


서울은, 한국은 어김없이 나를 평가하고 재단하기 시작한다. 버스, 기차, 지하철, 시내 거리 곳곳의 유리창과 쇼윈도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고 흠칫 놀랜다. 섬에 사는 수년 동안 하루에 거울 보는 일이 한 손에 꼽힌다. 도시의 환경은 자의든 타의든 끊임없이 비치는 자기 모습에 열등감이나 우월감을 부추긴다. 섬에 처음 왔을 때 나도 그 때를 벗기는 데 한참 걸렸다. 섬에 살면서부터 가끔 한국에 와도 꾸미지 않는다. 메이크업과 하이힐을 이미 오래전 그만둔 내 모습은 서울의 미의 기준에 한참 미달이다. 동남아에 오래 살아 피부까지 어두워진 나는 한국 사회가 기피하는 요소들만 모두 가지고 있다. 희한하다. 같은 시간, 내가 꼬따오에 있다면 ‘예쁜 사람’인데, 서울에 있으니 안 그런 사람이다. 서울에 하루도 채 안 있었는데 벌써 그 작고 귀여운 섬이 그립다. 꼬따오는 나의 또 다른 집이 되었다. 


서울에선 마음 한구석에 가둬둔 욕망의 속삭임이 시작된다. 거리 곳곳에 진열된 신박한 새 물건과 광고들로 “저거 가지고 싶다” “돈을 벌어야겠다”의 익숙한 자본주의 두뇌 회로가 다시 작동한다. 오래, 많이 해본 짓이다. 심지어 나는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해 소비를 유도하는 패션지 에디터로 오래 살았다. 


파라다이스의 삶은 완벽하지 않다. 나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살아온 사람들을 본능적으로 감지한다. 내가 금수저가 아니기 때문이다. 팬데믹 이후, 여행 못 다닌 사람들이 작년과 올해 몰리는데, 대부분 그동안 경제적 타격을 입지 않은 ‘살 만한’ 이들이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에 지구 한 편에선 참혹한 전쟁이 일어나고 있어도 놀 사람들은 잘 논다. 


이제 갓 대학에 들어간 유러피안 친구들이 지구 반대편 태국으로 날아와 몇 개월을 지내면서 수백만 원짜리 다이빙 장비를 사고, 다이빙 코스를 진행한다. 스위스에서 온 스무 살 친구는 오픈워터를 고등학교 때 멕시코 코즈멜 섬에서 땄고, 어드밴스드는 콜롬비아 여행에서 땄다고 한다. 단 한 번도 부정당해보거나 거절당해본 적 없는 사람의 태도가 배어 있다. 절묘하게 ‘매너 좋다’와 ‘싸가지없다’ 사이를 오간다. 그게 쿨한 거라 따르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아온 사람의 태도다. 내가 좀 더 어리고 어리석었다면 그런 친구들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피해의식만 풍선껌처럼 부풀렸을 테다. 이 섬으로 도망쳐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런 데 시간을 주로 썼다.


환경이 사람을 바꾼다. 꼬따오에선 일회용 용기를 사용하지 않는데, 서울에선 밥 먹고 간단한 쇼핑만 해도 수백 개의 플라스틱 용기 배출물이 나온다. 견고한 시스템 안에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모든 게 편리한 만큼 결국 대가를 치를 것이다. 태국 깡시골 섬에서 꼬박 2년을 보내고 온 나에게 서울은 마치 SF 영화에 나오는 미래도시 같았다. 나는 도시에선 어쩔 수 없이 다시 익명의 구성원으로 돌아가 카드를 찍으며 시스템 안에서 룰을 따른다. 


엄마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돕는다. 아이들이 선생보다 엄마를 더 편하게 생각하고 따르며 속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엄마의 부재가 컸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또 옛날얘기를 꺼내네, 아직도 그걸 못 잊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네, 하는 엄마의 핀잔이 부메랑처럼 돌아올 것이고, 우리는 또 치유되지 못한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말다툼을 할 것이다. 


잠시 후, 엄마가 이어 말했다. “아유, 애들 중 하나는 엄마 아빠가 맞벌이해서 비 오는데 그걸 다 맞고 가더라. ‘우리 하나도 어렸을 때 비 오는 날 혼자 비 맞고 집에 가는 날이 많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엄마는 말끝을 맺지 못했다. 나는 엄마의 시선을 피했고, 엄마 역시 나의 시선을 피했다. 그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안 맞아 싸우던 엄마와 그저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순간을 경험했다. 이제야 엄마가 내면의 어린 ‘하나’를 알아주고 안아주는 것 같았다. “사랑해” 같은 말을 하지 않아도 엄마의 회한과 사랑이 느껴졌다. 


