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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Sep 12. 2023

권태, 그 배부른 사치

노트북 없이 깡시골 섬에서 보낸 한 달.


3년 정도 쓴 랩탑 모니터에 줄이 몇 개 나타나더니 결국 화면 전체를 채워버렸다. ‘노트북’이라고 하면 메모장이나 공책으로 생각하는 외국 사람들과 오래 어울려 지내다 보니 ‘랩탑’이란 말이 더 입에 잘 붙는다. 그만큼 이 섬에서의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


태국 작은 외딴섬에 살면 이런 경우가 가장 난감하다. 여기서 삼성 서비스 센터는 기대할 수 없다. 노트북은 내가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 그런지, 노트북에 낭만과 애착이 괜히 많다. 그런 노트북이 망가지니 패닉이었다.


이 섬에 유일한 컴퓨터 수리점으로 달려갔다. ‘SAMSUNG’만 보고도 고래를 절레절레 흔든다. 삼성이라는 브랜드가 이런 대접을 받을 수도 있는 곳에 살기에 불평은 하지 않기로 했다. 모니터만 말썽이라 그래도 감사하다 생각했다. 구글에 검색해 리뷰 좋은 믿음 가는 곳을 찾았다. 옆 섬 코사무이에서다. 통화를 했는데 영어로 침착하게 잘 설명해 줬다. 모니터 액정만 바꾸면 된다고, 고칠 수 있다고. 내 감정선은 땅속에서 솟구쳐 하늘로 날았다.


옆 섬이라 롬프라야 페리 택배로 보내면 되는 걸 코사무이 도착 항구가 컴퓨터 기사님 가게와 멀어 우체국으로 부쳤다. 그래야 코사무이 컴퓨터 가게 주소로 바로 배달되니까. 나름 내 감사와 배려의 표시였는데, 꼬따오 우체국에서 보낸 소포는 메인랜드 수라타니를 거쳤다 다시 코사무이로 들어가 2~3일 정도 더 걸렸다. 헛기침으로 털어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희망은 있었다.


그 후 지루한 기다림이 이어졌다. 기사님이 고칠 수 있다고 했으니 보채지 말고 잘 기다려야지, 하는 마음뿐이었다. 블로그로 다이빙 코스 예약을 받는데 노트북이 없으니 나는 반강제적으로 다이빙을 쉬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방학을 받은 느낌이었다. 이제 다시 뭔가 시작하려고 했는데, 어쩜 내 운은 이렇게까지나 안 따라주나 했다. 한편으론 아직도 마음이 쉬고 싶어 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올해는 유난히 힘들었다. 오래 함께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했고, 내가 마땅히 그리고 정당히 일한 대가를 받을 수 없게 됐다. 오랫동안 스트레스를 받으며 침묵 속에 일했다. 건강도 컨디션도 안 좋았다. 마음이 아프니 몸이 아픈 게 당연했다. 사람들에 대한 상처와 실망은 또다시 나를 침잠하게 만든다. 나를 더 내성적이고 조바심 나게 만든다.


오랜만에 글을 써본다. 종이에, 펜으로 쓴다. 생경한 느낌이다. 노트북의 적당한 타닥- 소리와 키보드 누르는 느낌이 오히려 그리워지기까지 하다. 내 노트북은 지금, 잘 살아있는 걸까. 이후 일주일에 한 번씩 코사무이 컴퓨터 기사님에게 전화했다. 내가 전화해 직접 상황을 물어보지 않으면 절대 먼저 연락을 주는 일이 없지만, 여긴 태국이고, 나는 이방인이다. 기사님은 계속 무슨 부품 이야기를 하면서 주문 후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4번의 통화가 더 이어졌다.


첫 주는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이참에 휴가라고 생각하자, 하고 마음을 편히 먹기로 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둘째 주부터 불안과 걱정과 외로움에 요동쳤다. 나는 그토록 외치던 ‘자유’가 막상 주어지면 주체를 못 한다. 어쩔 줄을 모른다. 점점 나를 잃어간다. 모든 게 정교하게 연결된,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마치 나만 빼고 자기들만 짠 시나리오로 나에게 ‘몰래카메라’ 같은 장난을 치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나는 피해의식과 자기혐오와 걱정과 불안과 우울 속을 서성인다.


나는 여전히 다이빙을 좋아하는가? 지금도 열정적인가? 깊은 질문이 고개를 내밀었다. 지금도 생각 중이다. 일시적인 권태의 후유증일 수도 있겠지만, 아닐 수도 있다. 글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런 생각은 불안의 잠식에 기름을 들어부었다. 거기서 무작정 도망치고 싶었던 나는 노트북을 코사무이로 보낸 날부터 스마트폰으로 빠져들었다. 그저 본다. 그저 눈을 뜨고 본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타고. 주변의 파랗고 초록한 예쁜 풍경을 두고도 하루 종일 그 조그만 스마트폰만 들여다본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를 ‘부자가 되는 법’으로 이끌었다. 이십 대 초반의 많은 젊은이가 자신은 온라인 사업으로 한 달에 00억을 번다고 했다. 가스라이팅의 정수다. 처음엔 자신이 이룬 성취를 보여주고 이목을 끌고,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이 죄책감을 느끼도록 한다. 은근히 깔보는 느낌으로 자존심도 살짝 긁는다.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해결책이 있으니 목마른 자를 우물로 부른다. 그리고 물 한 바가지에 값을 매기기 시작한다.


태어날 때부터 인터넷 세상에 얼굴과 이름이 공개되며 자란 아이들은 0과 1 세상 밖에서 단 1초도 살아본 적이 없다. 생활고로 잠자는 시간 외엔 노동일만 했던 청년이 유일하게 세상과 연결하기 위해 유튜버를 했다고, 결국 그 청년이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봤다. 나는 적어도, 이 디지털 세상에서 추억할 아날로그의 추억이 인생의 반이다. 이게 얼마나 축복인지 모른다. 좋아하는 앨범을 사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고, 좋아하는 영화를 개봉하는 조그만 독립극장을 찾아가는 일은 얼마나 숭고했나. 내 인생의 절반은 필름 카메라 시절이었다. 현상 값이 아까워 고르고 골라 사진을 찍곤 했다. 못 사는 집에서 영상 찍는 캠코더는 꿈도 못 꿨다.


유튜브 세상에서 그들이 생산하고, 나누는 이야기들은 무서웠다. 심리적으로 강하지 못한 나는 그들이 내가 느끼도록 원하는 감정을 결국 느끼고 말았다. 내가 잘못 사는 건 아닌가, 갑자기 불안이 엄습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 나는 지금 행복한가, 질문은 점점 우울해지고 어두워졌다. 가끔 너무 어두운 그림자가 내 맘을 덮치면, 가까운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친구들은 언제고 시간을 내어 내 넋두리를 들어줬다. 그래도 예전 같으면 혼자 끙끙 앓던 걸 이젠 조금이라도 나누려 한다. 내 경험에서 배운 건 우울감에 사로잡힐 땐 누구에게든 도움을 청하는 것이니까.


기사님이 결국 못 고치겠다 드디어 두 손 두 발을 들었다. 노트북은 한 달 만에 만신창이로 돌아왔다. 모니터는 아예 켜지지도 않았다. 그래도 노트북은 돌아갔다. 화도 안 났다. 그저 속으로 다시 한번 조용히 삭였다. 그때 마침 이 작은 섬에서 컴퓨터 모니터를 팔겠다는 사람이 기적같이 나타났다. 모니터만 안 되지 노트북은 돌아간다. HDMI로 연결해 급한 대로 쓸 생각이었다. 2천 5백 바트에 그걸 사다 모니터가 나간 노트북을 HMDI로 연결했다. 큼직한 화면이 어색하다. 몇 년간 나는 아주 작은 모니터에서 내 세상을 보냈다. 그래서 내 세상이 좁아졌다 느껴지는 건가?


그런데 가장 재밌는 건, 노트북이 도착하고 한 주가 지나도록 나는 그걸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 노트북 자체를 켜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는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으로 의미 없이 유튜브 세상을 스크롤하는 걸 멈추지 못했다. 잘 쓰지 않고, 잘 먹지 않고, 잘 자지 않고, 모든 걸 잘 하지 않았다. 잘하고 싶지 않았고, 잘할 필요도 못 느꼈고, 잘하면 뭐 하나 생각만 들었다. 그사이 나는, 노트북보다 더 작은 화면의 유튜브와 넷플릭스의 세상에서 겁을 먹어버렸다. 불안에 잠식당해 버렸다. 현실적인 문제들이 나를 덮쳤다. 잘 숨어 살고 있는 나에게 대체 왜 이러냐고, 정체 모를 이를 붙잡고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다.