어릴 적 학교 다니는 내내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도 교문 앞에 나와 있는 친구들 부모님이 마치 슈퍼 히어로 같았다. 나는 한 번도 누군가 날 기다릴 거라 기대한 적이 없다. ‘왜 나는 소중한 존재처럼 느껴지지 않지?’ 외롭고 서러웠다. 나도 꽤 괜찮은 아이라고 엄마와 아빠가 말해줬으면 소원이 없었다. 반지하 집에서 혼자, 쏟아지는 폭우에 당장 지금이라도 집 안으로 물이 들이칠까 패닉에 빠진 초등학생 아이가 여전히 내 맘 한편에 떨고 있다. 


‘진즉 나에게 이런 사랑을 주지, 내가 더 어렸을 적에…’ 제 발로 떠난 섬에서 얻은 아픈 상처를 끌어안고 돌아온 나는 괜히 뒤틀리고 야속한 마음도 피할 길이 없다. 하지만 엄마에게 다시 한번 배웠다. 이제라도 삶의 여유가 생겨 누군가의 사랑과 보살핌과 관심이 필요한 어린아이들을 돕는 엄마는 대단한 사람이다. 내 어린 시절 엄마의 부재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어린 딸을 홀로 두고 일터로 나가야 했던 엄마에게도 지울 수 없는 상처다. 하지만 엄마는 그 상처를 복수로 덮지 않았다. 엄마라는 한 사람의 강인함과 우아함에 나는 감동했다. 이제 비 오는 날이 더 이상 슬프지 않을 것 같다. 


죽이 척척 잘 맞던 딸이 먼 데 살다 온다고, 아빠는 냉장고에 맥주를 가득 채워 놨다. 평소 않던 맛집 검색에 나를 이곳저곳 데리고 다녔다. 나는 지친 마음에 짜증만 냈다. 오랜만에 본 아빠는 살이 더 빠졌다. 괜히 그게 속상해 더 짜증을 냈다. 아빠도 그랬을 거다. 각자 제 잘난 맛에 사는 그 아빠에 그 딸의 티키타카가 그리웠을 뿐인데, 한껏 풀이 죽어 심드렁한 딸내미가 대체 왜 그러나 싶었겠지. 때로 아주 작은 어긋남이 큰 균열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어쩌면 내가 아빠의 딸이기에 이만큼이라도 살아오지 않았나 싶어, 이내 스스로 부끄러웠다. 


수년간 섬에서 보낸 시간에서 배운 큰 깨달음 중 하나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 싶을 땐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 그렇게 엄마, 아빠에게 내가 겪은 일을 이야기했다. 이해하지 못할까, 행여 걱정만 시키는 꼴이 될까 한 번도 내색 않던 내가 모든 걸 그냥 툭, 내려놓고 꺼이꺼이 울며 마음속 고름을 짜냈다. 누구도 안아주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간 듯했다. 엄마는 마흔이 넘은 딸을 비로소 말없이 안는다.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내면에 떨고 있는 그 아이도 안아줬다. 물론, 스스로 할 일이지만, 이렇게 가족과 함께 조금씩 나아지면 더 좋다. 내가 어릴 적 경험한 모든 것들이 내 삶 전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실감하고 있다. 우리 가족은 여전히 화해하는 중이다.


한국에서 보낸 3주 동안 몸도 마음도 많이 나았다. 그리고 나는 결론을 내리고 태국행 비행기에 다시 몸을 실었다. “다시 가서도 힘들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언제든 집으로 돌아와” 하는 엄마의 말에 바닥까지 떨어진 자존감을 되찾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란 패배감과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을 거란 무력감은 버렸다. 


방콕에 내리자마자 나에게 적당한 온도와 습도가 와닿았다. 카오산 로드로 가는 버스에 타니 ‘차장 언니’가 조그만 종이에 구멍을 뚫어 준다. 오늘 아침만 해도 미래도시에 있었는데, 지금 나는 종이 버스표를 손에 들고 있다. 


언제고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그 적당한 시기를 내가 고르지 못하는 게 억울하긴 하지만, 그 또한 삶일 것이다. 필연적으로 일어난 사건엔 분명 이유가 있다. 자괴감에 넘쳐 괴롭고 고통스러웠지만,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지만 장담할 수 없는, 분명 내 삶에 책갈피를 꽂아두고 싶은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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