안정적인 흐름이 시작되면 또 병처럼 도지는 지긋지긋한 권태. 나는 지금, 너무 편하다. 돈 걱정도 크게 없고, 당장 받는 스트레스도 없다. 그런데 왜? 왜 이렇게 무력하고 우울하고 스트레스받는 건지 모르겠다. 다이빙도 하기 싫고, 다이빙을 가르치는 것도 싫고, 이 섬도 지겹고, 누군가 그립지도 않고, 뭘 먹고 싶지도 않고, 건강해지고 싶지도 않고, 긍정적이고 싶지도 않다. 권태는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사치다. 불안은 실행으로 덮으면 된다지만 권태는 잘못하면 나를 세상 둘도 없는 허무주의자로 만들어 버린다. 특히 이 ‘파라다이스’에서의 권태는 답도 없다. 그래서 항상 경계하려 노력하지만 그게 또 잘 안된다.


물론 처음은 아니다. 살면서 몇 번 겪었다고 이런 감정의 시기가 두렵지만은 않다. 이게 나이가 들어가면 좋은 점이다. 현명해진다기보다는 그저 시간이 가는 만큼 쌓인 경험에 이제 이 깊은 우울감에 맞서 싸우려 하지 않고 그대로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되는 것. 그래서 소리 없는 통곡으로 길고 긴 여러 밤을 보내면서 자면서도 깨어서도 고통스러운 감정에 잡아 먹혀도, 그래도 전보단 자주, 몇 초 더 미소 지을 수 있다는 것. 내 감정의 필터링이 더 쉬워진다는 건 슬픈 일이다.


권태와 불안이 뒤죽박죽 섞인 채 하루하루 뿌연 안개 속을 걷는 느낌이다. 사실 지금 내가 겪는 감정이 권태인지 불안인지조차 제대로 분간이 안 된다. 나는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쌍소와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에게 내 감정의 정체를 묻기로 한다.


피에르 쌍소는 “권태에는 고상한 권태, 말하자면 형이상학적인 권태라는 것이 있다. 그런 권태는 피하는 것이 좋다. 그것은 내면에 있는 무한성의 시선에 비추어 자신의 초라한 존재를 의식하고서 모든 일상생활을 우습게 보는 자들이 느끼는 권태이다. 이런 권태에 빠지게 되면 두려움과 허무를 경험하게 된다. 왜냐하면 극히 초라하고 미미하게 존재하는 것과 전혀 존재하지 않는 무(無) 사이의 거리는 심히 좁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또,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시기는 권태가 찾아올 때다. 권태는 정해진 기한이 없으므로 한 번 시작되면 여간해서는 벗어나기 힘들다. 목표가 없는 삶에 탈선의 위험이 있다면 권태에 젖은 생활은 정신을 마비시키는 관능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다. 목표가 없는 사람은 인생의 가치를 고민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나는 지금 길을 잃었다. 지난 몇 년간 가졌던 목표가 내 의지와 능력과 관계없이 타인의 권력과 횡포로 눈앞에서 거품처럼 사라지는 걸 목도해야 했다.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웠다.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권태에 빠진 인간은 이 무의미한 하루가 24시간이나 지속된다는 데에 고통스러워한다. 이 고통을 견뎌내려고 권태로운 인간은 자극을 찾는다. 초점이 흐려진 권태로운 인간의 눈에는 야심, 권력, 소유, 관능에 대한 집착 등이 무의미한 하루를 버틸 수 있게 도와주는 진정제처럼 보인다.”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시계추와 같다”는 쇼펜하우어의 날카로운 통찰에 베이면 고통스럽다. “인생은 기만의 연속이다. 삶이 삶을 속이고, 삶은 삶으로부터 속는다. 기만으로 가득 찬 삶, 그것이 삶의 진정한 의미임을 깨닫는다면 얻게 해주리라, 삶이 나에게 약속했던 소망들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분노할 가치가 없음도 알게 될 것이다.” 삶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저버려야 좌절도 분노도 없다는 이 문장은 아이러니하게 삶에서 빛을 찾는 절실함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아 애처롭다. 지금 이 순간도 고군분투 중인 나처럼.


“나는 아무 데도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시간은 마냥 지속될 것이다. 지긋지긋한 과정들이 끝없이 반복될 것이다. 어딘가에 도착하면 그다음 단계의 문이 열리고, 길의 끝에서 멈춰 서면 다른 길이 시작됨을 목격하고 치를 떨게 될 것이다. 그 끝없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내가 마구 생성될 것이다. 나는 만들어진 나를 지켜볼 테지만, 그것이 누구를 위해 탄생했는지를 말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나를 해석하지 못하고, 내가 하는 말을 번역하듯 사전을 펼쳐야만 알아듣게 될 것이다.”


지금 내가 지나고 있는 감정은 어떤 것인가?

나는, 지금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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